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재

[스크랩] 경복궁에 대한 궁금증

道雨 2007. 7. 2. 23:23

  경복궁에 대한 궁금증 

 

 

 

 

<용마루가 없는 경복궁 교태전>

 

 

 

질문 하나 : 궁궐로 들어가는 문은 왜 세 개일까?


경복궁이나 덕수궁과 같은 궁 뿐만 아니라 큰 사찰의 경우에도 들어가는 초입의 문은 모두 세 개로 되어 있다. 경복궁의 경우에도 광화문이나 흥례문, 근정문 모두 대문 하나와 좌우로 작은 문이 달려 있다. 큰문은 임금 전용 문, 좌우는 신하들이 다니던 문이라고 아이들에게 얘기해 주자. 사실 임금이 근정전을 벗어나 밖으로 나올 일은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을 지나도 임금이 드나드는 문은 일반 사람들과 같을 순 없었을 듯. 좌측의 문은 문신들이 다니던 문이고 우측의 문은 무신들이 출입하던 문. 원래대로라면 흥례문 중앙에 서면 광화문 중앙을 거쳐 광화문 네거리가 한 시야에 들어야 하는데 1960년대 광화문 복원을 하면서 남산 쪽으로 약간 자리를 트는 바람에 지금은 확 트인 광화문 네거리를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만 세 개가 아니라 길도 세 개로 나눠진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양 옆의 두 길은 비스듬히 경사가 있어 가운데 길과 확연히 표가 난다. 이 역시 가운데 길은 임금 만이 지나다닐 수 있는 길. 혹여 실수라도 가운데 문을 지나거나 가운데 길을 밟게 되면 엄한 벌을 받았다고 한다.

질문 둘 : 근정전 앞 마당의 돌은 왜 우둘투둘할까?


근정전을 현재 복원 공사 중이다. 올해 말이나 되어야 끝난다고 하니 그 전에 경복궁을 찾는 사람이라면 웅장한 근정전의 위엄을 느끼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근정전에서 아이와 할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근정전 앞마당엔 아이들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것이 근정전 실내 보다 많을 수도 있다. 일단 바닥을 덮고 있는 돌들을 유심히 살펴보자. 넓적넓적한 돌들은 크기부터 예사롭지 않다. 그 옛날 이 돌들을 어디에서 다 실어 왔을까? 게다가 이 돌들은 다 자연석이다. 굽거나 다듬은 것이 아니라 자연의 암반을 정으로 툭툭 쳐내 표면을 평평하게 했을 뿐이다. 왜 매끈매끈한 돌 대신 거칠거칠한 자연석을 깔았을까? 정차수 선생님의 설명이 재미있다. 우선은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근정전은 궐에 큰 행사가 열리던 곳.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선 임금도 그렇고 신하도 그렇고 화려한 금관조복에 사슴가죽으로 만든 가죽신을 싣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가죽신은 바닥이 매끈매끈해 비라도 오면 뒤로 벌러덩 넘어지기 십상. 따라서 바닥을 거칠거칠한 자연석을 깔아 미끄럼을 방지했다는 것. 또 햇빛이 좋은 날 야외에서 행사를 하기 마련인데 이때 바닥이 매끄러우면 빛이 반사되고 그러면 높은 자리에 앉은 임금의 시야를 불편하게 한다는 것. 뿐만 아니라 복사열을 방지해 더운 여름날에도 땅에서 올라오는 더운 기운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돌 하나를 깔면서도 얼마나 세심한 살핌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질문 셋 : 바닥에 웬 무쇠 고리?


근정전 앞마당에서 또 눈에 띄는 것은 좌우로 하나씩 있는 커다란 무쇠 고리. 돌바닥에 단단하게 박혀 있는 이 고리의 용도를 두고 초중학생들은 지하 터널로 들어 가는 입구라며 고리를 잡아 있지도 않은 돌문을 열겠다며 용을 쓴다고 정차수 선생은 말한다. 이 고리는 차일을 칠 때 쓰던 것이다. 운동회 같을 때 햇빛을 가리기 위해 천막을 치는데 근정전에서 연회를 열 때도 천막을 쳐서 햇빛을 가리거나 갑자기 내리는 비 가리개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때 바닥에 박힌 고리에 줄을 이어 천막을 고정시켰다는 것.


질문 넷 : 십이지상에서 빠진 동물은?


