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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행복을 연결시키기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을 읽고)

道雨 2007. 10. 9.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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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쓴 김현숙씨는 해운대도서관 주부독서회 회원이며, 이 글은 부산광역시해운대도서관 주부독서회에서 발행하는 잡지  '가꾸는 삶'에 실린 글을 옮겨 온 것입니다.  

* 2007년 10월, 부산시민도서관의 시민독후감 공모에서 우수상(부산시장상)을 받은 글이기도 합니다.

 

 

 

           가난과 행복을 연결시키기

(알렉산더 폰 쇤베르크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을 읽고)

                                                                   김 현 숙



‘가난’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을 때나 원하는 만큼보다 모자랄 때 느끼는 부족감이다. 그래서 가난은 불만족이나 불행에 가까운 편이다. 부부싸움도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싸움의 횟수가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고도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IMF 이후로 가난의 원인이 하나 더 늘어났다. 회사는 고비용이 지불되는 인건비를 줄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수입이 끊기고 생활수준은 전처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의 변화 속에서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사실과 행복감을 맛보면서 살아야 한다는 사람의 권리이자 의무인 이 사실을 우리는 생활의 구석구석을 헤집으면서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물질적인 빈곤이 일상이었던  현대사회 이전에는 물질적인 풍족함이란 아주 드문 행운이자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면 생활에 필요한 에너지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한 나라 안에서 생산되는 물품만으로 자급자족해야 하다 보니 절대적으로 부족한 물품은 어쩔 도리가 없어 결핍의 주요 이유가 되었다. 모두가 가난하고 소수가 풍족할 때는 부족하다는 것이 덜 괴롭다. 내 이웃이 나와 비슷한 처지이기 때문이다.

  헌데 현대사회로 접어들어서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자연자원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이 좋아 지면서 생활이 풍요로워졌다. 그런데 사회는 자체적인 변화를 거듭하게 되는데 수입을 보장해 주던 직장이 일자리를 줄이기 시작했다. 직장을 잃은 실업자가 늘어나고 자영업자는 치열한 경쟁관계가 되는 가운데 수입은 과거보다 줄어들기 시작했다.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의 저자 알렉산더 폰 쇤베르크는 독일의 고위직 언론인으로서 근무하다가 1990년대 후반에 퇴직을 당했다. 쇤베르크는 자신의 직장에서의 해고는 빠르게 변화를 받아들이는 언론계에서 일어난 변화의 시작으로서, 이것은 전체 직업세계 모든 분야로 파급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퇴직은 풍요롭게 사는 일을 멈춰야 되고,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을 방식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불필요한 부분에 지출되는 돈은 줄이고, 또는 아예 나무의 잔가지를 치듯이 지출란에서 항목을 빼버리기도 한다. 쇤베르크는 수입이 보장되는 직장생활 대신, 모든 부문에서 지출을 아껴야 생활이 유지되는 처지로 바뀌면서, 자신의 생활 전부를 다시 재점검한다. 경제적인 부족함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가 생활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을 또 다른 풍요, 즉 문화적이고 내면적인 풍요를 유지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석유자원의 고갈을 쇤베르크는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서 절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는 이유로 들었다. 석유자원은 점차 줄어들고 있는데 석유 소비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석유생산은 줄어드는데 소비는 증가를 멈출 수 없음으로써 석유가격은 계속 오를 것이다. 전기요금, 난방비, 수도요금, 교통비 등 석유에 의존했던 모든 부분에서 비용이 상승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수입이 적은 사람들은 물론, 일정수입이 유지되는 사람들조차도 고비용의 생활비가 들게 되는 시점이 조만간에 다가온다고 말한다. 그러면 옛날 조상들이 부족한 자원을 가지고 아끼고 나눠서 살았듯이, 앞으로 결핍의 시대를 살아갈 우리들에게도 꼭 필요한 생활의 지혜를, 역시 자원이 부족한 시대를 살아왔던 조상들에게서 찾아봐야 할 것이다.

