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러스트 벨트’ 위험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공장’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를 지나며 기업들이 중국 등 인건비가 싼 나라로 공장을 옮기기 시작했고, 제조업 부문의 일자리는 점차 사라졌다.
‘러스트 벨트’는 한때 제조업으로 번성했으나, 산업이 쇠퇴하면서 경기 침체와 인구 감소로 공동화된 지역을 가리킨다. 오하이오·미시간·펜실베이니아·인디애나주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부통령 제이디 밴스는, 오하이오주 미들타운이라는 러스트 벨트의 노동자 가정에서 자라며 겪은 일을 쓴 책 ‘힐빌리의 노래’로 명성을 얻으면서, 정치인으로서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러스트 벨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기반이기도 하다. 제조업 쇠락을 방치하던 미국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제조업 재활성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전쟁’을 벌이는 것도 미국의 제조업을 부흥시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는 다른 나라에 러스트 벨트를 ‘수출’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달 25일 현대자동차그룹은 2028년까지 미국에 총 210억달러(약 31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내 자동차 생산량을 현재 연간 70만대에서 120만대까지 확대하는 한편, 루이지애나주에 자동차 강판을 만드는 전기로 제철소를 건설할 계획이다. 미국이 자동차와 철강제품에 부과하는 25%의 관세를 피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미국 내 생산량이 늘어나는 만큼 국내 생산량과 관련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관세 압박이 한편에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중국산 제품의 공세가 있다.
미국 투자 계획을 밝힌 바로 이틀 뒤인 지난달 27일 ,현대제철은 4월 한달간 인천공장의 철근 제품 생산라인을 운영 중단한다고 밝혔다. 중국발 공급과잉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한 탓이다.
포스코도 지난해 7월 포항제철소 1제강공장 가동을 중단한 데 이어, 11월에는 1선재공장의 문을 닫았다.
석유화학 기업들도 구조조정 위기에 몰려 있다.
이근 중앙대 석학교수(경제학)는 이를 두고 각각 ‘미국발 공동화’, ‘중국발 공동화’라고 표현한다.
제조업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하다. 그리고 “제조업처럼 평범한 수많은 사람을 균등한 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는 산업은 없다”(양승훈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한국 경제에 닥친 이중의 공동화 위험을 극복하고, 러스트 벨트를 ‘수입’하지 않기 위한 고민과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안선희 논설위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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