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한 채’ 값 주며 생색 낸 한국, 1천억달러 연체 중인 선진국
[제27차 기후변화총회]
이유진의 한국에서 COP27 읽기
③맥락으로 읽는 당사국총회 10대 뉴스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손실과 피해’ 기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남태평양의 섬나라 바누아투가 해수면 상승으로 위험에 처한 나라를 지원할 보험기금이 필요하다고 요청한 지 30년 만이다.아직 갈 길은 멀다. 기금 마련에 합의했을 뿐, 어떤 국가를 지원할지, 어느 국가가 돈을 낼지,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지원할지는 앞으로 협상해야 한다.
한국 기획재정부는 2023년부터 3년간 12억원씩 36억원을 개도국 적응기금에 공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제27차 당사국총회에서 적응기금으로 조성된 금액은 2억3천만달러(약 3089억원)이다.한국이 아파트 한 채 정도의 지원을 발표할 때, 영국은 2025년까지 15억파운드(약 2조4천억원)의 공여를 약속했다. 경제 규모와 역사적 책임을 고려하더라도 한국의 지원금은 창피한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10위, 누적배출량 20위(1750~2021년)를 기록하고 있다.
환경단체 녹색연합에 따르면, 한국은 녹색기후기금(GCF)에 약속한 지원금의 납부율이 17%로 최하위인 반면, 해외 화석연료 산업 금융제공액은 주요 20개국(G20) 중에서 3위로 나타났다. 한국은 앞으로 개도국의 기후위기에 따른 ‘손실과 피해’에 대해 얼마를 내야 할까?
이번 당사국총회 합의문은 ‘샤름엘세이크 이행계획’으로 발표됐다. 이번 회의는 산업화 이전대비 지구평균기온 1.5℃ 이하 목표를 재확인했지만, 동시에 그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것도 드러냈다.
2025년 이전까지 전 세계 배출량 정점을 달성할 것과, 천연가스·석유를 포함한 모든 화석연료 사용금지,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 등이 제안되었지만 합의하지 못했다.
다급한 투발루와 바누아투는 ‘화석연료 비확산 조약’을 만들자고도 주장했는데, 모든 화석연료 사용금지에 동의한 나라는 80개국에 불과했다. 이번 회의에서 화석연료 로비 그룹과 주최국 이집트의 비호가 강했기 때문이다.
글로벌카본프로젝트의 2022년 보고서를 보면, 화석연료 연소로 인한 세계 이산화탄소배출량은 석유 사용 증가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세계 배출량의 증가는 미국 배출량의 소폭 증가와 인도와 기타 국가의 배출량 증가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배출량은 소폭 감소했는데, 유럽연합 배출량은 2021년과 비슷했다.
문제는 지금 늘어날 때가 아니라는 점이다. 샤름엘세이크 이행계획은 “1.5℃ 목표를 이행하려면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9년 대비 43%를 빠르고 지속해서 줄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적어도 매년 4%씩 줄여야 하는데 오히려 증가했고, 심지어 2025년 배출량 정점 합의도 실패했다.
우리나라도 2021년 온실가스 잠정배출량이 6억7960만톤으로 2020년보다 3.5% 증가할 것으로 나타났다. 이대로면 한국도 2030년까지 40% 감축은 요원하다.
샤름엘세이크 이행계획에는 ‘화석연료’ 1번, ‘석탄발전’ 1번, ‘저배출 에너지(low-emissions energy)’ 3번, ‘재생에너지’가 4번 등장한다. 배출 저감시설이 없는 석탄발전 폐쇄와 비효율적인 화석연료 보조금을 폐지해야 한다는 글래스고 결과를 반복하는 부문에서 등장하고, 동시에 감축과 에너지 부문에서 ‘저배출에너지’와 ‘재생에너지’가 나온다.
‘저배출 에너지’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서 지적하듯, 풍력발전과 태양광, 원전과 탄소포집저장기술을 활용한 석탄발전소, 가스까지 광범위한 해석이 가능하다.
