시사, 상식

막 내리는 용산 출근길 ‘쇼’ 앞에서

道雨 2022. 11. 22. 09:27

막 내리는 용산 출근길 ‘쇼’ 앞에서

 

 

 

“민주주의는 스스로 돌아가는 기계가 아니다. 지도자와 정당의 ‘상호관용’과 ‘제도적 자제’라는 암묵적 규범이 있을 때 헌법도 제기능을 할 수 있다.”

 

날이 공교로워서였을까. 지난 10일 한겨레가 주최한 아시아미래포럼의 기조발제를 맡은 대니얼 지블랫 하버드대 교수의 말이 유난히 귀에 꽂혔다. 아침부터 행사장에 온 한겨레 기자들은 전날 밤 대통령실의 <문화방송>(MBC) 전용기 탑승 배제에 대해 의견을 나눈 터였다.

 

지블랫 교수는 정치 양극화로 인한 민주주의 ‘소멸’을 경고한 공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전제주의 행동’을 가리키는 주요 신호①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 ②정치경쟁자에 대한 부정 ③폭력에 대한 조장이나 묵인 ④언론 및 정치경쟁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성향을 꼽았다.

정부 출범 6개월여 만에 최소한 2번과 4번은 뚜렷해진 듯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선별적’ 태도가 새삼스럽진 않다.

대선 전 선관위 주최 티브이 토론회를 위해 문화방송을 방문하고도 개표방송용 프로필을 끝내 찍지 않았다. 와이티엔, 제이티비시, 연합뉴스티브이도 비슷한 처지였다. 고육지책으로 ‘에이아이(AI) 윤석열’을 쓴 곳도 있었다. 그래도 그건 후보 시절이었다.

 

사실 전용기 탑승 배제는 너무나 즉흥적이고 뜬금없어, ‘이×× 논란’ 앙금에 따른 한차례 ‘심통 부리기’인가 싶었다. 그러나 지난 18일 윤 대통령은 ‘헌법 수호’와 ‘가짜뉴스’를 언급하며, 이 이슈가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선언했다.

당일 대통령실이 “이게 악의적이다”를 10차례 반복한 문화방송 비판 서면자료는, 정부 자료라기엔 감정적이기도 하거니와, 보도를 정부가 ‘심판’하겠다는 것으로 비쳤다.

 

비판적 언론을 향해 “가짜뉴스 미디어는 국가의 거대한 위험” 같은 말폭탄을 퍼붓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떠올린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전용기 탑승을 거부한 이번 사태와 비슷한 일도 실제 있었다. 2017년 2월 백악관이 비공식 브리핑에, 러시아의 트럼프 캠프 연계설 등을 보도한 시엔엔, 뉴욕타임스, 폴리티코 등 5개사를 갑자기 배제한 데 반발해, 에이피 통신과 타임이 참석을 거부했다.

 

언론의 보도가 다 맞는다는 말이 아니다. 권력이 비판적 미디어에 불만을 갖는 건 진보정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본격화된 대통령실과 여당의 움직임은, 특정 매체를 ‘친야당’ ‘노조 세력’이 장악한 것으로 규정하고,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무릎을 꿇리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1974년 유신정권의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 뒤에는 기업마다 은밀히 전화를 돌린 중앙정보부가 있었다.

2022년 집권여당에선 대기업이 문화방송 광고를 중단해야 한다거나, 문화방송 사장을 임명하는 방문진 이사장과 이사를 전원 해임해야 한다는 발언이 부끄러움 없이 나온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아도 정도가 있지, 이성이 마비된 것 아닌가.

대통령의 막말 논란에서 꼬인 스텝이 이리 거창한 민주주의의 문제까지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집권세력이 집단적인 ‘사고 정지’ 지경에 이른 배경에 한국 정치의 양극화가 있다는 지적은 반만 맞다. 지금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에는 반대편을 ‘악마화’할 뿐 아니라, 기어이 뿌리부터 뽑겠다는 ‘절멸’의 인식마저 어른거린다.

상대방을 동등한 권력의 경쟁자로 인정(상호관용)하거나 입법취지를 훼손하지 않도록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제도적 자제)하는 일말의 자세라도 보였다면, 검찰과 감사원이 이 정도까지 ‘정치수사, 감사’라는 의심을 받진 않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스스로 야당을 ‘종북주사파’로 낙인찍는 발언을 했다. 첫 시정연설에서 영국의 처칠과 애틀리의 ‘협치’를 언급한 건, 말은 한번 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한 ‘쇼잉’에 불과했다. 필요한 건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업고 시행령으로 다 밀어붙이면 된다는 태세다.

지블랫 교수의 ‘점잖은’ 표현에 따르자면, 규칙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거칠게 밀어붙이고, 영원히 승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헌법적 강경 태도’에 다름아니다.

 

0.7% 차이로 권력을 쥔 세력이 상대방을 ‘절멸’시키는 게 가능할 리는 없다. 하지만 절멸을 추구하는 정치는 상대방에게도 ‘명분’을 쥐여줘 양극화를 가속하기에 위험하다.

 

취임 6개월 대통령을 두고, 한쪽에선 ‘그래도 이재명이 아닌 게 어디야’ 하나로 위안 삼고, 다른 한쪽에선 무조건 끌어내리자거나 전용기 추락 기원까지 나오는 양상이 임기 내내 이어진다면, 그 어떤 세력이 집권하든 이어받을 건 민주주의 가드레일이 무너진 사회일 뿐이다.

 

21일 출근길 문답이 중단됐다.

기자와 홍보기획비서관 설전 하나로 끝날 거라면 애초 시작도 말아야 했다.

가림막과 함께 쇼가 막 내리고 있다.

 

 

 

김영희 | 논설위원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