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당신의 인생은 호르몬이 결정한다

道雨 2009. 2. 3. 14:27

 

 

 

     당신의 인생은 호르몬이 결정한다

 

【서울=뉴시스】
지금 막 사랑에 빠진 연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서로 눈길만 마주쳐도 웃음이 배시시 삐져나오는가 하면 가슴에는 늘 나비 한 마리를 잡아넣은 듯 산들바람이 분다. 밥을 먹으러 가도 정작 관심은 서로에게만 꽂혀 있어 음식은 먹는 둥 마는 둥 하기 일쑤다. 한 밤 내내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사랑의 백야'를 보내기도 한다.

사랑에 사로잡힌 연인들에게는 '페닐에틸아민'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스피드나 엑스터시 같은 마약의 주성분인 암페타민 계열의 이 호르몬은 마치 환각 상태와 같은 흥분과 쾌감을 안겨준다.
  
  

 

페닐에틸아민은 식욕을 억제해 주는 효과도 있어, 평소 밥을 솥째 들고 먹는 여성이라도 연인 앞에서는 새 모이 먹는 것과 같은 모습을 연출하게 만들기도 한다. 젊은 여성이 어느 날 갑자기 활기가 넘치고 몰라보게 날씬해진다면 새로운 사랑에 빠진 것이라 생각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사랑의 감정은 오래 가지 못한다. 사랑의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 등은 일정기간이 지나면 서서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미국 코넬대학교 인간행동연구소 신디아 하잔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관계 초기 분비되는 도파민과 페닐에틸아민, 옥시토신 등의 '사랑 호르몬'은 2년이 지나면서 급격히 감소,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후에도 관계는 지속될 수 있지만 초기와 같은 열정적인 흥분과 교감은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를 기반으로 사랑의 유효기간을 '3년 이내'로 정의했다. 오랫동안 인간의 주요 '화두'였던 사랑의 감정을 호르몬으로 해석해낸 것이다.

이처럼 최근 쏟아지는 호르몬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들은 과거 인간의 정신과 의지 혹은 천성으로 여겨지던 여러 가지 행동 패턴들이 실은 '호르몬의 마술'에 의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 사랑, 시작도 끝도 모두 호르몬의 장난?
호르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 관계의 주요 파탄 원인인 '바람기'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기도 하다.

최근 미 연구팀의 발표에 따르면, 소위 남자들이 많이 따르는 '색기'가 넘치는 여성들은 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과잉 분비로 그 같은 성향을 갖게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자신의 외모에 대해 매우 매력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남자 파트너를 자주 바꾸거나 바람을 잘 피웠다. 관계에 대한 기회주의적인 성향도 많아서 남자로부터 많은 선물이나 돈을 뜯어내려는 경향을 나타냈다. 여성들에게는 공공의 적이지만 남성들에게는 '여왕벌'인 이들은 결국 여성호르몬 과잉 분비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지난해 9월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소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바소프레신이라는 호르몬의 수용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는 남성들의 경우 다른 남성들에 비해 결혼에 골인할 확률이 낮았으며 결혼을 하더라도 순탄한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이 같은 호르몬은 상황에 따라 분비가 조절되며 사람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일부일처제를 유지하고 있는 마모셋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시된 연구에 따르면, 갓난아기를 안은 수컷은 몸 안의 공격성과 바람기를 유발하는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크게 줄어 자상하면서도 충실한 아빠이자 남편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놀라운 것은 소위 '즐기고 튀는' 바람둥이 성향이 높은 '초원 들쥐'의 수컷들에게 일부일처제 성향이 높은 다른 종의 쥐 호르몬 수용체 유전자를 삽입하자 바로 헌신적인 모습으로 돌변했다는 것이다. 대책 없는 바람둥이 남성을 호르몬 요법으로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최근에는 기존에 임신과 출산에 관여하는 호르몬으로 흔히 알려진 옥시토신의 새로운 효과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옥시토신은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서도 왕성하게 분비되는데, 이는 사랑의 친밀감을 유지시켜주기 위한 '자연의 선물'로 여겨지고 있다. 옥시토신을 투여 받은 쥐는 짝짓기에 이르는 시간도 짧고 그 성공률이 월등히 높다는 연구가 발표된 바 있으며, 옥시토신을 흡입한 부부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싸움을 빨리 끝내는 등 금슬 좋은 모습을 연출했다는 결과도 있다. 옥시토신은 아울러 사회적 인지능력도 향상시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 호르몬, 재력과 적성, 사회적 성취에도 영향
최근 주목받고 있는 '손가락 연구'도 호르몬과 연관이 있다. 보통 남성은 두 번째 손가락(검지)보다 네 번째 손가락(약지)의 길이가 긴데, 이 길이의 차이가 클수록 태아 시절 어머니의 자궁에서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에 노출된 수준이 높다.

흥미로운 것은 이 같은 약지의 길이가 남성의 부와도 연관이 된다는 것이다.
지난달 12일자 미 국립과학원회보에 소개된 영국 연구팀의 발표에 따르면, 남성 주식 트레이더들을 대상으로 약지와 검지 길이의 차이와 수익률의 관계를 조사한 결과, 차이가 큰 사람이 작은 사람보다 11배에 가까운 수익을 올렸다. 이들은 자신감과 위험 감수 경향이 높고 판단 시간이 짧고 행동이 빨라 남보다 신속하고 과감한 투자를 했고, 그만큼 수익률이 높았다.

비슷한 사례로 천재 남성 과학자들의 위대한 발견이나 연구 업적은 대부분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왕성한 30대 중반 이전에 나왔다는 연구도 있다. 젊은 시절 이성을 매료시키고자 하는 생물학적 동기가 '정신적 괴력'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반면 여성의 경우 일반적으로 검지와 약지의 길이가 거의 같거나 남성에 비해 그 차이가 미세한 경우가 많은데, 남성처럼 약지가 긴 여성들에게서 레즈비언이나 운동선수가 많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난 2007년에는 약지가 긴 학생일수록 수학 능력이 뛰어나고, 짧거나 비슷한 사람일수록 언어 능력이 좋은 것으로 밝혀졌다는 영국 과학자들의 연구가 발표돼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손가락으로 알아보는 호르몬의 영향은 그 사람의 운동능력이나 재능, 적성 등을 가늠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해 더욱 활발해지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이 같은 호르몬 연구에 대한 논란 및 우려도 적지 않다. 특히 앞서 소개된 바와 같이 호르몬을 통해 남성의 바람기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윤리성 논란을 유발, 실제 도입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손가락 연구 역시 태중 호르몬 노출 외에도 다른 환경적 요인 등이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이를 통해 한 사람의 재능이나 성향을 파악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한 개인의 사랑과 성취에는 모두 호르몬 이상의 '결정적 알파'가 있어야 하는 만큼 호르몬의 영향은 작은 요소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하지만 과거 인간의 의지와 천성 혹은 우연으로만 여겨지던 행동 패턴을 호르몬이라는 새로운 생물학적 관점으로 풀어낸 최근 연구는 인간을 이해하는 새롭고 신선한 관점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각광받고 있다.

정진하 기자 nssnater@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