 

   풍요의 시대에는 유행에 뒤떨어졌던 미덕들인 정중함, 친절함, 도와주려는 마음 등, 삶을 쾌적하게 해주는 이런 것들이, 결핍과 부족함이 일상화되는 시대에는 소중한 덕목으로 다시 부활하게 될 것이라고 쇤베르크는 말한다. 과도한 경쟁과 한계를 모르는 부의 축적, 그리고 소비가 행복이라는 광고가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던 자리에, 과거로부터 가치 있는 것으로 살아 남아서 현재까지 이어져온 내면의 가치들 - 배려, 인정, 들어주는 것 등 등은 사람을 편안하고 안정시켜주는 심리적인 치료효과까지 겸한다. 만족과 행복, 즐거움은 동전의 양면처럼 결핍과 부족함의 반대편 동전 면에 있다고 한다. 생활을, 삶을, 인생을 새롭게 보려고 하는 눈을 뜬다면 보이지 않던 이면들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동양의 철학과 생활의 지혜로 대표되는 덕목이었던 근검과 절약, 지족과 중용은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필요한 덕목이었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그런 덕목들이 선택사항이 아니고 필수사항이었다. 서양 역시도 근대이전에는 그런 미덕들이 계속 중시되었다. 서양의 대다수의 사람들도 근검절약이 아니고서는 존재하기가 어려웠다. 

 풍요와 경쟁과 자원의 무한 이용과 같은 전투적인 가치관은 근대와 더불어 유행된 덕목이었지만, 미래를 살아갈 우리에게 계속 유용한 가치관이 될 수 있을지 재평가해봐야 될 요소가 되었다.  가난이라는 물질의 부족은 이제 한 개인의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를 넘어서, 역사적인 차원의 문제라고 쇤베르크는 말한다. 열심히 일할 일자리가 갑자기 없어져 버릴 때 개인은 무력해질 따름이다.

 

만족의 개념을 쇤베르크는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풍요 속에서 만족은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이지만, 또한 풍요 속에서는 쉽게 이룰 수 없는 것 또한 만족이라고 한다. 부족한 가운데 만족을 느끼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또한 결핍 가운데서 만족은 의외로 쉽게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심리적인 측면에서 이미 많은 만족을 느낀 사람은, 비슷한 상황 속에서의 만족보다는 더 높은 만족을 추구하기 때문에 느끼지 못하지만, 어려운 처지의 사람은 현재의 상황보다 조금만 나은 상태를 접하면 쉽게 만족감을 느낀다고 한다.

 

‘포기’의 미덕을 쇤베르크는 이런 측면에서 설명하는데 '할 수 있지만 하지 않기로 포기하는 것, 갈 수 있지만 가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지만 거절할 수 있는 용기는, 미래의 만족과 행복을 저축하는 것과 다름없다'라고 말한다.

 

  자식을 잘 키우는 방법으로, 아이가 사달라고 하는 것을 다 사주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대신에 아이와 같이 놀아주고 시간을 같이 보내게 된다면, 부모와 아이에게 풍요로운 추억의 시간이 될 수 있고, 교육의 시간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돈이 없는 부모는 돈이 해줄 수 없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시간과 경험을 자식과 같이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이것 또한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의 하나가 될 것이다.

 

   일생의 주기 속에서 한 개인이 수입과 소비의 균형을 잃지 않는 일, 만족과 포기라는 커다란 관점을 생활 속에서 실현하는 일, 여가를 시간과 돈과 열정의 사이에서 배려한다는 작업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허지만 또한 꼭 한번은 정리하고 생활 속에서 실현시켜야 될 가치이자 생활의 요소이다. 생활하는 곳곳에서 계속 개선과 반성을 요구하는 외침이 들려온다. 또한 절제되지 않은 욕망이 같은 속도와 무게로 같이 자리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세운다. 개인의 일상생활이 역사적인 차원의 의미로 해석되는 이즈음에, 역사의 파도에 휩쓸려 침몰되지 않고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는, 어쩌면 치열한 삶의 무대 위에 서 있으면서도 치열함의 정도를 간간이 알아차릴 따름인, 그런 둔감한 일상인이기도 하다.


  콩나물은 물을 먹고 자란다. 시루에 콩을 담아놓고 시간 맞춰 물을 부어주면, 물은 콩을 적시고 콩과 콩 사이를 통과하면서 흘러내린다. 그리고 콩은 물을 잡아두지 않지만 뿌리를 내리고 차츰 키가 자라고 몸은 통통하게 살이 찌기 시작한다.

  쇤베르크의‘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은 나에게 물처럼 다가왔다. 나의 내면은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을 만나서 콩나물이 자라는 속도로 그만큼 자라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