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검찰의 ‘위험한’ 승리

道雨 2011. 6. 15. 15:24

 

 

 

            검찰의 ‘위험한’ 승리 

 

여론조사는 중수부 폐지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온다.
검찰에 역풍이 불 수도 있다는 얘기다

 

 


» 김이택 논설위원
결국 검찰개혁은 물건너가는가 보다.

 

국회 사법개혁특위는 이달로 끝내고 남은 쟁점은 법사위에서 계속 논의한다지만 합의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를 결사적으로 반대해온 검찰이 최대의 승자가 아닐 수 없다.

 

돌이켜보면 검찰의 영악한 두뇌플레이에 국회가 당한 꼴이 됐다. 검찰의 빛나는 한 수는 바로 중수부의 부산저축은행 수사 투입이다.

사개특위 6인소위가 비밀리에 중수부 폐지와 특별수사청 신설을 뼈대로 하는 합의안을 만들 무렵인 3월 초, 검찰은 중수부에 돌연 부산저축은행 상황관리팀을 꾸렸다고 한다.

 

3월10일 6인소위가 중수부 폐지 등 20개 합의사항을 발표하자, 중수부는 닷새 뒤 부산저축은행 5개 계열사를 압수수색하며 본격적으로 수사에 뛰어들었다.

 

이후 석달간 사개특위와 검찰 사이에 공방이 계속됐지만, 결국 “부산저축은행 수사는 어쩌려고 중수부를 폐지하느냐” “해병대가 상륙작전 하는데 부대를 해체하면 어떡하느냐”는 억지 논리 앞에 폐지론은 힘을 못 썼다.

저축은행 수사가 끝난 뒤에 없애면 되고, 특수청 등 다른 대안을 만들면 된다는 반론은 묻혔다.

저축은행 피해자 아주머니들이 대검까지 찾아와 “중수부 폐지 반대”를 외치는 장면은 검찰이 이 싸움에서 이기고 있다는 증표였다.

 

‘정치인 수사’ 카드도 검찰에 훌륭한 무기가 돼주었다. 어느 시점부턴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정치인들의 이니셜과 실명은 “정치인 수사 한다니까 의원들이 중수부 없애려는 거 아니냐”는 방어 논리의 좋은 근거자료로 활용됐다.

 

 

우리 정치사에서 거대권력화한 검찰에 대한 견제 시도는 2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13대 국회에서 평민당이 특별검사제 법안을 낸 것을 시작으로, 역대 국회마다 검찰의 정치 중립과 권한 분산을 겨냥한 법안이 나오지 않은 적이 없다.

17대 총선에선 여야 모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를 공약으로 내놨지만, 정작 국회가 열리자 어디에 두고, 어떤 권한을 주느냐는 문제로 입씨름하다 무산됐다.

 

재밌는 것은 노무현 정부를 제외하고는 모든 정부가 야당 시절 검찰 중립을 주장하다, 정권을 잡은 뒤에는 공통적으로 말을 바꿨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그만큼 검찰이 정권의 비위를 잘 맞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 놓고는 임기 말이나, 정권이 바뀌기 무섭게 모두 검찰에 당하는 일이 되풀이됐다.

 

우리 검찰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과 수사종결권, 기소 여부를 맘대로 결정하는 기소편의주의와 기소독점권에다 자체 수사력까지 가진 나라는 세계에 아무 데도 없다. 문명국 가운데 검사만이 영장을 청구할 수 있도록 헌법에 박아놓은 나라도 우리뿐이다.

 

민주화 이후 법치가 강조되면서 검찰은 가장 막강한 권력기관이 됐다. 그런데도 과거 독재정권 시절 정권에 부역해온 얼룩진 과거를 한번도 반성하거나 청산하지 않았다. 국정원과 경찰은 물론 법원까지 ‘과거’를 사과했으나 검찰은 그러지 않았다.

