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김건희, 측근) 관련

세 공직자 수난 부른 국정농단 그림자

道雨 2024. 8. 21. 09:47

세 공직자 수난 부른 국정농단 그림자

 

 

* 지난해 10월 10일 서울 영등포경찰서 백해룡 형사2과장이, 말레이시아에서 필로폰을 국내로 밀반입한 마약 밀매 조직 검거를 발표하면서 증거물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이 역대급 마약 밀수 사건을 수사하다 세관 직원들의 조직적 연루 혐의로 수사를 확대하던 중, 높은 곳으로부터 외압이 시작되고, 수사팀 해체와 형사과장의 좌천으로 이어진 ‘인천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 사건은, 영화로 만들면 식상하다는 평을 들을 만큼 익숙한 클리셰로 가득 차 있다.

사건 자체에 흥미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외압의 방식과 사후 처리가 너무나 전형적이어서 극적인 변수가 거의 없고, 내부고발자인 백해룡 경정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뜻이다.

 

100만회 가까이 투여할 수 있는 엄청난 양(27.8㎏)의 필로폰을 압수했고, 추가로 100㎏의 국내 밀반입을 막는 성과를 냈는데도, 백 경정은 감찰 조사를 두번이나 받고 지구대장으로 좌천됐다.

현장 수사까지 지휘하며 적극 독려하던 영등포경찰서장은, ‘용산에서 괘씸하게 보고 있다’는 말을 전한 뒤 태도가 돌변하더니 대통령실로 영전했고, ‘보도자료에서 세관 관련 내용을 삭제하라’고 지시한 서울경찰청 형사과장은 영등포경찰서장이 되어 직접 내려왔다.

 

대체 관세청이 얼마나 세길래 경찰 인사까지 좌지우지하는 것일까?

‘용산’은 갑자기 왜 등장하는 것일까?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정부에서, 최고의 포상을 해도 부족한 경찰 간부가 어쩌다 징계와 좌천의 대상이 된 것일까?

 

 

의문의 실마리를 풀어줄 인물이 조병노 경무관이다.

관세청에서 근무하다 경찰로 옮긴 그는, 인천(공항본부)세관장과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 당시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으로 마약 수사와 전혀 관련이 없던 그는, 일면식도 없는 백 경정에게 연락해 세관 관련 내용을 삭제해줄 것을 종용했다.

그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으로 김건희 여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이종호 블랙펄인베스트 전 대표 녹취록에서, 승진시켜줄 대상으로 이름이 거론되는 당사자다.

인천세관장-조병노-이종호-김건희로 이어지는 그림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의 경찰판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아직은 의혹 차원이지만, 박정훈 대령이 항명죄로 기소된 것도, 백 경정이 좌천된 것도 이종호-김건희 라인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굳이 대통령이 격노까지 하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일개’ 사단장 구하기에 나설 필요가 없듯이, 인사혁신처에 올라간 조 경무관 징계 건이, 경찰청장 의사와 달리 ‘불문’ 처리될 이유도 없다.

영등포서의 마약 수사 성과를 치하했던 윤희근 당시 경찰청장보다 윗선의 권력이 움직였다고 볼 근거가 충분하다.

 

세관과 범죄조직의 연계는 나라가 들썩일 만큼 큰 사건인데, 이렇게 조용히 넘어가는 이유가 권력의 은폐와 비호 때문이라면, 채 상병 사망 수사 외압 못지않은 중대한 비리가 발생한 것이다.

 

 

백해룡 경정과 박정훈 대령의 좌천 및 기소의 경우 김 여사가 배후로 의심된다면, 국민권익위원회 김 국장 사망 사건은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사건 처리 과정과 직접 관련이 있다는 증언이 쏟아졌다.

 

정의로운 공무원 세명이 법과 양심에 따라 맡은 바 직무를 수행했거나 하려 했지만, 외압으로 좌천되거나 ‘항명 수괴’로 몰리거나 죽음에 이르게 됐는데, 김 여사라는 열쇳말이 교집합으로 떠오른 것이다.

“내가 정권 잡으면 거기 무사하지 못할 거야”라는 김 여사의 음성이 자동 지원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모골이 송연해진다.

 

비단 이 세명뿐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경찰과 군과 권익위의 또 다른 공직자가 윗선의 압박과 양심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도 수사를 가로막는 세력의 방해로 괴로워하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 시절 분명히 배운 게 하나 있다면, 영문을 알 수 없는 기이한 일 뒤에는 반드시 음습한 비선권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세 공직자의 수난 뒤에도 비선권력의 국정농단이 있을 거라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안으로 민주주의와 경제가 무너져 내리고(소매판매액지수가 9분기 연속 감소해, 외환위기 때보다도 내수침체가 심각하다), 밖으로 제국주의 침략 역사 세탁의 “완벽한 공범”(미국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이 되어 국제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이 무더위가 언젠가 끝나듯 권력의 무도한 여름도 끝날 것이다.

 

아직 법적인 절차가 시작되려면 가야 할 길이 멀어 보이지만, 국민의 마음속에서 윤석열 정부는 오늘도 착실하게 탄핵 포인트를 적립하고 있다.

 

 

 

이재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