환경부가 20일 배포한 ‘제27차 당사국총회 폐막 보도자료’를 보면, 이런 ‘저배출 에너지’를 명시하는 일에 한국이 최선을 다했다고 나온다. 보도자료 7쪽 “우리 대표단은 (중략) 신기술을 활용한 원자력, 그린수소 등 새로운 청정에너지의 국제적 확대를 위해 에너지 믹스에서 청정에너지 확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안을 결과 문서에 반영하는 등 협상 진전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대신 모호한 청정에너지를 사용했는데, 재생에너지 없이 어떻게 그린 수소가 가능할까? 산업부가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을 지난해 수립한 NDC(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30.2%에서 21.6%로 끌어내리더니, 환경부도 ‘재생에너지’ 용어 지우기에 동참한 것으로 보인다.
샤름엘세이크 이행계획은 기후재정을 강조하고 있다.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2030년까지 매년 4조달러(5372조)를 재생에너지에 투입해야 하며, 저탄소 사회전환을 위해서도 매년 4조∼6조 달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불어 기후위기에 취약한 개도국은 2030년 이전에 5조8천억~5조9천억달러를 지원해야 한다.
문제는 2009년 제16차 코펜하겐 당사국총회에서 선진국이 2020년까지 매년 1000억달러를 내기로 한 약속도 안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2025년까지 1000억달러를 내기로 약속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산정한 기후재원은 2020년 833억달러 수준이다.
이번 당사국총회를 앞두고 영국의 기후경제학자 니콜라스 스턴 박사는 중국을 제외한 개도국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2030년에는 2조4000억달러(약 3330조원)가 필요한 것으로 발표했다. 엄청난 액수다. 그런데 스턴 박사에 따르면 이 비용은 원래 고탄소 인프라 구축에 사용할 금액에서 5% 정도 더 지불하는 비용이기 때문에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며, 세계은행이 절반은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세계은행을 포함한 다자개발은행(MDB)의 개혁이 시급한 이유다. 기후위기 대응이 늦을수록 지원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그나마 좋은 소식은 브라질 룰라 대통령 당선인의 이번 당사국총회 참석과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선전이었다. 이집트에 온 룰라 당선자는 아마존 벌목의 대명사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을 1.8%포인트 차이로 이겼다. 그는 아마존 열대우림 보호를 약속했으며, 선진국의 ‘손실과 피해’에 대한 책임을 강조했다.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레드 웨이브’는 없었다. 기후위기에 민감한 18살에서 29살 사이 ‘제트(Z)세대’ 유권자들이 대거 민주당에 투표함으로써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트럼프의 재등장을 막고, ‘그린 웨이브’를 만들어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집트를 방문해 파리협정 탈퇴를 사과하고, 미국의 2030년 감축목표를 지키겠다고 연설했다. 미국의 2030년 감축목표는 2005년대비 50∼52%인데, 현재 인플레이션 감소법으로는 40% 감축 달성에 그친다. 미국도 추가적인 노력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단절되었던 미국과 중국의 기후위기 대응 논의도 복구되었다.
이번 당사국총회에서 열린 러시아의 기후 토론회에서 기후활동가들이 외쳤다.
“전쟁범죄를 일으킨 러시아는 이곳에 올 자격이 없다.”
실제 기후전문가들도 러시아가 개최한 행사에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블로드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의 침공이 전 세계 에너지난을 불러오고, 화석연료 사용도 늘게 했다”면서 “평화 없이는 효과적인 기후대응도 어렵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이나 군사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과 환경 영향을 조사하는 플랫폼을 만들 것을 제안했지만, 이번 회의에서 채택되지는 않았다.
기후활동가들은 회의 시작 때부터 이집트의 인권탄압을 비판하며 “인권 없이 기후정의 없다”를 외쳤다. 아랍의 봄을 주도했다가 구금당한 알라 압둘파타흐는 단식 후 쓰려졌다. 생명을 잃지 않았지만, 여전히 감옥에 있다.
이번 총회가 끝나자, 세계는 카타르월드컵에 집중하고 있다. 카타르는 성소수자를 탄압하는 국가인 데다가, 엠네스티 발표에 따르면, 카타르에서 월드컵 경기장 건설 등 준비 과정 중 이주노동자 6500여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밝혀졌다. 국제행사가 점점 인권과 환경에 반하는 ‘그린워싱’으로 치러지고 있다.
