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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은 늘 ‘헌정사의 불행’인가?

道雨 2024. 6. 14. 12:28

대통령 탄핵은 늘 ‘헌정사의 불행’인가?

 

 

 

대통령 탄핵이 다시 세간의 화두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에 대한 실망, 채 상병 수사 외압 등 중대범죄 의혹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어서다.

야당에선 “탄핵 마일리지” “탄핵 열차 시동” 같은 말이 나온다.

통상적이라면 역풍이 불 수도 있는 얘기지만, 지금은 대체로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다.

국민 상당수가 윤 대통령이 계속 대통령으로 3년 더 국정을 끌고 가는 게 과연 윤 대통령 부부 이외 대다수를 위해서도 좋은 일일까를 내심 저울질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다가 보수층에서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면, 지금도 역대 최저인 국정 지지율이 더욱 추락하면서, 탄핵이 자체 동력으로 굴러가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직무상 중대한 헌법과 법률 위반으로 탄핵 사유를 한정하고 있다. 현재로선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나 특검 수사로 실체가 밝혀진다면, 직접적 탄핵 사유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두고 보수 쪽에선 두가지 반응이 나온다.

 

하나는 채 상병 수사 관여가 설사 사실이더라도 대통령 탄핵 사유가 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해병대 수사단에 장병 사망 사건에 대한 수사권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법률적 쟁점을 제기하면서, 탄핵될 만한 중대한 불법이 아니라고 변론한다.

이후 수사에서 외압과 개입 실체를 제대로 밝혀낸다면, 배척될 가능성이 큰 주장이다.

 

대통령실이 총동원돼, 국방부와 해병대 사령부를 움직여 사단장 혐의를 빼고, 심지어 규정대로 조사 결과를 이첩한 해병대 수사단장을 항명죄로 몰아간 의혹 사건이다.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주오스트레일리아(호주) 대사에 임명해, 출국금지를 풀어주고 빼돌리는 과정에서도 여러 불법 의혹이 나온다. 대통령제 원조 국가인 미국에선 사법방해죄로 처벌하고 탄핵심판에 부쳐졌을 사안이다.

 

대통령부터 참모, 국방부 장차관과 해병대사령관 등이 총출동해 외압 의혹이 제기된 뒤, 열달이 되도록 ‘대통령 격노도 질책도 없었다’며, 버젓이 거짓말을 반복해온 정황도 뚜렷하다.

 

또 대통령 자신이 관여된 사건 특검법에 거부권까지 썼다.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탄핵심판’ 결정문에서 “피청구인은 최서원의 국정개입 사실을 부인하며,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했다” “검찰과 특별검사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 압수수색도 거부했다”며 “헌법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이라고 다를까.

 

 

흥미로운 건 보수가 보이는 또 하나의 반응이다.

탄핵이 가능하냐 아니냐보다, 탄핵이 정치를 후퇴시키고 국정의 안정성을 해쳐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주장이다.

“툭하면 탄핵 절차를 가동하는 나쁜 관행이 굳어져, 정치 전반을 남미 수준으로 후퇴시킬 수 있다”(동아일보 ‘송평인 칼럼’)거나 “윤 대통령뿐만 아니라 차기에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취임 직후부터 반대자들은 탄핵의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게 될 것”(중앙일보 ‘중앙시평’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과 같은 예측이다.

탄핵을 반대 당의 정략적 공세로 보는 시각이다.

 

* ‘박근혜 즉각 퇴진 6차 촛불집회’가 열린 2016년 12월3일 저녁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 신교동교차로와 자하문로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그러나 한번 기각되고 한번 인용된 우리 대통령 탄핵사에 비춰볼 때, 동의할 수 없는 주장이다. ‘노무현 탄핵’은 실패했다. 불법이 있었지만 중대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민심을 거슬러 작은 꼬투리로 탄핵을 밀어붙인 보수야당은 총선에서 정치적 심판을 받았다.

반면, 박근혜는 파면됐다. 촛불 민심이 거세게 정치권을 떠밀었고, 헌재도 부응하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두번의 경험은, 탄핵이라는 합헌적 비상 장치의 성공적 운용 공식을 찾기에 부족하지 않다. 정략적으로 남발하면 역풍을 맞지만, 대다수 민심을 외면하고 대통령의 중대한 범죄에 눈감아서도 안 된다. 우리 사회가 큰 비용을 치르고 얻은 황금률이다.

윤 대통령도 이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된다. 민도도 제도도 다른 먼 나라들에 갖다댈 필요가 없다.

 

‘탄핵은 헌정사의 불행’이란 관용적 표현도 이런 점에서 꼭 맞는 건 아니다. 대표적 헌법학자인 고 권영성 서울대 교수는 ‘탄핵이 있어야 고위공직자들이 탄핵될까 두려워 비행을 자제할 것이고, 탄핵 같은 합법적 수단이 없다면 혁명이나 폭력 등의 수단에 호소하게 될 것’이라고, 제도의 유용성을 짚었다.

 

우리는 탄핵 운용에선 최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탄핵 남용은 경계하되, 권력자의 전횡으로 나라가 망가지는 더 큰 불행을 차단할, ‘불행 중 다행’으로 잘 활용하는 게 낫다.

 

 

 

 

기자  손원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