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희망버스', 땀에 젖은 지폐 넣지 마세요. 그래야 사람이다

道雨 2011. 6. 14. 10:46

 

 

 

          땀에 젖은 지폐 넣지 마세요 

 

노동자들은 주머니 속의 지폐가 젖도록 땀 흘렸는데…

 

» 진중권 문화평론가

“땀이나 물에 젖은 지폐를 넣지 마세요. 지폐기에 걸립니다.”

 

어느 트위터리언이 찍어서 올린 한진중공업의 자판기에는 이런 글귀가 붙어 있었다.

지폐가 땀에 젖을 정도라면, 그곳의 노동자들이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이 성실한 노동의 대가로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엉뚱하게도 정리해고의 칼이었다.

이에 항의하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고공 크레인 농성은 그사이에 150일을 훌쩍 넘어섰다.

 

‘연대’의 정신은 민주사회의 초석이라 하나, 우리 사회에서 이 말은 그저 운동권의 빛바랜 구호로만 여겨진다.

물론 연대는 미덕이지 의무가 아니기에, 누구도 그것을 남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또 연대를 못하는 이들에게도 나름대로 이유와 사정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대를 할 수 없다면, 최소한 ‘중립’이라도 지켜야 한다. 아니면 차라리 사안에 대해 완전히 무관심한 것이 낫다.

 

그런데 이것조차 안 하는 고약한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경제신문’이라는 제호를 달고 살포되는 전단들에서 기사와 논설을 쓰는 사람들이다.

그중에서 제호부터 돈 밝히고 들어가는 어느 경제신문의 기사가 나에게 특히 스트레스를 줬다.

 

“2년 반 넘도록 수주 ‘제로’ 한진중공업에 무슨 일이?”

 

이런 물음으로 시작하는 기사는 “한진중공업, 실적악화에 파업몸살. 3개월 후면 일감도 ‘제로’”라며, 노동자들을 회사에 몸살이나 일으키는 바이러스 취급을 하고 있었다.

» @yoon850218

기사를 아무리 뜯어봐도 노동자들의 주장은 한 줄도 실려 있지 않았다.

 

이해의 충돌이 일어나면 당연히 양쪽의 입장을 모두 들어봐야 판단을 할 수 있는 일. 어떻게 취재 한 번 안 하고 기사를 쓰면서 입으로 밥이 넘어가는지 기가 막혔다.

 

그가 노동자에 관해 언급한 것은 딱 하나, 파업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노동자들을 괴롭힌다는 내용뿐이었다. 이로써 그저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을 치는 이들은 졸지에 조폭이 된다.

 

 

공교롭게도 그 신문을 뜯어보다가 재미있는 기사를 발견했다.

어느 증권사가 “상대적으로 도크 사정이 여유로운 한진중공업의 영업 마진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며, 조선업종 최선호주(톱픽)로 꼽고 목표주가를 상향 조정했다”는 내용이다.

“수주를 쉰 한진중공업이 수주를 재개한 지금은 그야말로 판매자 시장(Seller’s Market)”이어서, “더 높은 마진의 물량으로 2012~2013년의 도크를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 이유인즉, “조선산업에서 도크 사정은 선박 가격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도크가 비어 바로 작업에 들어갈 수 있다면 선박 인도까지 걸리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란다.

한 달 전만 해도 실적 악화에 수주 제로에 파업 몸살을 겪는다고 했던 그 회사의 주식이, 파업도 안 끝나고 실적 개선도 없었는데, 한 달 만에 최선호주로 등극하는 이 심오하고 오묘한 이치를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길이 없다.

 

아무튼 이 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한진중공업은 2008년 9월부터 지금까지 2년 반 동안 수주실적이 ‘0’이라고 한다.

이 속에는 아주 귀중한 진리가 담겨 있다.

노동자들은 주머니 속의 지폐가 젖어 자판기가 고장나도록 땀 흘려 일했는데, 경영진은 결국 무려 2년 반 동안 고액의 연봉을 챙겨가며 탱자탱자 놀고 있었다는 얘기.

그렇다면 마땅히 해고를 해야 할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경영진이 아닌가?


노동자들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한 바로 그 다음날, 경영진은 성과급으로 170억원의 주식배당 파티를 했다고 한다.

건전한 시장경제를 좀먹는 ‘모럴 해저드’의 전형이다.

 

2년 반 동안 수주실적이 ‘0’.

장기파업으로 회사를 위기로 몰아넣은 경영진에게 그 유명한 말을 돌려주자.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일하지 않고 먹은 돈은 거위 깃털을 써서라도 토해내야 한다.