지금은 근정전이 보수 공사 중이라 계단을 올라가서 관람할 수가 없다. 그러나 공사가 끝나면 돌계단을 올라 내부를 볼 수도 있고 돌난간을 따라 사방으로 세워져 있는 12지상을 코앞에서 볼 수도 있다. 12지상이라고 하나 사실 개와 돼지 상은 빠져 있다고. 아이들에게 12지상이 무엇무엇인지 먼저 일러 주고 난간을 따라 돌며 하나 씩 찾아보면 재미있을 듯. 또한 12지상 뿐만 아니라 각종 돌조각상들이 놓여 있는데 각 조각들의 시선을 한 번 유심히 살펴보자. 시선이 가는 곳이 제각각 다르다는 것일 알 수 있을 것이다. 조각상들이 지키는 영역이 다르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질문 다섯 : 궁궐의 화장실은 어떻게 생겼나?


경복궁을 두고 혹자는 사람의 냄새라고는 맡을 수 없는 죽은 공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 사는 곳이었다면 당연히 있어야 할 부엌이며 화장실 등 생활의 공간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임금이나 왕비는 이동식 전용 변기인 매우틀이라는 것이 있었다지만 상주하던 수 백 명의 사람들은 어디서 볼일을 봤을까? 그 궁금증은 근정전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는 세자의 거처인 동궁에서 풀 수 있다. 동궁의 뒤안에는 여자 화장실이 있고 마당의 왼쪽에는 남자 화장실이 있다. 여자 화장실은 굳게 닫혀 있어 내부를 볼 수 없지만 남자 화장실은 빗장만 채워져 있기 때문에 내부까지 들여다 볼 수 있다. 세 칸의 화장실 내부는 요새야 흔히 볼 수 없는 목조 재래식 화장실인데 특이한 것은 세 칸 화장실이 별도의 여닫이 문으로 가려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화장실로 들어가는 문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는 것. 게다가 문에 빗장이 달려 있어 밖에서 닫게 되어 있다. 혹시 화장실을 통해 동궁으로 침입할 수 잇는 침입자를 막기 위해 밤에 밖에서 문을 채웠다는 것이다.


질문 여섯 : 정말로 해시계로 시각을 알 수 있을까?


임금의 집무실이라고 할 수 있는 사정전에 들어 섰다면 해시계가 아이들을 맞는다. 이곳 말고도 궁궐 곳곳에는 해시계를 설치해 두었다고 하는데, 덕수궁에도 이와 같은 해시계가 있다. 날씨가 좋은 날은 아이들과 해시계를 통해 시각을 알아 맞춰 보자. 시계는 시각뿐만 아니라 방위와 절기까지 함께 알 수 있는 데 세로선이 시각을 나타내는 것으로 하나가 30분으로 그림자가 가리키는 시각을 쫓아가면 아빠가 차고 있는 손목시계의 시각과 딱 30분 차이가 난다. 이는 우리가 쓰는 표준시각이 동경에 맞춰져 있기 때문. 우리나라와 일본의 경도차이를 감안하면 해시계가 가리키는 시각이 정확하다고 한다.


질문 일곱 : 경회루가 지폐에 있다?


경복궁하면 단연 단일 누각으로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경회루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경회루 앞에서 찍은 기념 사진은 엄마아빠의 앨범에도 한 장씩 있기 마련. 능수버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고 연못을 따라 의자가 둘러 있기 때문에 제법 퍽퍽해오는 다리도 쉴 겸 의자에 앉아 경회루 정취를 맛보기 좋다. 이때 아빠는 지갑에서 만 원 짜리 한 장을 꺼내 뒷면에 그려진 경회루 그림을 보여주며 지폐 속의 경회루와 눈앞의 경회루의 비교해 보면 어떨까?


 

질문 여덟 : 강령전과 교태전의 지붕은 다른 지붕과 뭐가 다를까?

 

경복궁 교태전과 강령전은 임금의 부인 왕비가 잠자는 침전이다. 하늘의 천기를 받아 왕자를 생산해야 하기에 용마루가 없는 특이한 구조다


임금의 거처인 강령전과 왕비의 거처인 교태전은 왕실의 사적 공간으로 볼 수 있다. 이곳의 용도에 대한 간략한 설명 뒤에는 지붕 위로 눈을 돌려 보자. 다른 건물들의 지붕과 그 모양새가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강령전과 교태전에는 용마루가 없다. 기와 지붕에 용마루를 올리게 되면 건물이 웅장해 보이고 규모 있게 한다. 이렇게 독특한 건축양식이 유독 강령전과 교태전에서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지붕 위에 뭔가를 올려 왕과 왕비의 기운을 누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용마루가 있고 없음에 따라 지붕의 모습이 얼마나 달라 보이지는 옆에 있는 건물들과 비교해 보면 좋을 듯하다.


