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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제2의 공천개입 사건' 되나…녹취록 파문

道雨 2023. 5. 2. 17:23

대통령실 '제2의 공천개입 사건' 되나…녹취록 파문

 

 

 

정무수석-여당 최고위원 간 '공천 거래' 의혹 확대

박근혜, 정무수석 통해 공천 개입했다 징역 2년형

태영호, 보좌진과 내부회의 하면서 거짓말했다?

실제 한일관계 및 윤 대통령 엄호 발언 적극 나서

이진복, 안철수에 "아무 말 안 하면 아무 일도 없어"

당내서도 "공천권 개입 중대범죄…검찰 수사해야"

 

 

대통령실과 여당 최고위원 간의 '공천 거래' 의혹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사실일 경우 '제2의 공천 개입 사건'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4·13 총선을 앞두고,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의 '친박' 의원들이 공천을 받도록 현기환 정무수석에게 지시하는 등, 공천 과정에 불법 개입한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번 파문의 당사자인 대통령실 이진복 정무수석과 국민의힘 태영호 최고위원은 무조건 잡아떼기로 나오고 있지만, 해당 음성 녹취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어서 설득력이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게다가 태 최고위원이 사무실에 자기 보좌진을 모아놓고 은밀하게 내부회의를 하면서 정무수석 발언을 거짓으로 꾸며냈다는 것도 억지스러운 설정이다.

 

특히 이진복 정무수석은 지난 2월 당시 유력 당대표 후보였던 안철수 의원을 향해 "아무 말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이라고 대놓고 엄포를 놓는 등, 대통령실이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는 과정에서 두드러진 역할로 주목받았던 인물이다.

당내 비주류 측에선 두 사람의 해명을 납득할 수 없다며, 이 수석에 대한 검찰 고발과 태 최고위원의 의원직 사퇴를 촉구하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MBC 뉴스데스크는 1일, 윤석열 정부의 일본 강제동원 배상안 발표 직후 여론의 비판이 쏟아지던 지난 3월 9일, 이진복 정무수석이 태영호 최고위원에게 한일관계에 대한 옹호 발언을 해달라는 취지의 요청을 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태 최고위원의 음성 녹취에 따르면, 그는 이날 이 수석을 만난 뒤, 저녁에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보좌진을 모아놓고 강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 나 들어가자마자 정무수석이 나한테 '오늘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왜 그렇게 하냐. 민주당이 한일관계 가지고 대통령 공격하는 거(에 대해) 최고위원회 쪽에서 한 마디 말하는 사람이 없냐. 그런 식으로 최고위원 하면 안 돼!' 바로 이진복 수석이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앞으로 이거 최고위원 발언할 때 대통령실에서 다 들여다보고 있다…."

"아니, 오늘 한일관계 얼마나 좋냐, (최고위원회의) 첫 상견례 자리에서 아 딱 당신이 그거 탁 치고 들어왔으면 대통령한테 가서 '이거 오늘 한일관계 태영호가 한마디 했습니다' 이러면 얼마나 좋을 뻔했느냐."

 

 

이 과정에서 태 최고위원은 이진복 수석이 공천과 연관 지어 거듭 거론한 말을 전했다.

 

"당신이 공천 문제 때문에 신경 쓴다고 하는데, 당신이 최고위원 있는 기간 마이크 쥐었을 때 마이크를 잘 활용해서 매번 대통령한테 보고할 때 '오늘 이렇게 (발언) 했습니다'라고 정상적으로 (보고가) 들어가면 공천 문제 그거 신경 쓸 필요도 없어."

 

지난 총선 때 '보수 텃밭' 서울 강남 갑 지역구에서 탈북민 출신으로 당선됐던 태 최고위원은 이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이제부터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 이진복 수석이 나한테 좀 그렇게 약간…다 걱정하는 게 그거잖아. 강남 갑 가서 재선이냐 오늘도 내가 그거 이진복 수석한테 강남 갑 재선되느냐 안 되느냐."

 

이 수석이 태 최고위원에게 전한 경고 또는 충고를 통해, 대통령실이 여당 지도부 회의에서 누가 어떤 발언을 하는지 하나하나 체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어떤 발언을 해야 하는지 주문‧지시까지 하고, 평소의 '충성 발언' 여부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함으로써, 내년 총선 공천과 연계시키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태 최고위원은 실제로 이 수석과의 만남 이후 최고위원회의에서 한일관계 발언을 적극 개진했다. 3월 13일에는 "일제 강제징용 해법과 한일관계 문제와 관련해 민주당이 국익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정치공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야당을 맹비난했고, 같은 달 16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구상권 포기 결정은 대국적, 대승적 결단이다. 빈손 외교, 굴욕 외교라는 단어 자체가 나오는 것이 비정상적"이라고 윤 대통령 엄호에 발벗고 나섰다.

