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언론은 박정희의 경제 실적을 앞세워 독재를 정당화하려 했다. 박정희가 비록 독재는 했지만 세상에, 애국 독재라니! 세계 궤변 역사에 남을 만한 아첨이다.
한때 후진국에서 독재 불가피론이 유행한 적이 있다.
2차 대전 이후 공산권 국가들이 고도성장을 했는데, 이는 독재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자본주의 진영에서도 사회과학자들 사이에 독재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예를 들어 월터 갈렌슨은 “정부가 민주적일수록 자원이 투자에서 소비로 전환될 공산이 크다”고 주장했다. 투자가 적을수록 성장이 낮아질 것이니 이는 독재 옹호론에 해당한다.
더 노골적으로 독재를 옹호한 학자도 있다.
하버드대학의 보수적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경제발전을 하려면 적어도 일시적으로 정치적 참여를 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신독재 시절 늘 듣던 이야기와 비슷하다.
민주주의와 경제성장 상충 가설을 리콴유(싱가포르 전 총리) 테제라고 하는데, 리콴유는 박정희 숭배자로서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감수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독재옹호론은 타당하지 않다는 사실이 그 뒤 밝혀졌다.
이 문제에 대한 세계적 권위자는 미국의 정치학자 아담 셰보르스키다.
그가 1950년부터 1990년까지 세계 141개국의 자료를 분석한 결론을 보면 독재와 민주주의 사이에 투자율의 차이는 없고(갈렌슨의 추측은 틀렸다), 경제성장률에도 차이가 없다(헌팅턴, 리콴유의 추측은 틀렸다). 즉, 독재라고 해서 경제성장률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이 증거에 기초해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은 “민주주의와 정치적 자유는 그 자체가 중요하므로 존중돼야 한다”고 말한다. 센은 더 나아가 경제발전의 정의를 소득의 증대가 아니라 ‘자유의 확대’로 바꿀 것을 제안하고 있다.
독재와 경제성장의 관계에 대해서는 셰보르스키의 결정적 연구로 이미 결론이 난 셈이다.
그런데도 국내 보수파 사이에서는 독재 옹호론이 여전히 강세다. 이론이나 통계 분석을 통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사례를 보여주는 게 낫겠다.
민주투사 룰라 밑에서 이룬 브라질의 눈부신 성장은 어떤가.
한때 ‘눈이 내리지 않는 나라에는 민주주의가 없다’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브라질은 열대 지역에서도 민주주의가 가능하며, 고도성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세계에 보여주었다.
인도는 또 어떤가.
민주주의의 표본인 인도가 최근 이룬 고도성장을 보더라도 민주주의와 성장은 얼마든지 양립가능함을 알 수 있다.
경제성장을 위한 독재 불가피론이나 애국 독재론 같은 궤변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어용학자, 보수 언론이 아무리 독재를 미화한들 독재의 추악성을 덮을 수는 없다.
독재는 인간 존엄성의 파괴이며, 인류에 대한 범죄다. <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
독재와 경제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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