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이명박 정권 대북정책을 위한 장송곡

道雨 2011. 6. 3. 12:48

 

 

 

       이명박 정권 대북정책을 위한 장송곡 
 

 

 천안함 사태를 얼버무리고 무리수까지 동원해가며 정상회담을 ‘애걸’하게 만든 건 뭘까?

» 한승동 논설위원

 

지난 주말 자유로를 달려 임진각 망향의 노래비 앞에 다시 섰다. 스테인리스 상자에 달린 빨간 단추를 누르자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이 흘러나왔다.

‘뽕짝’의 그 ‘청승’만큼 곡진하게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을까.

 

1983년의 ‘이산가족 찾기’ 드라마는 쇼크였고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가 됐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리웠던” 그 세월은 그로부터 어언 30년이 더 흘렀다.

잃어버린 60년!

생이별한 ‘1000만 이산가족’ 중에 아직 살아남은 이 얼마나 될까.

 

 

지난달 중순 뉴욕주 아몽크 자택을 찾아간 권태호 특파원에게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국대사는 “한국의 분단은 미국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며 “미안합니다”라고 했다.

 

5·16 쿠데타 50주년 취재차 찾아간 기자에게 그는 왜 굳이 그 얘기를 했을까.

긴 인터뷰 기사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터뷰 후기’에 실린 그 짤막한 얘기였다.

그런 얘기를 그 정도나마 공개적으로 한 미국인이 또 있는지 모르겠다.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 총책(1973~76년)이었고, 국가안보회의 참모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안보담당 보좌관을 거쳐 주한대사(1989~93년)를 지낸 그는, 2년 전까지 한-미 교류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이었다.

한국전 참전용사에 중앙정보국 밥만 30년을 먹은, 한국 사정에 누구보다 밝은 그가 남긴 또 하나 인상적인 얘기는, 역시 인터뷰 후기에 담긴 “나는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고 본다”는 한마디였다.

그는 실은 천안함 사건 직후부터 그 얘기를 했다.

놀랍게도 그는 북한 소행이라는 한국 정부 공식 발표와 5·24 조처가 나온 뒤에도 여전히 그 소신을 버리지 않았고 언론에 밝히기까지 했다.

 

괴이쩍은 남북 비밀접촉에서도 핵심 쟁점은 결국 천안함 사태였다.

“(남쪽은) 북쪽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고 남쪽에서 볼 때는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이라도 만들어 내놓자면서 제발 좀 양보해 달라고 애걸했다”고 북은 폭로했다.

일부 주장대로 범행 사실을 은폐하고 남남갈등을 유발하려는 북의 계산된 ‘깽판놓기’일까. 아니면 그레그의 말대로 범인은 북이 아닌 걸까.

 

우리는 아직도 그 실체를 모른다.

이 미스터리의 실체에 오늘날 남북관계의 본질이 응축돼 있다. 절충해서 적당히 얼버무리고 간다면 두고두고 당사자들의 발목을 잡는 치명적인 덫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를 얼버무리고 무리수까지 동원해가며 정상회담을 ‘애걸’하게 만든 건 뭘까.

역시 내년 총선, 대선을 겨냥한 걸까.

정부의 대북정책이 고작 정권안보 차원의 저급한 정치공작 수준은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다.

 

 

지난 대선 뒤 사람들은 ‘기업 프렌들리’를 내세운 현 집권세력이 평양을 향해 이전 정권과는 차원이 다른 자본의 대공세를 펼칠 것으로 생각했다.

중국과 베트남과 동유럽을 바꾼 것도 무력이 아니라 자본이었다.

후나바시 요이치 전 <아사히신문> 주필이 최근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재건의 방도는 중국에 다가가는 것뿐이라고 <파이낸셜 타임스>에 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실용인 것이다. 그런데 실용을 노래했던 현 정권이 정작 택한 것은 이데올로기였다.

 

중국과 베트남에 투입한 자본의 몇 분의 일만이라도 평양과 개성에 쏟아부었다면 남북은 지금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다.

그랬다면 각자 찢어져 중국으로, 미국으로 달려가는 몰골을 면하고, 함께 동아시아 정세 재편의 유력한 플레이어가 돼 있지 않을까.

 

비밀접촉 소동은 그 모든 가능성을 날려버린 이명박 정권 대북정책 실패를 최종적으로 고하는 장송곡처럼 들린다.

 

< 한승동 논설위원 sdhan@hani.co.kr >

 

 

 

 

남북 비밀접촉, 적당히 둘러대고 넘어갈 일 아니다
 

 

북한이 공개한 남북 비밀접촉 내용은 충격 그 자체다.

 

국민이 받은 충격의 강도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지해온 사람이나 반대해온 쪽 모두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부의 이중성과 무원칙, 어설픈 일처리와 조급증 등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도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의 대응은 불성실하기 짝이 없다. 난처한 일이 벌어질 때마다 되풀이되는 뭉개고 넘어가기 전략이 또다시 발동된 것이다.

 

우리 정부까지 나서서 남북 비밀접촉 내용을 상세히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는 반론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마냥 입을 다문다고 해결될 단계를 이미 넘어섰다. 무엇보다 국민이 겪고 있는 당혹감과 혼란스러움이 너무 크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어제 국회 답변에서 “천안함·연평도 포격도발에 대해 북한으로부터 분명한 시인·사과·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사과를 받기 위해 비밀회동을 했다는 것부터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오히려 국민이 듣고 싶어하는 것은 “북측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고 남측에서 볼 때는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다.

정부의 모순되고 허둥대는 태도는 오히려 북한 주장의 신빙성만 높여줄 뿐이다.

 

현시점에서 국민이 가장 알고 싶은 것은 정부의 진정한 대북정책 기조가 무엇인가다.

정상회담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따위의 정부의 공언이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을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려 한 의혹에 대해서도 설명이 있어야 한다. 우리 쪽에서 6월 하순 판문점, 8월 평양, 내년 3월 서울에서 잇달아 정상회담을 열자고 제안한 게 사실이라면, 내년 4월 총선 등을 염두에 둔 정치적 포석이라고밖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정부가 나라를 이끌어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신뢰를 얻는 일이다.

그런데 정부는 국민의 뒤통수를 쳐버림으로써 스스로를 심각한 불신의 늪에 가둬버렸다.

그래 놓고도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신뢰를 회복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마저 외면하고 있다.

아무리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에 이골이 난 정부라고 해도 너무 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