 


< 진중권 : 문화평론가 >

 

 

 

 

 

 

 한진중은 ‘희망버스’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겨레
, 2011. 6. 14  사설]

 

 

엊그제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 전국에서 ‘희망버스’를 타고 시민들이 몰려들어, 고공농성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파업중인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에 대한 지원에 나선 것은 의미가 크다.

 

노동조합 등
노동단체가 아니라 일반인들이 중심이 돼, 스스로 참가비까지 내고 먼 길을 달려 연대투쟁에 나선 것은, 우리 사회에 연대의 싹을 틔우는 소중한 경험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트위터 등을 통해 삼삼오오 연락해 서울·수원·평택·전주·순천 등 전국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모였다는 게 더 뜻깊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는 이미 노동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중요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한 사업장에서 노조활동으로 노동자 3명이 목숨을 잃었을 뿐 아니라, 김진숙 지도위원이 13일로 159일째 크레인 고공농성을 벌이면서 노동계는 물론 일반 시민들에게도 한진중공업 사태가 널리 알려졌다.

 

한진중공업은 지난 10년간 4277억원의 이익을 올리고, 국외공장인 필리핀 수비크조선소에서는 지금도 선박을 건조하고 있음에도, 회사 쪽은 수주량 감소를 이유로 지난 2월 노동자 170명에 대한 해고를 통보했다. 이는 분명히 노사간 약속을 어긴 것이다.

 

한진중공업은 이미 2007년 3월, ‘국외공장이 운영되는 한 조합원의 정리해고 등 단체협약상 정년을 보장하지 못할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그리고 지난해 2월엔 ‘구조조정을 중단한다’고, 노사가 잇따라 고용안정협약을 맺었다.

 

최근 대법원이 경북 포항 철강업체 진방스틸 노사간 고용안정협약에 대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용안정협약은 유효하다”는 판례를 남긴 것은, 당연히 한진중공업 사태에도 적용되므로, 회사의 정리해고는 법적 타당성을 갖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회사 쪽은 해고를 철회하기는커녕, 노조가 지난해 12월 시작한 파업을 지속하고 있는 것을 문제삼아 50억원이 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상태다.

특히 170명에 대한 해고를 통보해놓고도, 주주들은 174억원의 배당금을 챙겼으니 일반 시민들로서도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경찰이 사업장 진입을 이유로 배우 김여진씨 등에 대한 사법처리 운운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회사와 경찰은 ‘희망버스’에 담긴 시민들의 뜻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다

 

 

» 이명수
결국 만났다.

지난 주말 영도조선소에서의 일이다.

 

한진중공업 파업노동자들과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중인 김진숙 지도위원, 그들을 응원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희망버스를 타고 달려온 1000여명의 사람들이 만났다.

회사 쪽의 원천봉쇄로 팔순이 넘은 사회 원로와 20대의 젊은 여성들이 사다리를 타고 담을 넘는 광경은 눈물겹다.

그렇게 해봐야 그들은 김진숙과 손을 잡아보지도, 부둥켜안을 수도, 마주앉아 얘기 나눌 수도 없었다.

크레인 위에 있는 그녀와 서로 손 흔들고 손나발로 이름 한번 외치며 안부를 확인하자고 그 먼 길을 달려오고 그 높은 담을 넘은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은 침묵했고 일부 언론은 ‘외부 노동세력이 순식간에 담장을 넘어 용역을 폭행하고, 국가보안 목표시설인 영도조선소에 무단 침입하는데도 경찰이 수수방관했다’고 보도했다.

사실관계를 다루는 기사에 이 정도의 분노와 훈계질이 담기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면 그건 욕정에 눈먼 원조교제남의 사랑타령처럼 이미 사실이 아니다.

 

사쪽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용역 수백명을 동원해, 조선소 안에 있던 아버지뻘 노동자들을 방패로 내리찍고, 내던지고, 소화기를 뿌리며 토끼몰이 하듯 내몰았고, 경찰은 뒤에서 팔짱 끼고 담소하며 수수방관했다.

 

크레인 위에서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며 “제발 우리 조합원을 때리지 말라”고 절규하던 김진숙이 그 순간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는 고백은 철렁하지만, 당연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함과, 해도 변할 게 아무것도 없다는 아득함은 사람을 무릎 꺾이게 한다.

그런 무기력함과 아득함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홀로’라는 생각이 들면 천하장사라도 견디지 못한다. 꼬꾸라진다.