 

그는 심지어 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일본의 외교청서가 발표됐을 때조차 페이스북에 "일본의 외교청서 공개는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에 대한 일본의 화답 징표"라는 궤변을 늘어놓는 등, 온갖 무리수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밖에 태 최고위원의 제주 4·3사건, 백범 김구 선생 관련 망언 등, 물의를 빚은 각종 설화의 배후에 대통령실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그러나 태 최고위원은 자신이 직접 했던 발언이 음성 녹취를 통해 공개됐는데도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며, 단순한 '과장'으로 치부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MBC 뉴스데스크 보도에 강한 유감을 표명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이진복 정무수석은 본 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한일관계 문제나 공천 문제에 대해 언급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녹취에서 나온 제 발언은 전당대회가 끝나고 공천에 대해 걱정하는 보좌진을 안심시키고, 정책 중심의 의정활동에 전념하도록 독려하는 차원에서 나온 과장이 섞인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이 수석 본인도 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공천 문제는 당에서 하는 것이지, 여기(대통령실)서 하는 게 아니다"라며 "그런 얘기를 전혀 나눈 적이 없다"고 전면 부정했다.

이어 "태 최고위원이 어제 두 차례 전화를 걸어와 '(보좌진에게) 설명하다 보니 조금 과장되게 얘기를 한 것 같아 죄송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개인 간의 사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성격의 일인가'라는 기자 질문에 이 수석은 "내가 조치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라며 "당에서 알아서 판단할 문제"라고 답했다.

 

김기현 대표 역시 이날 취재진에게 "아니 그러니까 자기(태 최고위원)가 부풀렸다고 그러지 않나"라며 "그런 말 한 적이 없다는데, 왜 자꾸 안 했다는데 했다고 묻느냐"며 오히려 짜증을 냈다. 김 대표는 "자기가 분명히 거짓말했다고 하지 않나"라고 거듭 역성을 들었다.

 

 

명백한 육성 녹취록이 존재하는데도, 자신들이 아니라면 아닌 줄 알라고 언론에 우격다짐을 하는 태도는, 윤석열 정권 들어 여권의 변함없는 모습이다.

아무리 뻔한 오리발을 내밀어도, 친윤 성향이 대부분인 언론은 대충 넘어갈 거라고 믿으며, 국민들도 우습게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야권은 물론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반발하는 기류가 심상치 않다.

 

민주당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대통령실의 당무 개입 의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라며 "현직 당 대표를 징계하고, 유력 당권 주자를 쳐내고, 입맛에 맞는 당 대표를 앉힌 게 국민의힘 자체적으로 벌인 일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녹취 내용대로 대통령실이 공천을 미끼로 당무에 개입했다면,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폭거이자 불법 행위"라고 비판했다.

 

기본소득당 상임대표인 용혜인 의원은 "대통령실을 옹호하기 위해 무리하게 던졌던 태영호 최고위원의 모든 망언의 배후에 이진복 정무수석과 대통령실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면서 "망언 징계에 대해 국민의힘이 미온적이었던 것도 이제 이해가 간다. 용산의 뜻이 곧 태영호 최고위원의 말이었으니, 어찌 감히 용산의 뜻을 징계하겠나"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태영호 의원실 보좌진 누군가가 녹음을 유출했을 것으로 본다면서 "책임은 태영호 의원 본인이 져야 된다. 안 그래도 지금 (윤리위) 징계 심의가 시작됐는데,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검사 출신 김웅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녹취록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진복 정무수석은 당무 개입, 공천권 개입이라는 중대범죄를 저지른 것"이라며 "즉각 경질하고 검찰에 고발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그것이 아니라 태 최고위원이 전혀 없는 일을 꾸며내 거짓말한 것이라면, 태 최고위원은 대통령실을 음해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도저히 믿기 어려운 충격적인 뉴스"라며 "만약 사실이라면,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여당 최고위원인 현역 국회의원에게 용산의 하수인 역할을 하도록 공천으로 협박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나아가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총선 당시의 불법 공천 개입으로 2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검찰에서 이 사건 수사를 지휘한 사람이 바로 윤 대통령"이라며 "보도된 사건이 공직선거법이 금지하는 대통령실의 불법 공천개입이 아닌지, 공직선거법 제9조 2항에 따라 검찰과 경찰은 신속, 공정하게 수사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인규 국민의힘바로세우기 대표는 "완전하게 비밀이 보장된 내부 회의에서 거짓말을 한다는 뜻은, 태 최고위원은 숨만 쉬면 거짓말을 한다는 의미"라며 "대통령실 정무수석의 공천 개입이 드러났다. 이진복 수석은 부인하고 있지만, 태 의원의 증언과 그동안의 비정상적 행태를 고려할 때 공천 보장이라는 미끼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단언했다. 신 대표는 "의원직 사퇴만이 사태 수습의 유일한 길이고, 국민께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리"라고 덧붙였다.

 

 

 

 

김호경 에디터haojing610@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