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있는 글

이어령의 <말>中에서 (펌글)

道雨 2007. 6. 28.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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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령의 <말>中에서.

 

 


"하룻밤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다!"

이것은 어렸을 때 곧잘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면

정말 작은 기적처럼

새 아침이 오고

아프던 머리가 쓰라리던 새끼발가락이

말끔히 나아 있습니다.


파란 하늘에서는 종달새가 울고

엉겅퀴에는 영롱한 이슬이

맺혀 있습니다.


"걱정 말아라! 걱정 말아라.

하룻밤만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다."

그렇게 해서 많은 아침이

오고 또 오고

아팠던 일들은 앵두나무 가지를

흔들고 지나는 바람처럼

멀리멀리 가 버립니다.


연필이 부러져 속상해 하거나,

자치기에 져서 분해 하거나,

강아지가 죽어 슬픈 일이 생길 때에도

어머니는 말씀하십니다.


"얘야!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면

아무렇지도 않을 걸 가지고 뭐 그러니!"


그래요, 베개를 적셨던 눈물자국이 마르듯이,

밤 사이에 근심들은 다 날아가 버리고 영창 앞에는

흰 종잇장 같은 아침 햇살이 펼쳐지곤 합니다.


아! 지금 이 아픔이,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면

말끔히 잊혀지는 그런 것이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머니, 어른이 되고 난 다음부터는,

아버지가 되고 난 다음부터는,

술주정꾼이 밤마다 울고 지나는 그 골목길을

지나다니고 난 다음부터는,

콩나물을 다듬듯이 돌아앉아서 남루한

지폐장을 헤고 또 헤아리는

아내의 한숨을 듣고 부터는,

조석으로 읽는 신문의 굵은 활자와

바겐세일의 백화점 선전탑의

붉은 풍선과 검은 굴뚝 연기를 한꺼번에

보고 난 다음부터는

다시는 그런 기적 같은

작은 아침들은 오지 않습니다.


새가 울고 이슬이 매달리고 은종이 같은 햇살이 쏟아지는

그런 아침들은 영영 오지 않습니다.


하룻밤이 아니라 천 번 만 번 무수한 밤을

자고 또 자고 일어나도

더욱 짙어만 가는 아픔과 더욱 쌓여만 가는

근심만이 있습니다.


어머니,

그 비결을 저에게도 가르쳐 주십시오.

하룻밤만 푹 자고 일어나면 거짓말처럼

거짓말처럼 평온한 아침이 오는 ......

그런 비결을 몇 줄의 시로 쓸 수 있는

능력을 베풀어 주소서.

그래서 지금 모든 사람들이 수천 수만의 밤과

그 잠으로도 다 풀 수 없는 괴로움과 우수를

단번에 씻어 버리는 '말'의 증거를 보여주소서.

옛날 어린 시절 같은 아침을

다시 한 번 맞이할 수 있도록

우리 시인들이 어머니의

그 자애로운 말투를

배울 수 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