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질 나쁜 성장주의

道雨 2010. 12. 30. 13:37

 

 

 

                 질 나쁜 성장주의
 
» 박순빈 경제부문 편집장

 

 

올해 정부 각 부처의 세밑 풍경은 과거와 많이 다르다.

예년 같으면 해를 넘겨 첫달에 할 업무계획 보고를 거의 마무리했다. 정부 쪽에선 한나라당이 일찍 예산안을 통과시킨 덕분이라고 한다.

내년에는 각 부처가 1월부터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갖췄다. 불안 요인이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 외부 여건도 한결 나아진 상태다.

그래서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경제부처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 차원에서 운용해온 경제정책을 정상 기조로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새해에는 실제로 이명박 정부가 뭔가 보여줘야 한다.

집권 3년 동안의 정책 성과가 내년쯤이면 가시화해야 한다. 또 2012년 총선과 대선 무대에서 평가될 성적표로서 가장 가중치가 높은 시기가 내년이다.

정부도 이런 점을 의식한 듯 내년 목표를 높게 잡았다. 성장률 5%에 28만명 안팎의 새 일자리를 목표로 내세웠다. 국내외 연구기관 예상치에 견줘 볼 때 다소 과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명분을 생각하면 보잘것없는 수준이다.

 

내년 성장 목표치를 달성하더라도 집권 4년간의 연평균 성장률은 3%대 초반에 머물게 된다. 이는 안정적인 물가수준을 유지한 가운데 최대 성장능력을 뜻하는 잠재성장률에도 한참 못미친다.

현 정부·여당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복지 포퓰리즘’이니 ‘경제를 파탄시킨 정권’이니 하며 거세게 비판했는데, 그래도 두 정권은 연평균 4.3%의 성장으로 잠재성장률을 달성했다.

 

일자리 창출 능력을 비교하면 더욱 초라해진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 3년간 실적에다 내년 목표까지 합산하면 연평균 취업자 수 증가는 16만명으로, 참여정부의 28만명보다 12만명이 적다.

성장을 통한 고용창출 능력도 떨어졌다. 참여정부에선 5년 동안 성장률 1%포인트 상승으로 연간 6만5000명의 일자리 창출 능력을 기록했는데, 이명박 정부에서는 5만6000명으로 16%나 감소했다. ‘성장 우선’을 내걸고 집권한 정권이 성장 면에서는 더 무능력한 꼴이다.

 

이 대통령의 간판 구호인 ‘747’(성장률 연평균 7%,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경제규모 세계 7위)은 이제 개그 프로그램에 등장할 빈말이 돼버렸다. 이 대통령과 경제정책 담당 고위관계자들은 실제로 ‘747’을 소재로 개그나 다름없는 말잔치를 펼쳐왔다.

이 대통령은 집권 첫해에 “747은 공약이 아니라 비전이다. 그런 꿈을 갖고 살자는 얘기다”라며 어물쩍 넘어갔다.

정책 담당자들은 “집권 내 한번이라도 7% 성장률을 달성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가 “7% 성장 능력을 갖춘 경제체질을 갖추겠다는 것”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그러더니 이런, 이 대통령이 도입한 전용기로 747이 등장할 줄 누가 알았겠나.

 

초라한 경제 성적표에 따른 여론의 질타를 예상한 탓인지 정부는 선제방어에 나선 듯하다.

최근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외국 경영컨설팅회사 관계자들의 평가를 인용해 “내년 성장은 체감적으로는 훨씬 질이 좋은 성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객관적인 평가가 어려운 ‘질적 목표’로 심판을 받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정부 각 부처가 내년 업무보고에서 밝힌 정책목표나 과제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 표현이 눈에 띄게 늘었다. ‘거시경제의 안정과 경제체질 개선’, ‘서민경제 활성화와 삶의 질 제고’(재정부), ‘서민주거 안정 지원’(국토해양부), ‘일을 통해 함께 잘사는 공정사회 구현’(고용노동부) 등등.

 

그러나 세부적인 내년 정책과제들을 뜯어보면, 대부분 공급 중시형 성장 위주 정책들이다.

서민경제와 밀접한 부동산정책은 부실 건설사들까지 ‘퍼주기’ 하겠다는 내용들이고, 금융정책이나 고용정책도 서민·중산층을 고려하기보다 공급자 편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선진국에선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파산’을 선언한, 질 나쁜 성장주의 정책을 이명박 정부는 계속 붙들고 가겠다는 얘긴가.

 

<박순빈 경제부문 편집장 sbpark@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