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서울대 법인화, 날치기법 없애고 원점서 재론하라

道雨 2011. 6. 1. 12:20

 

 

 

서울대 법인화, 날치기법 없애고 원점서 재론하라
 

 

 

서울대생 수백명이 법인화 폐기를 요구하며 대학본부 문화관을 점거하고 있다. 폭력적인 서울대법인화법 날치기가 결국 본관 점거 농성이라는 학생들의 실력행사를 불러온 셈이다.

이번 농성은 학생 차원이 아니라, 교수·학생·교직원으로 구성된 서울대 법인화 반대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앞서 있었던 교수들 성명이나 노조 농성 등의 완결판인 셈이다.

 

점거에 앞서 학생들은 비상총회에서 투표자의 95%가 실력행사에 찬성했다.

법인화에 관한 한 학생들에겐 퇴로가 없는 셈이고,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가늠하기 힘든 근거다. 법을 날치기 처리한 정부여당, 추진 과정에서 독선·독주해온 학교당국의 반성과 적극적인 대책이 요구되는 까닭이다.

현재의 법인화법을 폐지하고 원점에서 법인화 문제를 다시 논의하는 것 외엔 달리 대책이 없다.

 

사실 서울대 법인화는 내용과 절차 모든 면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은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키다 보니, 법안이 담고 있던 문제들은 하나도 걸러지지 않았다.

날치기 과정에서 법인화에 수반되는 비용이 예산안에 포함되지 않아 생때같은 예산들이 뭉텅이로 잘려나가 법인화 비용에 충당되고 있다.

추진 과정에서 구성원의 의견을 모두 배제한 학교당국의 태도는 구성원들의 상처를 키웠다. 법인설립준비위원회 구성이나, 법인화의 핵심인 정관 제정, 이사·감사 선임 문제도 독단적으로 처리하려 했다.

 

법인화 자체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뒤늦게 드러난 정부의 간섭이 강화될 가능성은 학교 구성원들을 행동하도록 떠밀었다. 법인 이사회에 현직 교육과학기술부·기획재정부 차관 2명이 포함되도록 한 것이다. 자율성과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한 법인화가 실제는 정부의 통제만 강화한 꼴이 됐다.

 

대학 자율성의 상징인 평의원회의 무력화, 총·학장 직선제의 폐지 가능성은 여전히 크고, 국립대학의 공공성 상실, 기초학문 소외, 등록금 급등 가능성은 그대로다.

게다가 일본만 보더라도 법인화한 국립대학의 세계 대학서열은 계속 추락하고 있다.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다.

 

모든 게 따져 보면 폭력적 날치기의 결과다.

정부와 여당의 대오각성을 요구하는 이유다.

 

지금의 사태를 법인화 반대 차원이 아니라 사회 민주화 차원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을 깊이 새기기 바란다.


< 2011. 6. 1  한겨레 사설 >

 

 

 

 

         시급한 서울대법인화법 개폐 

 

조선시대 유생들의 ‘권당’ ‘공관’이
일어나면 조정은 ‘개유사’를 보내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대생들이 서울대 법인화를 반대하며 총장실 등 본부
건물을 점거하고 농성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근래까지 정치권은 선거 승리에 여념이 없어 서울대 법인화에 많은 관심을 표시하지 않았다.

서울대 당국도 서울대법인화법 통과 이후 법인화 반대론의 주장을 경청하고 수용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그리하여 울분에 찬 학생들은 비상총회를 열고 본부 점거라는 실정법 위반을 감행했다.

 

 

서울대법인화법은 절차와 내용 모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 법은 지난해 말 국회 해당 상임위에서의 토론과 합의도 없이 직권상정되어 한나라당에 의해 날치기 통과되었다.

서울대는 물론 향후 전국 국립대의 명운을 좌우하게 될 법을 이런 식으로 만들다니, 대학 구성원으로서 모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법이 그대로 시행되면 ‘대학의 자치’라는 헌법적 원칙이 훼손되고, 수익 중심의 대학운영이 이루어질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먼저 최고 의사결정체인 이사회 구성과 예산 확보 등 학교 운영의 대부분이 정부에 종속된다.

서울대 총장 자리가 사실상 집권 정파의 논공행상 자리가 되고, 이렇게 임명된 총장은 단과대 학장을 선거 없이 지명할 수 있기에 대학이 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상명하복 피라미드 체제로 운영될 우려가 크다.

또한 법인화된 서울대가 수익 위주로 운영되어 기초학문이 홀대받고, 등록금은 사립대 수준으로 상승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학내외에서 학생들의 행동은 불법이니 강제해산, 학사징계, 형사처벌, 손해배상 청구 등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강경론은 사태의 근본 원인을 외면하고 실정법 위반만 문제로 삼는 것이기에 올바른 대책을 마련할 수 없으며, 오히려 사태를 걷잡을 수 없게 만들 것이다.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들에게도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권당’(捲堂)과 ‘공관’(空館)이라는 집단실력행사를 벌이는 것이 허용되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한편 농성중인 학생들은 절제된 태도를 견지할 것을 부탁한다.

사소한 일탈도 학내외의 맹비난을 초래할 것이며 그 경우 농성의 문제의식은 묻혀버릴 수 있다.

 

1991년 노태우 정권 시절, 총리 취임을 앞둔 정원식 교수에 대한 학생들의 달걀 투척이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지 유념해야 한다.

정 교수가 장관 시절 전교조 탄압의 주역이었다는 점은 사라지고, 학생들에게는 ‘패륜아’라는 낙인이 찍혔으며, 학생운동권은 상당 기간 어려움에 봉착했다.

 

이번 서울대 본부 점거 농성은 서울대법인화법 개폐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서울대법인화법은 일본식 법인화법을 모델로 하여 정부의 입김을 더욱 강화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악법’이다. 여야 정치권은 늦어도 9월 정기국회에서 이 법의 개폐에 착수해야 한다.

 

 

현재 서울대를 포함한 국립대 체제에는 바뀌어야 할 점이 많다.

고등교육공공성과 국제경쟁력을 모두 강화하고, 정부의 부당한 간섭을 배제하고, 조직의 방만함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법인화하지 않은 채 현재 체제를 개선하는 방법, 독일처럼 국립대를 공법인(公法人)으로 바꾸는 방법, 미국 주립대 법인처럼 이사회 구성을 민주화하는 방법 등이 있다.

이 모두를 열어놓고 검토하여 매듭지어야 한다.

정치권의 잘못으로 인한 부담을 대학이 지는 사태는 신속히 끝나야 한다.

 

 

한편 서울대 본부는 급박하게 법인화를 추진하지 말아야 한다.

법이 통과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대응으로는 부족하다.

법인화 반대파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공식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학생들을 만나고 또 만나는 것이다.

 

조선시대 ‘권당’이나 ‘공관’이 일어나면 조정은 유생들에게 ‘개유사’(開諭使)를 보냈다.

학교와 학생 양쪽이 상대를 ‘적’으로 규정한다고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다.

농성 조기 종료를 위해서 어떠한 합의사항을 안출해야 하는지 각자 고민하고 대화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경론을 고수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대학의 자치’ 정신을 존중하는 용감한 타협이다.

<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