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학술모임에까지 보안법 들이대는 경찰의 시대착오

道雨 2011. 3. 24. 12:02

 

 

 

 학술모임에까지 보안법 들이대는 경찰의 시대착오
한겨레 2011. 3. 24  사설

 

낡디낡은 옛날 영화를 다시 보는 것 같다.

경찰이 대학생들을 연행하고 집 뒤짐을 한다. 이적단체를 결성해 북한을 고무·찬양했다는 떠들썩한 발표가 이어진다.

이런 일은 대부분 이런저런 정치일정을 앞두고 벌어진다. 나중에 조작이나 무리한 수사로 드러나는 것도 비슷하다.

 

십수년 전까지 자주 봤던 풍경이 지금 되풀이되고 있다.

경찰은 엊그제 대학생 연합 학술동아리 ‘자본주의연구회’ 회원들을 긴급체포하고, 여러 사람의 집을 압수수색했다. 일을 당한 사람 가운데는 민주노동당 당직자나 당원도 있다.

경찰은 이 모임이 이적단체의 하부조직으로, 국가보안법의 고무·찬양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모양새가 옛날 그대로다.

 

경찰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증거는 지금 도무지 찾기 어렵다.

자본주의연구회의 활동이 위법인지부터 의문이다. 2005년 말 만들어진 자본주의연구회의 누리집을 보면, 이 모임은 경제 쟁점에 대한 특별강연회 개최와 해마다 여는 대안경제캠프 운영을 주요 활동으로 삼고 있다.

강연 등의 주제도 미국의 금융공황, 남유럽 경제위기, 한-미 자유무역협정, 무상급식과 복지논쟁, 신자유주의 몰락 등 학술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동안 이 모임에선 500여명의 교수·지식인 등이 강연을 했고, 6000여명이 캠프를 마쳤다고 한다.

모임의 취지대로 정상적인 학술활동으로 보인다. 공부하고 연구하는 게 잘못일 수도 없다. 이런 일까지 불법으로 몰아붙인다면 헌법상의 학문의 자유가 위태롭게 된다.

 

더구나 경찰이 적용하려는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 등)는 권위주의 정부 때 숱한 조작사건을 양산하고 표현의 자유를 짓누른 대표적독소조항이다. 지난 17대 국회 때는 여야가 없애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지금 와서 연구활동에까지 이런 낡은 칼을 들이댄다면 시대착오적인 야만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경찰이 왜 이렇게 무리한 일을 벌이는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 들어 보안법 입건자 수는 2.5배 늘었지만 기소율은 절반으로 줄었다. 구속영장 기각률도 40%를 넘는다. 경찰이 실적을 쌓으려 보안법을 남용한 탓이 크다.

 

이번 사건에도 그런 의심이 벌써 나온다. 선거를 앞둔 색깔공세라거나, 정권 말의 위기를 공안정국 조성으로 돌파하려는 시도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경찰의 행태를 보면 그런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경찰, ‘대학 학술동아리’에 이적단체 혐의…야 “공안정국 조성” 성토
- 민노 당직자도 압수수색
 
» ‘자본주의연구회’ 김보아 대표(앞줄 왼쪽 셋째·고려대생)와 교수·학생·시민사회 인사들이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앞에서 자본주의연구회에 대한 경찰의 수사가 무리하다며 수사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대학생 연합 학술 동아리인 ‘자본주의 연구회’를 수사중인 경찰청 보안국은 23일 이 동아리 초대 대표인 최아무개(37)씨에 대해 이적단체를 만들어 북한을 찬양·고무한 혐의(국가보안법상 7조 찬양·고무)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의 압수수색 대상에 민주노동당 당직자도 포함된 사실도 확인됐다.

 

경찰은 최씨 등이 2006년 ‘새세대 청년공산주의자 붉은기’라는 이적단체를 결성한 뒤 북한을 찬양·고무하기 위해 2007년 3월 ‘자본주의 연구회’ 등 하부조직을 설립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고 이날 밝혔다.

경찰은 또 이 단체가 2008년 1월 대안경제캠프에서 이적성이 뚜렷한 행동강령을 채택하고 30차례에 걸쳐 이적성 게시물을 누리집에 올렸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지난 21일 최씨와 함께 체포한 동아리 전 회원 최아무개(35)씨와 하아무개(24)씨 등 2명은 석방했다. 경찰은 앞서 21일 이 동아리 전 대표 및 회원 12명의 집을 압수수색해 대안경제캠프 자료집과 컴퓨터 하드, 이동식 저장장치(USB) 등을 압수했다.

 

이에 대해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이날 아침 <문화방송> 라디오에서 “국보법 찬양·고무죄를 대중적인 학술단체에 적용한 것은 학생과 시민들로 하여금 자기검열을 하게 하는 것”이라며 “민노당 당직자가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야당에 대해서 색깔론을 들이대려는 것 아니냐”고 밝혔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백원우 의원도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 수사는 공안정국 조성을 위한 것”이라며 “정권 말기에 반북 이데올로기로 위기를 돌파하려는 못된 버릇이 도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민주당의 백원우, 유선호, 전현희 의원과 이정희 민노당 대표는 압수수색이 진행된 21일 조현오 경찰청장을 방문해 부당한 수사라고 항의했다. 손학규 대표, 박지원 원내대표, 천정배 최고위원 등 민주당 지도부도 22~23일 잇달아 “시대착오적 행태”라며 경찰을 비판했다.

조 청장은 21일 이정희 대표 등에게 “압수수색 대상에 민노당 당직자가 포함된 것은 우연이며 야당 탄압 의도는 없다”고 해명했다.

 

< 고나무 황춘화 기자 dokko@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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