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큰 북한’으로 변해가는 러시아

道雨 2024. 6. 5. 08:47

‘큰 북한’으로 변해가는 러시아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페이스북은 북한에서도 러시아에서도 차단돼 있지만, 주북 러시아 대사관은 여전히 페이스북 계정을 운영한다. 이 계정을 오랫동안 열심히 보면서 느끼는 것은, 요즘 들어 북-러 관계가 여태까지 전혀 관찰된 적이 없을 정도로, 그야말로 유례없는 활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2~3주 동안만 보더라도 러시아 국회의 상원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했고, 북한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이 모스크바에 가서 여러 협정을 맺었다. 이제 상당수의 북한 유학생이나 학자들은 유학이나 연구처로 다시 러시아를 찾게 되었고, 러시아 관광객들도 북한을 찾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북한 매체들은 거의 매일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러시아에서 핵심적으로 중요한 문제에 대해 푸틴의 입장을 따르는 기사들을 내보낸다. 심지어 북한 매체들은 남한의 역대 정권을 대개 ‘괴뢰도당’이라고 지칭해왔던 것처럼, 최근에 우크라이나 정부를 ‘젤렌스키 괴뢰도당’이라고 부른다. 즉, 그들은 러-우 관계를 남북 관계와 성질이 같은 것으로 파악하고, 자신들의 입장과 러시아의 입장을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푸틴 집권기 내내 북-러 관계는 상당히 우호적이었지만, 이 정도의 밀착은 1980년대 초반 아니면 아예 1950년대 초반을 방불케 한다.

 

 

물론 이와 같은 밀착의 현실적 배경으로 북한산 포탄·미사일의 러시아 수출이 있다는 추측이 유력하다. 한데 푸틴의 일거수일투족을 상세히 보도하고, 푸틴의 방산 복합체에 대한 국가적 집중 투자 같은 국가 주도, 군수 기업 우선의 경제 발전 정책을 매우 긍정적으로 설명하는 북한 매체의 태도로 봐서는, 지금의 북·러 밀착은 단순히 일회성의 무기 거래 문제는 절대 아니다.

북한은 푸틴의 리더십이나 경제 정책에 대해 대단히 우호적인 반응을 보일 뿐만 아니라, 푸틴주의 이데올로기의 주요 개념, 예컨대 러시아의 독자적 영향권 구축 등을 “다극 세계의 건설을 위한 집단 서방과의 세계적 다수의 투쟁”의 일환으로 보려는 크렘린의 시각 역시 대체로 공유한다.

러시아가 내세우는 ‘다극 체제론’, 즉 중·러 블록이 서방 블록을 견제할 수 있다는 새로운 세계 질서 구축론은, ‘반미 코드’ 차원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이나 자주론 등과 통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북·러 밀착은 당장의 금전적 이익이나 거래 차원을 넘어, 가면 갈수록 북·러의 발전 노선과 체제, 이념 등이 서로 닮아간다는 차원에서 고찰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2022년 이후의 푸틴주의 경제 정책과 이념 등을 과연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일단 이 부분은, 19세기 말부터 추격형 발전을 이루어온 후발 산업 국가로서의 러시아의 전반적인 근현대사 궤도 속에서 분석되어야 할 것이다.

 

크게 봐서는, 러시아에 근대 공업이 정착된 19세기 말부터 러시아에는 두가지 개발 모델이 가능했다.

 

하나는 한국의 발전 궤적을 방불케 하는 외자, 선진권 기술 유치 본위의 모델이었다. 러시아는 1890년대부터 1914년까지 이 모델을 적용하여 상당히 높은 성장률을 보였으며, 러시아혁명 직후의 신경제 정책 시대인 1921~1929년, 그리고 페레스트로이카 시기(1980년대 말)부터 2022년까지 활용했다.

대개 비교적 유연한 연성 권위주의적 통치를 수반했던 이 모델은, 한가지 치명적 결함이 있었다. 이 모델은 전란기에 원활한 전쟁 수행을 뒷받침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모델을 계속 운영했던 제정 러시아 정권은 제1차 세계대전 와중인 1917년에 붕괴되었다.

 

이후 1929년 대공황과 함께 새로운 세계대전의 가능성이 높아지자, 스탈린 지도부는 그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이 모델을 폐기하고, 공업의 완전한 국유화를 전제로 한 동원형 전쟁 경제 모델을 채택했다.

1980년대에 접어들어, 이 모델은 정보통신 부문에서 선진권에 뒤지고, 전반적으로 한국 같은 신흥 자본주의 국가의 재벌 경제를 더 이상 따라잡지 못했다. 그래서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에 다시 외자 유치 본위의 개발 모델이 각광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세계적 패권 질서가 재편되는 혼란기인 2020년대에 접어들자, 푸틴 지도부는 좀 더 국가 주도적이고 전쟁 수행에 맞춰진 경제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다.

스탈린의 모델과 달리 푸틴의 전쟁 경제는 완전한 국유화나 전체적 수입 대체를 꼭 지향하지는 않는다. 한데 푸틴의 러시아에서는 국영 및 국가가 대주주로 있는 기업들이 국민총생산의 70% 이상을 차지하며, 외자가 아닌 내자 본위로 개발이 이루어지며, 모든 사기업들도 국가의 지휘·통제를 받아 국가의 정치적 우선순위에 따라 투자를 결정한다.

 

연성 권위주의도 아닌 초강경 권위주의 통치를 수반하는 이 국영 부문 주도의 전쟁 경제 모델이, 사실 러시아와 북한에서 상당히 비슷한 방식으로 지금 공유되고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2022년 이후 러시아는 하나의 ‘큰 북한’으로 점차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굳이 차이를 찾아보자면, 북한의 부자 세습 시스템과 달리, 러시아에서는 같은 정치집단 안에서 선배가 후배에게 정권을 물러주는 방식으로 정권이 지속된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물론 ‘큰 북한’의 사회는 한반도의 북한보다 훨씬 더 다원적이며, 외국과의 연계성도, 그리고 외부적 영향에의 노출도도 훨씬 높지만, 지속되는 전쟁 속에서 이 차이도 점차 상대화되어간다는 느낌마저 든다.

경제 노선이 대략 일치하는데다, 이념적으로까지 극단의 반자유주의와 반서방 지향, 총동원 사회 모델 등을 대체로 공유하는 ‘큰 북한’으로서의 러시아와 한반도의 북한은, 자연스럽게 앞으로도 상당히 친밀한 관계를 장기간, 하나의 전략적 선택으로서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 상황에서 한국 외교의 급선무는, 이 북·러 밀착이 한국을 가상의 적으로 여기지 않는 쪽으로, 대러 관계와 대북 관계를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관리하는 데에 있다.

남북한 사이에는 유엔 제재가 막지 않는 인도적 교류나 일부분의 경제 협력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가 하면, 한·러는 사실 경제적으로 상호 보완적인 구조다.

북한도 러시아도 한국을 필요로 한다면, 적어도 한반도 평화를 지키는 것은 더 쉬워질 것이다.

세계적 전란기인 현재 상황에서 그 이상의 중요한 과제도 없다.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