한진 파업노동자 가족의 눈물 고백은 가슴이 저리다.

“지난 6개월 동안 우리끼리 투쟁하다 우리끼리 말라죽는 거 아닌가 무서웠습니다. 매일 사원아파트에 모여서 울었습니다.”

 

희망버스는 그렇게 울고 있는 이들에게 당신들은 홀로가 아니라고 손 내미는 행사였다.

 

하지만 자본권력은 검투사들에게 죽음의 결투를 시켜 자기 가문의 부와 명예를 축적하는 검투사 양성소 주인들처럼 뒤로 쏙 빠져 과실만 챙긴다. 검투사들끼리 죽자사자 싸우는 형국이다.

그들이 설정한 그 기막힌 게임의 규칙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사상이 의심스럽거나 불순한 외부 세력으로 몰아붙인다.

 

부산 여행 중이던 21살 딸아이는 주말 내내 영도조선소에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진숙 이모를 보기 위해 그곳에 도착해, 밤새 트위터로 현장을 생중계했다.

어젯밤 클럽에서 봤던 또래의 청년이 용역으로 현장에 있다며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고, 여기 온 사람들도 자기네들처럼 일당 받고 온 거 아니냐고 되묻는 소년 용역의 행동에 혀를 차기도 했다.

딸아이가 그 밤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사람’과 ‘함께’였다.

 

조합원을 때리지 말라는 김진숙의 참담한 절규를 접한 이들은 ‘한진중공업’을 검색어 1위에 올렸다.

‘낑낑대며 클릭해서 검색어 1위나 만드는 일이 한심해 보일 수 있지만, 주목받지 못한 현실을 바꿔 보려고 클릭했고 그래서 잠시나마 바꿨다’고 말한다.

그런 순간 ‘함께하면 더 바꿀 수 있고, 다 바꿀 수 있다는 말’은 가슴에 꽂힌다.

 

한진 노동자 가족들은 그곳에 왔다 돌아가는 이들에게 양말 한 켤레씩을 선물하며 이렇게 당부했다.

 

“여기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세요.”

 

입이 있고 손이 있고 머리가 있어, 말할 수 있고 행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다면,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일에 함께하는 건 당연하다.

 

그래야 사람이다.

 


< 이명수 :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

 

 

 

 

 

     바다를 찾아온 육지의 사람
[특집] 고공농성 140일째, 한진중공업 김진숙 위원의 글…필사적인 깃발을 알아봐준 김여진 등 보고 싶은 천사들이여
 
   

 

 

그녀의 신상에 대해서 쓰라면 나는 다만 한 줄도 쓸 게 없다.
천사의 신원을 알 수 없는 것처럼.
땅에서 발을 뗀 지 140일째(5월25일 현재)
난 등대의 외로움을 이해한다.
육지에서 두 발 딛고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싶을 등대의 욕망도 이해한다.
고공 크레인 위에서 트위터가 없었다면 난 언어를 잃었을 것이다.

 

인간이 습득한 문명이란 게 얼마나 허약한지를 징역 독방에서 난 이미 체득한 경험이 있다.

이 폐절된 공간에서 퇴화를 지연시키는 유일한 도구가 트위터였다.
손바닥보다 작은 스마트폰을 붙잡고 나는 세상을 향해 맹렬히 구조 신호를 보냈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웃으며 등장한 몹시 무모한 배우

 

난파선의 필사적인 깃발을 용케 알아본 사람, 김여진.
“어, 내가 보고 싶은 분, 거기 괜찮은가요?”
내가 기억하는 첫 접선, 그렇게 우리는 조우했다.
그녀는 육지에서, 나는 바다에서.

그녀가 배우였음을 알고, 연속극도 안 보고 살던 삶이 꼭 옳은 게 아닐 수도 있음을 처음으로 회의했다.
단 한 번도 마주 앉아 얘기 나눠본 적 없는 사람에게서의 아프고 질긴 공감.
희망에 대한 유대감.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파업농성장엘 왔다. 배우에겐 몹시 무모한 일이다.

그 무렵 공장은 음산했다.
파업은 석 달을 넘어가는데 교섭은 봉쇄되고, 회사 쪽의 고소·고발, 징계, 손배·가압류로 질식해가던 조합원들이 숨 쉬고 살겠다고 썰물처럼 빠져나간 공장엔 남은 자들의 탄식으로 크레인에 녹이 슬고 있었다.
남겨진 자에게도 떠나는 자에게도 고통스럽고 안타까운 시간들.
가스불 끄는 걸 잊은 냄비 속의 고등어조림처럼 온몸의 핏줄이 자작자작 타들어가던 초조함.
이런 공장에 웃으면서 들어설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더군다나 이 85크레인은 죽음이 전제된 공간이다.

