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언론이 '정권심판론'을 말하지 않는 이상한 총선

道雨 2024. 3. 6. 14:35

언론이 '정권심판론'을 말하지 않는 이상한 총선

 

 

 

4년 전 총선에선 모든 언론 '정권심판론' 제기

"경제·코로나 실패했다"며 정부비판 쏟아내

"역대 총선 대부분 정권심판론 vs 야당책임론"

이번 총선엔 ‘민주당 공천파동’만 집중 부각

윤 정부 심판 이유 차고넘치는 데 언론 침묵

유권자에게 필요한 정보 주는게 언론의 의무

 

 

“민생과 일자리, 부동산 등 국가 주요 정책의 실패로 국민의 불만이 치솟고 있지만, 정부·여당을 향한 ‘경제 무능 심판론’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응집력과 전략 부족으로 야당이 공격다운 공격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기력한 야당은 국정 운영 책임자도 아니면서 오히려 ‘심판받아야 한다’는 역공에 시달리고 있다.”

 

이 기사는 총선을 3개월 정도 앞두고 한 신문에 게재된 칼럼이다. 이 신문은 며칠 후 다른 칼럼에서 “어떤 상황의 총선이냐를 막론하고, 거의 대부분 총선은 ‘정권심판론’으로 결판났다”면서, 다가올 선거에서 무능한 정권을 심판할 ‘정권심판론’의 호재가 매일 터져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2024년 총선에서 무능하고 무책임한 윤석열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이 정권에 비판적인 신문의 칼럼일까?

아니다.

앞의 것은 2020년 1월9일 조선일보에 게재된 홍영림 여론조사전문기자의 칼럼(“사라진 ‘경제무능 심판론’”)이고, 다른 칼럼은 일주일 뒤 역시 조선일보에 실린 김광일 논설위원의 칼럼(“정권심판 대 야당심판”)이다. 

 

 

조선일보 2020년 1월16일 빅카인즈 검색기사 갈무리

 

 

 

4년 전 문재인 정부에서 치러진 20대 총선에서는, 선거일을 앞두고 언론이 이렇게 ‘정권심판론’을 대대적으로 띄웠다. 코로나19로 전세계의 경제가 마비되고 한국도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특히 자영업자가 타격을 입었던 때였다. 투기세력의 위력으로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거의 무력화되는 바람에 서울·수도권 집값이 치솟았다.

 

민주당 정권에 악의를 품은 정치언론들은 당시 정부의 ‘코로나 대응 실패(?)’, ‘경제둔화’ ‘부동산정책 실패’ 등을 이유로 들며, ‘정권심판론’을 총선의 최대 프레임으로 부각시켰다.

‘정권심판론’은 그 때 야당이었던 미래통합당(지금의 국힘당)이 문재인 정부 비판에 열을 올리며 총선 아젠다로 설정하기도 했지만, 보수·진보 할 것 없이 여러 언론들도 수많은 기사와 칼럼에서 ‘정권심판론’을 앞다퉈 보도했다.

 

 

“‘미래 선택론’ vs ‘정권 심판론’...여야 거물들 어디로?”(조선일보, 2020년 1월25일, 김민우 기자)/ “사라진 ‘경제무능 심판론’”(조선일보, 2020년 1월9일, 홍영림 기자)/ “정권심판 대 야당심판”(조선일보, 2020년 1월16일, 김광일 논설위원)/ “4년 전 ‘디비졌던’ 부산...‘민주당 뽑았더니 경제가 영~’ 표심 심상찮다”(한국일보, 2020년 1월28일, 이혜미 기자)/ “종로 출마 황교안 ‘문 vs 황 싸움’...이낙연 측 ‘정권심판론만’”(한국일보, 2020년 2월7일, 최우열 기자)/ “중도층 돌아섰다...정권심판론 50%>야당심판론 39%”(한국일보, 2020년 2월14일, 홍인택 기자)/ “홍준표 ‘밀양 온지 17일만에 다시 이사...양산서 문 정권 심판’”(중앙일보, 2020년 2월16일, 한영혜 기자)/ “민주당 ‘정권 재창출’ vs 통합당 ‘정권심판론’...총선 승부처”(경향신문, 2020년 3월2일, 박순봉·심진용 기자)/ “미래통합당, 코로나 틈에 ‘정권심판’ 총공세”(한겨레, 2020년 2월27일, 정유경 기자)…

 

 

한겨레는 당시 성한용 기자의 칼럼에서 “동아일보 논설실장도 조선일보 논설실장처럼 4.15총선에서 현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조중동 모두...문재인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 것입니다. 조중동의 문재인 정권 심판론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주장과 똑같은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재밌는 것은, 당시 한 여론조사에서 ‘야당심판론’이 ‘정권심판론’보다 높은 비율로 나오자, 야당(지금의 국힘당) 진영을 몰래 지원하는 수구 언론들이 발끈했던 일이다. 조선일보 등은 여론조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두고보자’는 식의 칼럼을 쏟아내기도 했다. ‘정권심판론’에 목을 맨 수구 정치언론들의 확증편향이 보여준 코미디였다. 