이번 당사국총회를 통해 미국과 유럽연합이 주도하는 메탄서약에 참여한 국가가 150개국으로 늘어났다. 메탄서약은 이산화탄소보다 온난화 지수가 80배 높은 메탄을 2030년까지 2020년 대비 30% 줄인다는 약속이다. 세계 최대 배출국가인 중국은 아직 서명하지 않았지만, 이번 총회에서 메탄 배출을 억제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의 메탄 배출은 벼 재배 22.5%를 포함한 농축산 분야가 43.4%, 폐기물 처리 30.8%, 천연가스 탈루를 포함한 에너지 분야가 22.5%를 차지하고 있어, 메탄서약 이행 준비가 시급해 보인다.
세계식량위기가 가속화하는 가운데, 이번 총회에서는 기후변화로 가장 심한 피해를 본 취약지역을 지원하는 ‘식량과 농업의 지속가능한 전환’(FAST·Food and Agriculture for Sustainable Transformation) 프로그램이 출범했다. 의장국인 이집트가 특별히 신경을 쓴 부문이 농업이다.
핵심은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면서도 농업 부문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와 오염을 줄이는데 재원을 투입하는 것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 10년간 기후재정이 증가했지만, 농업 부문은 오히려 줄고 있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지원을 확대할 것을 촉구했다. 샤름엘세이크 이행계획에는 농업과 식량안보 분야의 기후행동 이행을 위한 공동작업이 4년 동안 진행된다고 밝히고 있다.
도로시 힐데브란트(72)는 스웨덴에서 샤름엘셰이크까지 자전거를 타고 왔다. 지난 7월1일 출발했으니 5달이 걸린 셈이다. 그가 입은 하얀 티셔츠에는 ‘석유는 안된다’고 쓰여있다. 그는 스웨덴에서 ‘미래를 위한 할머니들’을 창립한 멋진 기후활동가이다. 이처럼 열정적인 여성들이 기후위기 행동 실행과 의사결정 과정에서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여성의 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
샤름엘세이크 이행계획에도 성평등이라는 단어가 6번이나 등장했다. 특히 이번 총회에서는 ‘리마 작업 프로그램’에 따른 젠더행동계획(GAP)의 중간점검이 진행되었다. 점검 결과, 코로나19 팬데믹이 성평등을 가로막고 불평등을 심화시켰다고 분석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성평등과 사회정의를 필수로 한 ‘정의로운 전환’ 보고서를 발간했으며, 당사국총회나 국가협상대표단, 사무국, 모든 발표회와 토론회에 성별 균형을 맞추도록 권고했다고 평가했다.
이번 회의에서 처음으로 어린이와 청소년 기후포럼이 열렸고, 대회 의장직에 청년 대표를 임명했다. 회의장 밖에서 청소년들의 ‘미래를 위한 금요일’ 시위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번 회의에서는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이행을 강화하고 점검하기 위해 ‘감축 작업 프로그램’(mitigation work program)을 시작하기로 했다. 2023년부터 시작해 2030년까지 운영하며, 매년 적어도 두 차례의 글로벌 회의를 열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저감장치가 없는 석탄발전 폐쇄와 비효율적인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에 대한 논의도 다룰 예정이다.
2015년 파리기후협정의 목적 달성 경로를 논의하기 위한 ‘정의로운 전환 작업 프로그램(Just Transition work program)’에도 합의했다. 제28차 총회부터 매년 ‘정의로운 전환에 관한 고위 장관급 라운드테이블’을 개최하기로 했다.
이번 총회 기간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의 석탄발전 폐쇄를 위한 정의로운 전환 파트너십 자금 조달 계획이 발표되기도 했다.
세계의 많은 언론이 이번 당사국총회를 특집으로 다뤘다. <블룸버그 그린> <가디언> <그리스트> 등은 협상 보도와 함께 심층 분석기사를 쏟아냈다. 세계 30여개 언론사가 공동사설을 내고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횡재세 부과를 요구했다.
<한겨레>는 이집트 총회장으로 두 명의 기자를 파견하는 등, 이번 당사국총회 기간 국내외에 있는 기자들이 70여건의 기사를 썼다. 이집트에 가지 않아도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기사와 현장에서 만난 인터뷰 모두 소중했다.
녹색연합에 따르면, 시민들의 83.1%가 기후정보를 언론기사와 인터넷에서 얻는다고 한다. 언론이 기후위기를 어떻게 보도하는가가 기후위기 대응에 매우 중요하다. 한국 언론사들이 기후위기를 더 많이, 더 깊이 다뤄주기를 기대한다.
내년 제28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는 세계 최대 석유생산국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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