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오판 | |
1964년 8월2일 북베트남 동쪽의 통킹만에서 2200t급 미국 전함과 25t급 북베트남 P-4 고속어뢰정 3척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미국 전함은 고속정이 쏜 14.5㎜ 기관총 탄환에 약간의 손상만 입은 채 상황은 종료됐다. 이틀 뒤 북베트남 해군들이 공격 준비를 하는 게 레이더에 감지됐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몇 시간 뒤 기상 악화로 인한 레이더병의 실수로 밝혀졌다. 그런데도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은 ‘북베트남이 공해상에서 어뢰로 미국 구축함을 공격했다’며 베트남전 참전을 선언했다. 그렇게 본격화한 베트남전쟁에서 미군 5만8000명 이상이 죽고, 수백만명의 베트남군과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한 뒤 조지 부시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 대테러 책임자를 은밀히 불러 “이라크가 이 사건과 연관됐다는 증거를 찾아보라”고 했다. 그는 “이라크가 아니라 알카에다가 벌인 일”이라고 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한번 알아보라”고 다시 지시했다.
2003년 3월 부시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대량살상무기를 만들고 있다며 이라크를 침공했다. 2년 동안 샅샅이 뒤졌지만 대량살상무기와 관련된 단 하나의 샘플도 찾지 못했다. 이라크전쟁 5년 동안 4000여명에 이르는 미군과 수많은 이라크인이 죽고, 1조달러 이상의 경제적 손실을 보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과학적 의문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천안함이 북한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고 단정했다. 그 이후 연평도 포격사태까지 발생하는 등 남북관계는 전면전 직전까지 악화했다.
최근 이 대통령은 ‘전쟁 불사’ 의지까지 자주 내비쳤다. 국가지도자의 편견와 오판으로 인한 전쟁은 수많은 국민의 희생과 천문학적인 재산 손실을 초래한다.
이 대통령의 판단력은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믿고 맡길 만한가.
<정석구 선임논설위원 twin86@hani.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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