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일본 마음’이라는 대한민국 국가안보실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이 지난 16일 한국방송(KBS)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다. 마음이 없는 사람을 다그쳐서 억지로 사과를 받아낼 때 그게 과연 진정한가.”
발언이 논란을 빚자,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18일 이렇게 말했다.
“수십차례에 걸쳐 일본 정부의 공식적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가 있었고, 그러한 사과가 피로감이 많이 쌓였다.”
수습을 하려는 건지, 불을 지르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일본을 대신해 한국인을 설득하는 것이다.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지지(7월27일), ‘뉴라이트’ 논란 독립기념관장 임명(8월7일), ‘일본 빠진 광복절 경축사’(8월15일) 등, 최근 한·일 과거사 관련 윤석열 정부 흐름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반역사적 친일’이다.
이런 논란이 윤석열 정권엔 어떤 정치적 이득을 가져다주는가.
일본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를 이 정부는 애초부터 반대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정부 태스크포스(TF) 이름은 2022년 2월 ‘일본 사도광산 대응 티에프’에서 ‘유네스코 협력 티에프’로 바뀌었다. 김영재 팀장은 지난 3월 워싱턴 주미대사관 경제공사로 있다가 팀장을 맡았다. 통상산업부 출신이고, 주사우디 공사참사관, 국제경제국장 등을 지낸 경제·통상 관료다. 사도광산에 가보지도 못한 채 협상에 임했다. 협상이 끝나지도 않은 채 7월3일 주토론토 총영사에 임명됐다.
이쯤 되면, 본인도 외교부도 협상에 별 뜻이 없음을 짐작하게 한다. 일본은 총리관저에 ‘세계유산 등록을 향한 태스크포스’가 만들어졌다.
윤 대통령 말처럼, 이젠 일본과 대등한 수준이라며, 왜 이렇게 일본 비위를 못 맞춰 안달인가.
지난해 이맘때 열린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협정’이 구체적 출발점이라는 게 일반론이다. 윤석열 정부가 한·미·일 군사협력을 통한 한반도 안보 구축을 꾀하는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동북아 외교전략은 오래전부터 미국 부담을 덜어 일본에 지우는 것이고, 일본은 동북아에서 영향력을 키우려 한다. 미·일의 일치하는 이해관계에 한국이 하부구조로 편입하는 격이다.
이를 주도하는 이가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라고 다들 이야기한다.
2007년 ‘뉴라이트 지식인 100인 선언’에 이름을 올린 김 차장은, 이명박 정부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이었다. 학자 시절부터 줄곧 일본과의 안보 협력을 강조해왔다. 2012년 7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추진하다, ‘밀실 논란’으로 사퇴한 바 있다.
‘일본과의 안보 협력’ 앞에 ‘과거사 문제’가 걸림돌이 된다면, 그는 어떤 결정을 내리겠는가.
윤석열 정부 들어 국가안보실장은 벌써 4번째다. 1년을 넘긴 실장이 없다. 김태효 차장만 붙박이다. 국가안보실장엔 아무나 와도 상관없는 구조다.
국내 정책과 달리 외교 문제는 불가역적이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서 뼈저리게 경험했다. 한·미·일 군사협력이 준동맹 수준으로 이어진다면, 그건 한반도의 영속적 안보 확립이 아니라, 미-일 동북아 글로벌 전략 아래 한국이 행동국가로 영구히 자리잡게 되는 것일 수 있다.
분단 상황인데다 중국 영향에 더 취약한 우리는 미·일과 안보적 이해관계가 온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일들이 국회 동의나 감시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독립기념관장 임명에 대해선 국민의힘에서조차 의아해한다. 김형석 관장은 송·명나라 전공자이고, 안익태·백선엽을 옹호한 인물이다. 대북지원 민간단체를 운영하며 입금 내역을 조작해 보조금을 허위로 더 타내 벌금형을 받은 적 있다. 이런 사람을 누가 추천했는지 베일에 싸여 있다.
임명 첫 일성이 “친일파 매도 인사들의 명예회복에 앞장서겠다”였다. ‘친일파 명예회복 기념관장’에 적합한 인물이다.
국민의힘 관계자 말이다.
“윤석열 정부 인사가 무척 힘들다. 웬만한 사람은 안 하려 든다. 5순위·6순위까지 내려가는데, 요즘엔 십몇 순위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뻔뻔하거나 반드시 이뤄야 할 미션이 있는 사람들만 하려 든다”고 했다.
김 관장은 이미 독립기념관장 역할을 할 수 없게 됐다. 이러면 대개 스스로 물러난다. 그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뻔뻔한 사람’인가, ‘미션을 지닌 사람’인가.
윤 대통령은 지난 총선에서 민심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서도, 오히려 ‘극우 세력’에 기대 정권 옹위에만 치중하는 모양새다. 이를 위해 과거사를 부정하고, 외교안보의 미래까지 동원하려 든다면, 국민들이 이를 어디까지 언제까지 용납해야 하는가.
권태호 : 논설위원실장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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