“항해가 잘못되면 선장이 책임지면 된다”는 말을 자랑스레 내세웠다. 결국 권력만 쳐다보는 나쁜 버릇을 스스로 고칠 기회를 잃은 것이다.

 

중수부가 뛰어든 부산저축은행 수사는 양날의 칼이다.

‘거악 척결’을 외쳐놓고 정권 핵심부를 둘러싼 의혹을 제대로 파헤치지 못하면 중수부의 존재 의미를 인정받기 어렵다.

그렇다고 중수부 존립에 손을 들어준 청와대까지 겨냥해 과연 성역 없이 파헤칠 수 있을까.


여러 여론조사 결과는 여전히 국민들이 3 대 1 내지 4 대 1 정도로 중수부 폐지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온다. 검찰이 이겼다고 만세 부르다간 자칫 역풍이 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만큼 위험한 승리다.

 

< 김이택, 한겨레 논설위원, rikim@hani.co.kr >

 

 

 

 

 

 

  검찰개혁, 시민들이 직접 나서야만 하는가

 

[한겨레, 2011. 6. 15 사설]

 

 

국회 사법개혁특위가 결국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 등 핵심 쟁점을 관철하지 못한 채 1년4개월여의 활동을 접게 됐다. 특별수사청 설치와 대법원 구조 개편 등 4개 미합의 쟁점은 법사위로 넘겨 계속 논의한다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사법개혁 논의에 가장 결정적 타격을 가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청와대다.

지난 3일 사개특위 검찰소위가 우여곡절 끝에 중수부를 폐지하기로 합의했으나, 뒤늦게 청와대가 끼어들어 사실상 반대의사를 밝히면서 일이 어그러진 것이다.

검찰을 개혁하기보다 통제권에 묶어두어 임기 말 권력누수를 막겠다는 저의를 그대로 드러낸 셈이다.

모처럼 여야 합의로 진행되던 논의에 찬물을 끼얹음으로써 개혁의 좋은 기회를 무산시키고, 우리 정치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는 것을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은 알아야 한다.

 

사개특위 의원들의 책임도 크다.

특히 검찰 출신 일부 여당 의원들은 청와대 발언 이후 “나는 중수부 기능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온 사람”이라는 등 과거 속기록 발언까지 부인함으로써 무소신과 몰염치의 극치를 보여줬다.

야당 의원들도 여당 일부의 반발을 효과적으로 제압하지 못하고 대국민 설득에 실패함으로써 무기력한 모습을 드러냈다.

여야 새 원내대표 역시 취임 후 첫 과제인 사법개혁 논의 과정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사실상 사개특위를 좌초시킴으로써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특히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는 청와대의 견해 표명 이후에도 이를 타개할 아무런 정치력도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앞으로 국회 운영에서도 상당한 부담을 지게 됐다.

 

법원과 검찰 모두 기득권을 지키려 적극적인 로비를 펼쳤지만, 그중에서도 검찰의 행태는 도를 넘었다.

사개특위의 중수부 폐지 합의 뒤 중수부 검사들이 수사를 중단한 것이나, 검찰총장이 잇따라 간부회의를 열어 저항한 것은 국회의 입법권을 무시하는 처사다.

나아가 검찰 스스로 권력화했음을 만천하에 시위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기도 하다.

중수부가 돌연 부산저축은행 수사에 뛰어들고, 사개특위 위원들을 겨냥한 듯한 언론보도가 잇따른 것에 대해서도 검찰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검찰과 국회 등 정치권은 그랜저검사나 스폰서검사 등 사건이 일어나면 모두 나서 엄청나게 바꿀 듯이 개혁을 외치다가, 국민들 기억에서 흐릿해져 갈 무렵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뒤엎는 행태를 반복해왔다. 이제는 그런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뒤늦게나마 야당은 물론 여당 소장파들도 사법개혁을 다시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한다.

여야 원내대표가 정치력을 발휘해 사법개혁을 최종적으로 결단할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이도 저도 안 되면 시민들이 나서서 사법개혁 반대 의원 낙선운동이라도 벌이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