질문 아홉 : 계단의 모양이 왜 다를까?


궁에서 볼 수 있는 계단은 크게 보아 장식을 한 것과 아무런 장식이 없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일단 문양이 새겨져 있거나 소매돌이라고 하는 구불구불한 장식돌이 있는 것은 임금이 다니던 계단으로 보면 된다.


질문 열 : 굴뚝이 보물인 나라가 있을까?


교태전 뒤 왕비 전용 후원이 아미산이다. 아미산은 여느 정원과 달리 계단식으로 되어 있고 첫 시작 계단도 아이 키 높이 만큼 올라가 있다. 이것은 교태전에 앉아 있을 왕비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넓진 않지만 정원은 달과 해를 나타내는 상징물과 사시사철 왕비가 눈요기할 수 있는 꽃이 피고 지기를 거듭했다고 한다. 아미산에서 가장 값나가는 것은 무엇일까? 정답은 굴뚝. 보물 제 811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굴뚝은 당초문으로 테두리를 두르고 사군자 십장생 만 자 등 다양한 그림이 새겨져 있는데 불을 잡아 먹는다는 상상 속 동물인 불가사리를 찾아봐도 좋을 듯하다. 경복궁 굴뚝 가운데 또 뺄 수 없는 것이 왕의 어머니 거처, 즉 대비가 머물던 자경전의 십장생 굴뚝이다. 크기부터 여염집 굴뚝과 비교가 되지 않으며 정교한 십장생 문양은 아이들 눈에도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과 십장생을 하나씩 찾아보자.


질문 열하나 : 향원정 연못의 물은 어디서 왔을까?


경복궁 답사의 마지막 코스는 왕실 정원인 향원정. 현재는 국립민속 박물관도 이 옆에 자리잡고 있어 아이들과 쉬 가 볼만한 곳이다. 공식적인 연회장소로 이용되었던 경회루가 남성적인 느낌이 강한 반면 왕실 가족들만을 위한 사적인 공간이었던 향원정은 오밀조밀한 꾸밈이 여성적이다. 향원정이되었건 경회루가 되었건 경복궁의 물은 북악산 계곡에서 흘러 내린 물이다. 향원정 왼쪽으로 난 제법 규모가 큰 천에는 지금도 북악의 맑은 물이 흘러 내린다. 이곳에서는 아이와 함께 재미있는 물놀이를 할 수 있다. 향원정 열상진원이 바로 그곳. 북악산의 차가운 물이 곧바로 연못에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한 장치이다. 북악의 차가운 계곡물이 바로 연못으로 흘러 들어가면 온도 차이에 의해 고기가 죽을 수도 있고 또 흘러 들어가는 물의 양이 달라 혹 잔물결이라도 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를 막기 위해 돌로 만든 물통에 들어온 물은 방향을 동쪽으로 한번 바꿨다가 다시 돌판 속에서 남쪽으로 바꿔 연못으로 흘러 들어 가게 되어 있다. 그 사이 물은 온도가 높아지고 세기가 줄어든다고 한다. 아이와 함께 나뭇잎 하나 주어 물에 띄워 보자. 물통에서 동글동글 맴돌던 나뭇잎이 물을 따라 쏙 사라졌다가 20~30초 후 연못 수면으로 떠오른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모델로 따라 나선 은지가 제일 재미있어 했던 곳이 이곳이었는데 덕분에 아빠는 주변의 풀잎을 찾아 몇 번을 헤매야 했다.


질문 열둘 : 궁에도 잔디밭이 있었나?


경복궁 곳곳엔 잔디밭이 잘 조성되어 있다. 물론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몇 곳 없다. 다 줄을 처 출입금지 구역임을 표시해 두었다. 사람의 발길까지 막아가며 보호하고 있지만 사실 경복궁엔 잔디밭이 들어설 자리가 없어야 마땅하다. 잔디가 있던 넓은 터는 모두 예전에 건물이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한다. 우리네 건물 꾸밈에 잔디는 없었다. 근정전 마당처럼 돌을 깔거나 마사토를 덮었을 뿐이다. 설명을 듣고 보니 유실된 왕실의 건물도 애석한데 사람의 출입까지 막는 잔디밭이 밉상스럽다.

출처 : 토함산 솔이파리
글쓴이 : 솔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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