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염쟁이 유씨'를 보고
* '염쟁이 유씨' 팜플렛과 입장권.
어제(2008년 6월 7일) 저녁, 집사람과 함께 남포동에 있는 가마골 소극장에서 '염쟁이 유씨'라는 연극을 관람했다.
용두산 공원으로 올라가는 중앙동 40계단 앞에 있는 가마골 소극장에는 어제 처음으로 가봤는데. 요즈음 문화생활에 관한 관심의 증대로, 인터넷 문화공간을 뒤지어, 지난 5월에 예약해둔 공연이었다.
우연이지만 사흘 전 문화회관에서 관람한 부산시립극단의 '연기가 눈에 들어갈 때'와 배경이 비슷하다. '염쟁이 유씨'는 장의사, 연기가 눈에 들어갈 때는 '화장터'를 배경으로 삼고 있어, 둘 다 죽음과 관련이 있었다.
'염쟁이 유씨'는 40년 넘게 가업인 염을 하면서 살아온 염쟁이의 이야기이다. 그는 이제 생의 마지막 염을 하고 있다. 정해진 절차와 의례에 따라 주검을 수습하면서, 염쟁이 유씨는 자신이 살아오면서 만났던 죽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연극배우 유순웅(영화배우 유해진과 많이 닮았다)이 1인다역(1인 15역)으로 진행하는데, 관객들까지 연극에 참여시키면서, 호흡을 함께 하고 있다.
관객들 중 일부는 즉석에서 연극배우(망자의 가족, 문상객, 기자 역할)로 합류하기도 하고, 배우와 술을 주고받기도 하였으며, 배우 유순웅은 관객 들 중 일부 적극적인 참여자에게 상품을 나누어주기도 하였고, 관객들 모두가 망자를 위한 곡을 하게끔 만들기도 하였다.
배우의 연기에 맞추어 어떤 감상적인 노래가 배경으로 흘러나오기도하였다. 대사하는 것을 보니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었다.
염쟁이 유씨는 우스운 이야기, 진지한 이야기, 슬픈 이야기 등을 표정과 몸짓으로 아울러 망라하고 있는데, 처음과 중반은 웃음으로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모두가 눈물이 어리고 숙연한 마음으로 젖어들게 만들었다. 모든 관객들이 감동에 휩싸여 연극이 끝나고도 한참을 일어나지 못하고 자리에 앉아있었다.
연극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유씨는 조상 대대로 염을 업으로 살아온 집안에서 태어난 염쟁이다.
평생을 염을 하며 여러 양태의 죽음을 접하다 보니, 그로 인해 삶과죽음에 대한 생각 또한 남다른 유씨.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일생의 마지막 염을 하기로 결심하고, 몇 해 전 자신을 취재하러 왔던 기자에게 연락을 한다. 유씨는 기자에게 수시로부터, 반함, 소렴, 대렴, 입관에 이르는 염의 절차와 의미를 설명하며 염의 전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겪어왔던 사연을 이야기 해준다.
조폭 귀신과 놀던 일,
오로지 장삿속으로만 시신을 대하는 장의대행업자와의 관계,
자신이 염쟁이가 되었던 과정,
죽은 사람이 깨어나고 대신 일가족이 죽은 이야기,
아버지의 유산을 둘러싸고 부친의 시신을 모독하던 자식들의 한심한 작태,
그리고 자신의 아들 이야기.
마지막 염을 마친 유씨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죽는 거 무서워들 말어. 잘 사는게 더 어렵고 힘들어."라고.......
* 염쟁이 유씨가 생애 처음으로 염을 한 시신은 바로 자기의 아버지였으며, 이제 관객을 앞에 놓고 생애 마지막으로 염을 한 시신이 바로 염쟁이 유씨 자신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관객들은 미처 모르고 있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알게 되고는, 모두가 가슴이 막막해지며 눈물이 어리게 되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얼굴 부분의 염을 할 때 그렇게 천천히 정성을 들여, 안타까운 듯 했던 것이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 연극 중 기억될 만한 대사.
"죽는 것도 사는 것처럼 계획과 목표가 있어야 헌다는겨. 한 사람의 음식솜씨는 상차림에서 보여지지만, 그 사람의 됨됨이는 설거지에서 나타나는 벱이거든. 뒷모습이 깔끔해야 지켜보는 사람한테 뭐라두 하나 남겨지는게 있는 게여."
"죽어 석 잔 술이 살아 한 잔 술 만 못하다구들 허구, 어떤 이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들 허는데, 사실 죽음이 있으니께 사는 게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지는 게여. 하루를 부지런히 살면 그 날 잠자리가 편하지? 살고 죽는 것도 마찬가지여."
"공들여 쌓은 탑도 언젠가는 무너지지만, 끝까지 허물어지지 않는건 그 탑을 쌓으면서 바친 정성이여.. 산다는 건 누구에겐가 정성을 쏟는 게지. 죽은 사람 때문에 우는 것도 중요허지만, 산 사람들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이 더 소중한게여.
삶이 차곡차곡 쌓여서 죽음이 되는 것처럼, 모든 변화는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 보태져서 이루어지는 벱이여. 죽는 거 무서워들 말어. 잘 사는 게 더 어렵고 힘들어."
*** 염쟁이 유씨는 2006년 서울연극제에서 관객평가단이 선정하는 인기상을 수상하였으며, 올해는 서울과 전국 순회공연을 넘어서 외국 공연도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 배우 유순웅은 청주 출신으로, 지방 연극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충북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충청도 배우'로 알려져 있다.
**** 오늘 아침 인터넷(벅스뮤직)에서 '귀천'이라는 노래를 찾아보니 10여 곡이 나왔다. 그리고 그 중에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노랫말로 한 노래가 여섯 곡이 있었다.
그 노래들을 모두 감상했는데, 그 중에 가장 내 맘에 드는 것이 '좋은 날 풍경'이 부른 것이어서 여기에 실어본다.
귀 천
- 시 : 천상병, 곡,연주,노래 : 좋은 날 풍경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팜플렛 내용, 연극의 줄거리를 소개하고 있다.
### 우스개 퀴즈
1.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죽는 이유는?
답) (놀이하다가 땅에 그어진) 금을 밟아서.
2. 어른들이 가장 많이 죽는 경우는?
답) (고스톱에서) 광을 팔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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