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한동훈은 ‘강인한 사람’일까
한국의 풍경 :
대통령실은 6일 대통령 관저 이전에 무속인 ‘천공’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티비에스>(TBS) 라디오 방송에서 제기한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과 진행자 김어준씨를 고발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같은 날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유튜브 매체 ‘시민언론 더탐사’(더탐사)를 고소하고 10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7일에는 한 장관이 자신의 주거를 침입했다며 ‘더탐사’를 고발한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한 장관은 지난 9월 자신의 차량을 미행한 ‘더탐사’ 기자를 스토킹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미국의 풍경 :
메릭 갈런드 법무부 장관은 지난 10월 언론에 대한 소환, 압수수색, 그밖의 강제적인 민형사상 조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을 발표했다.
갈런드 장관은 지난해 연방 검사들에게 뉴스 미디어를 상대로 법적 강제조처를 사용하지 말도록 지침을 내렸는데, 이번에 이를 공식 법제화한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이런 조처는, 전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자신에 비판적인 언론을 “국민의 적”으로 적대시하던 국정 방향을 정상화하는 발걸음이다.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 1월 보수성향 매체인 <폭스뉴스> 기자의 도발적 질문에 혼잣말로 욕을 했다가 사과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개인감정과 국가 정책은 달라야 하는 법이다.
갈런드 장관은 이번 발표에서 “독립적인 언론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데 필수불가결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규정은 연방 검사들과 언론 관계자들의 협업으로 다듬어졌는데, 이 과정에 참여한 ‘언론자유를 위한 기자위원회’ 사무총장은 “언론 기관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반겼다.
이와 별개로, 미국 법무부는 2014년부터 해마다 언론 종사자를 상대로 이뤄진 조사, 체포, 기소 등 법적 조처 내역을 담아 연례보고서를 내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 때 연방 검찰이 <폭스뉴스> 기자의 전자우편을 압수수색하려다 비판을 받자, 수사가 중단되고 법무부 장관이 사과한 일이 있는데, 이후 언론에 대한 수사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요구가 일었기 때문이다.
보고서에는 사건의 개요와 함께 법무부 지휘라인의 누가 해당 조처를 승인했는지도 자세히 기록돼 있다.
연례보고서를 보면, 트럼프 행정부 때 증가했던 언론 보도 관련 수사는 바이든 행정부 들어 사라졌다.
물론 언론 보도와 무관한 일반 범죄 수사는 여전히 이뤄진다. 최근 연례보고서에는 내부자 거래, 돈세탁, 아동학대 등 18건이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스토킹 혐의에 대한 수사 사례도 눈에 띈다. 한 뉴스 미디어 종사자가 스파이웨어를 몰래 심거나 소셜미디어 계정을 해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러 명의 인물을 괴롭힌 혐의를 받았다. 법무부는 뉴스 보도와는 무관한 행위라고 판단하고, 그의 전자우편에 대한 압수수색을 승인했다.
미국이라면 한동훈 장관이 고소한 스토킹 사건에 대한 강제수사나 기소를 법무부가 승인할지 궁금하다. ‘더탐사’ 쪽은 한 장관의 동선을 파악하는 취재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한다.
스토킹처벌법의 정의를 보더라도, 스토킹은 “정당한 이유 없이” 따라다니는 등의 행위로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언론의 취재 행위가 ‘정당한 이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언론의 자유는 심각하게 위축될 것이다. 한 장관이 출퇴근길에 언론사 차량 때문에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느꼈다는 것도 납득되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역주행하기는 했지만, 공직자를 감시·비판할 자유를 최대치로 보장하는 게 미국의 오랜 전통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을 이유로 한 형사처벌은 물론, 손해배상도 사실상 어렵게 만든 획기적인 판결(‘뉴욕타임스 대 설리번’·1964년)에서 ‘공직자’를 이렇게 표현했다.
“가혹한 기후에서도 번창할 수 있는 불굴의 용기와 인내를 가진 강인한 사람.”
국민으로부터 막대한 권한을 위임받아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직자는, 당연히 일거수일투족에 감시와 비판을 받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설혹 허위이거나 과장된 비난을 받더라도 감내하며 대처해야 한다는 뜻이다. 처벌의 위협으로 감시와 비판이 위축될 가능성만 생겨도 민주주의가 숨 쉴 수 없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판결문을 쓴 루이스 브랜다이스 대법관은 이런 말을 남겼다.
“질서는 처벌의 공포를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악마의 대변자에 대응하는 법은 선의 대변자들을 내세우는 것이다. 공적인 토론에서 발휘되는 이성의 힘을 믿고, 법으로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의혹 제기가 터무니없는 것이라면 손쉽게 반박할 수 있다. 대통령실은 통신 기록 등을 바탕으로 무속인 ‘천공’이 대통령 관저 후보지를 방문한 사실이 없음을 입증할 계획이라고 한다. 청담동 술자리 의혹도 객관적으로 반박할 방법은 여럿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진실은 드러날 테고, 의혹 제기가 무책임했다면 정치적·사회적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렇게 공론의 장에서 의혹에 맞서는 게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불굴의 용기와 인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과 한 장관은 의혹 제기에 걸핏하면 고소·고발로 맞선다. 심지어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더탐사’를 겨냥해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어떤 고통이 따르는지 보여줘야 한다”는 섬찟한 말까지 했다.
물론 정당한 사유 없이 주거를 침입한 것은 적절한 취재 방식이 아니다. 미국의 새 규정도 이런 행위까지 보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 장관의 아파트 현관 앞에 찾아간 ‘더탐사’의 행위가 국무회의에서 대통령까지 나서 강경 발언을 쏟아낼 정도로 중대한 범죄인가. 과거에도 그런 사례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과잉 반응이 나오지는 않았다.
미국 시민단체와 법률가들 사이에선 보도와 무관한 범법행위에 대한 수사도 정부가 공격적 언론인에게 보복하는 수단으로 사용돼선 안 된다며, 철저한 감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또한 귀 기울일 대목이다.
무엇보다 한 유튜브 매체를 상대로 잇따라 법적 대응을 하는 법무부 장관이나 처절한 응징을 주문하는 대통령은 ‘강인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인사권을 쥔 검찰로 하여금 그 사건들을 처리하도록 만드는 행태는, 오히려 권력의 방패 뒤로 숨는 비겁함이 도드라질 뿐이다.
검찰에 언론의 자유를 중시하도록 지침을 내리는 미국 법무부 장관과 대통령, 외려 언론을 고소·고발하는 데 앞장서는 법무부 장관과 대통령.
이것이 윤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자유’의 나라 미국과 우리의 대조적 풍경이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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