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5·16 쿠데타 망령을 되살리려는 이유

道雨 2011. 5. 17. 12:22

 

 

 

         5·16 쿠데타 망령을 되살리려는 이유
한겨레 2011. 5. 17  사설

 

이승만 국부 만들기가 기승을 부리더니 이젠 박정희 영웅화가 공공연하다.

 

한 사람은
국민의 손에 쫓겨났고, 다른 사람은 쿠데타 동지의 총에 비명횡사했는데도 굳이 이들을 영웅으로 만들려는 이유가 가증스럽다.

내년 총선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수구세력과 족벌언론이 미리 재집권의 포석을 놓는 줄 누가 모를까.

 

박정희의 군사정변이 기껏해야 5·16 숫자로만 기억되던 까닭은 4·19 혁명을 압살했다는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변 50돌을 맞아 5·16과 박정희는 슬그머니 혁명의 이름으로 회자된다.

그리되면 4·19 혁명이 오히려 정변으로, 이승만은 정변의 희생양으로, 쿠데타 이후 독재에 맞섰던 민주화운동은 역도가 된다.

‘유신의 딸’이 여당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이젠 거리낄 게 없다는 건가.

 

 

그들은 박정희의 가장 큰 공적으로 경제발전과 새마을운동을 꼽는다. 이를 근거로 경제성장을 위해선 민주주의 억압과 개발독재가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패전국 독일·오스트리아·일본·이탈리아가 전후 독재체제였기 때문에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개도국 브라질이나 인도 등은 민주적 리더십 때문에 경제적 성장을 이뤘다.

성장률만 해도 박정희 집권 18년간 평균 9%였지만,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평균 10%의 성장을 기록했다. 그렇다고 중국 체제가 더 낫다고 말하는 이는 없다.

 

성장의 질도 문제다.

박정희 시대의 물가상승률은 평균 두자릿수로, 실질금리는 마이너스였고, 돈은 부동산으로 몰렸다.

그 속에서 수출산업을 지원하려다 보니, 저임 구조의 강화와 농촌 해체, 관치금융 따위는 불가피했다.

박정희 리더십이 특별했다기보다, 스스로 만들어낸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도 폭압과 학정은 피하기 힘들었다.

 

박정희 체제가 어떠했는지 알고 싶다면 굳이 책을 뒤질 필요도 없다.

지금 이 정부 아래서 우리 사정만 살펴보면 된다.

고물가와 저임금, 토건국가와 부동산 투기, 대기업과 부자 중심 정책, 그리고 반인권 경찰국가 등 모든 부문에서 그때 그 모습이 재현되고 있다.

 

그 결과인지 모르나, 이명박 대통령은 벌써 동지들 손에 ‘정치적 저격’을 당하고 있다.

그런데도 5·16 망령을 불러내는 것은, 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선 나라는 망쳐도 좋다는 짓이다.

 

더는 국가와 국민을 오도하지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