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의 법칙’은 없다 | |
천성이 낚시꾼인지라 세상 모든 가치를 낚시로 생각하곤 한다. 물질적인 가치는 물론이고 이념적인 가치도 낚시에 대입한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에 대한 설명이 나올 때 자주 인용되는 말이 있다. ‘정글의 법칙’이다. 신자유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자주 비유로 사용하는 말이다. 여기에 ‘약육강식’이니 ‘적자생존’이니 하는 말이 단골처럼 수식어로 따라붙는다.
생태계는 정말로 그처럼 무지막지한 모습을 하고 있을까? 내가 지금껏 느끼고, 경험하고, 숨쉬어온 자연은 그렇지 않았다. 생태계를 자유경쟁시장과 동일시하는 이들은 마치 자연을 아무것도 없는 거대한 수영장이나 황량한 운동장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약한 것은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평생 도망만 다녀야 하는 장소로.
물속을 들여다본다. 거기에는 배스, 쏘가리와 같은 포식어, 즉 ‘강자’가 존재하고, 그들의 먹이가 되는 피라미, 빙어와 같은 먹잇고기 ‘약자’가 있다. 물속이 수영장같이 아무것도 없다면 약자는 모두 강자의 먹이가 되는 것이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신은 자연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 그곳에는 작은 물고기가 숨을 수 있는 바위틈이 있고, 수초가 있고, 뻘이 있다.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사자와 소를 위한 하나의 법은 억압이다”라고 했다. 사자와 소를 한 우리에 두고 싸우라는 것은 잡아먹히라는 말과 다름없다. 이는 공정하지 않다. 둘 사이에 칸막이를 쳐주는 것이 공정한 것이다.
자연은 자본주의와 같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생태계는 그 시작인 태양부터 압도적인 베풂으로 시작한다. 태양은 47억년 동안 아무런 대가 없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먹이고, 살찌우고, 키워왔다. 그렇게 만들어진 생명체들도 태양을 닮았다. 먹이사슬의 아래에 있을수록 상대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충분한 번식으로 스스로를 베푼다. 아무리 약한 자라도 생존하고 번식할 수 있도록 존재가 담보되어 있다. 인간사회로 보면 최고의 복지시스템을 갖춘 셈이다.
강자와 약자는 있지만 ‘강자의 착취’는 없다. 작은 고기들은 멍청하게도 포식자 주위를 유유자적 돌아다닌다. 바로 옆에서 멍하니 졸고 있기도 한다. 작은 고기들이 경계심을 가지는 것은 그들이 사냥에 나설 때뿐이다. 자연의 강자는 생존의 목적 외에는 사냥을 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승자독식’이란 말도 없다. 한번의 사냥으로 모든 것을 얻을 수 없다. 사냥 때마다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만큼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정글에서 사냥에 여러번 실패한 사자는 그 기력이 다해 굶어죽는다.
자연은 공동체적인 연결고리로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고 이어져 있다. 여기에 위협을 가하는 유일한 존재는 언제나 그렇듯 인간이다. 자연은 자신을 위협하는 것과 타협하지 않는다. 인간은 위협이 올 때 생존을 위해 굴종하지만, 자연은 스스로 멸종을 택한다.
‘정글의 법칙’은 자연의 순리가 아니다.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인간의 법칙’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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