 

역대 총선에서 야당과 언론이 ‘정권심판’을 주요 아젠다로 삼아 강조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특히 정권이 임기 중반 정도에 이를 때 열리는 총선은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로 간주된다.

정부의 무능과 실정이 계속된다면, 언론이 이 사실을 유권자에게 제대로 알리고, 유권자들이 정부를 표로 심판하도록 하는 게 당연하다. (참고로, 2020년 총선에서는 야당과 수구언론들이 문재인 정부에게 코로나 부실 대응, 경제실패 등 과장·왜곡된 정부 비판과 무리한 정권심판론을 들이대다 거꾸로 국민의 응징을 받았다.)

 

 

그런데 2024년 총선은 어떤가?

4년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언론에서 ‘정권심판론’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유권자들이 정권을 심판해야하는 근거가 될 정부의 무능·무책임·정책실패·부도덕을 비판하는 기사도 별로 없다.

 

윤석열 정권은 비판과 심판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국정운영을 잘 해서일까?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런 질문에 화를 낼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임기 초반 잠시 40%대를 기록했다가, 이후 지금까지 고작 20~30%대에 머물고 있다(갤럽조사). 4년 전 총선 무렵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50~60%보다 한참 낮은 수준이다.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거의 2년 간 60% 정도에 달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가 아니더라도, 이 정부의 치명적인 정책실패와 무능·부도덕은 국민들이 이미 체감하고 있는 상태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소득감소·가계부채 증가로 중산층 삶이 갈수록 피폐해지고, 경기둔화로 자영업자·중소상인들도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언론도 잘 알고 있다.

전쟁불안은 커지고, 무능·망신외교, 미일 편향외교로 국익과 국격이 동시에 추락하고 있다.

언론탄압, 검찰독재로 민주주의도 무너지고 있다.

김건희 씨 주가조작·명품백 수수 의혹, 대통령이 직접 나선 관권선거 등, 나라가 총체적으로 뒤죽박죽, 난장판 상태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언론이 ‘국정심판론’을 총선의 가장 중요한 아젠다로, 가장 강력한 프레임으로 제기해야 하는 때가 아닌가?

그런데 언론은 조용하다.

위에 열거한 문제에 대한 비판 보도도 주류 언론에선 별로 찾아보기 힘들다.

 

정확히 말하면, ‘정권심판론’이 아닌, 다른 아젠다와 다른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다.

예컨대, 지난해 말에는 ‘야당심판론’도 아닌, 여당이 뜬금없이 제기한 ‘운동권 청산론’이 수구 언론들에 의해 주요 아젠다로 취급됐다.

올해 들어서는 ‘민주당 공천갈등’ 기사가 지면과 화면과 포털을 도배했다. 극우·친여 언론뿐 아니라 이른바 진보매체들도 같은 모습이다.

 

4년 전 총선에서는 ‘정권심판론’을 강조했던 언론들이, 이번 총선에서는 정권심판이 별로 중요한 의제와 프레임이 아니라고 보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 글의 맨 앞부분에 인용한 조선일보 칼럼을 다시 읽어보기 바란다.

 

 

“민생과 일자리, 부동산 등 국가 주요 정책의 실패로 국민의 불만이 치솟고 있지만, 정부·여당을 향한 ‘경제 무능 심판론’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응집력과 전략 부족으로 야당이 공격다운 공격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기력한 야당은 국정 운영 책임자도 아니면서 오히려 ‘심판받아야 한다’는 역공에 시달리고 있다.”

“어떤 상황의 총선이냐를 막론하고, 거의 대부분 총선은 ‘정권심판론’으로 결판났다” 

 

 

 

 

혹시 앞의 칼럼 중에 ‘무기력한 야당’이라는 구절에서 이의를 제기할 언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170여석의 더불어민주당이 ‘무기력한 야당’이냐고.

물론 아니다. 강력한 야당이다.

그러나 많은 국민은 민주당이 정부여당의 국정운영 견제 역할을 잘 하지 못해왔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니 언론은 야당을 비판할 만하다.

그러나 야당에 대해 비판하는 만큼,(아니 그 절반 정도라도) ‘국정운영 책임자’인 정부여당도 제대로 비판하고, 유권자가 이를 심판하도록 충분하고 정확하고 균형있는 보도를 해야한다.

 

양 당의 공천이 곧 마무리된다.

공천이 끝나면 언론이 본격적으로 ‘국정심판론’ 혹은 ‘야당심판론’을 주요 의제로 삼아, 유권자가 이번 선거에서 합리적이고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 기대해도 좋을까?

 

 

 

김성재 에디터seong680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