그러나 과연 날라리들이었다.
노란 개나리들처럼 몰려와서는 수학여행 온 아이들처럼 웃고 떠들고 사인해주고, 사진 찍고, 공장 안에서 거친 사내들이 성긴 손으로 차려내는 저녁을 먹고, 그리고 갔다.
그뿐이었다. 집회도 없었고 발언을 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날 모처럼 조합원들에게서 물 오른 버들강아지 같은 생기가 돌았다.

 

우리도 웃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어울려 웃고 나니 가장 큰 고비를 넘어서 있었다.
그녀가 홍익대 청소노동자의 투쟁에 함께했던 일보다, 더 내 마음을 울린 건 그녀와 함께 인도에 봉사활동을 갔던 젊은이가 트위터에 올린 글과 사진이었다.
불가촉천민.

그 남루하고 허물어지고 가난의 주름이 파도치는 노파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눈을 감고 울먹이던 사람. 아!
내가 인도 여행에서 하루에 1천 명도 넘게 봤던 사람들.
1루피를 구걸하며 날파리처럼 엉겨붙던 그들에게 동전을 에프킬라 뿌리듯 던져주며 파리를 떨쳐냈던 위선의 기억이 나는 오래도록 괴로웠다.

그녀가 저토록 빛나는 건 사심 없는 진정성의 힘이다.
자신의 영혼을 너른 들판에 풀어놓곤, 질주를 하든 자갈밭을 디디든 붙잡지도 돌려세우지도 않는 사람.
그 봄바람 같은 자유의지에 많은 이가 공명하는 건, 다들 그렇게 살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들판으로 나가기 위해선 얼마큼의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알기 때문이 아닐까.

 

 

떠올릴 때마다 목이 메이는 천사들

 

2003년 이 크레인 위에서 목맨 김주익의 129일을 넘어, 이 시간까지 나를 지탱해온 건 천사들이었다.
트위터에서 나를 응원하던 수많은 사람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을 온 마음 다해 끌어안고 함께 아파하는 박혜경, 정혜신.
그리고 끼니마다 밥을 만들어 올려주는 사수대의 저 간절한 눈빛.
하나하나 떠올릴 때마다 목이 메이는 천금 같은 우리 조합원들.

139일 동안 나는 쇠파이프를 손에 거머쥐고 잤다.
공권력이 투입될 때 유리창을 깨기 위한 용도다.
쇠파이프를 거머쥐고 꾸는 꿈이 꽃꿈일 리는 없다.
꽃을 든 그녀의 손과 쇠파이프를 든 내 손이 언제 만날지도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제주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에 앉아 그녀의 우쿨렐레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꿈을 포기하진 않을 생각이다.
나의 천사들이… 참 많이 보고 싶다.

2011년 5월25일
크레인 농성 140일이 밝아오는 새벽
한진중공업 김진숙 올림

추신: 유성기업 공권력 투입과 김은숙씨의 사망, 그리고 마음이 흐트러지는 일이 있어 하루 늦었습니다. 4일을 매달려 쓴 글입니다. 고맙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1등 소감

“넌 내게 감동이었어”


민주노총 부산지부 김진숙(52) 지도위원은 천사를 만난 적이 있다. 부산 한진중공업의 대량 정리해고에 맞서 35m 높이의 85번 타워크레인에서 농성 중인 그에게 어느 날 낯선 이가 문을 두드렸다. 지난 4월10일, 영화배우 김여진이 ‘날라리 외부 세력’이라는 천사 떼를 이끌고 한진중공업을 찾았다. 만남의 시간은 짧았지만 여운은 길었다. 김 위원은 공중에 매달린 채 나흘 동안 그날의 기억을 쓰고 고치고 매만졌다. 독자에게 가장 큰 호응을 얻었다. 기쁜 소식을 김 위원에게 전했다. 김 위원과의 전화 통화, 인사나 소개보다 먼저 불쑥 튀어나온 말은 “잘 지내나요?”였다.

잘 지내시는지.
(쾌활한 목소리로) 잘 지낸다.

‘당신은 천사를 만난 적이 있나요’ 공모전에서 1등으로 뽑혔다.
기쁘다! 살아오면서 1등을 해본 적이 별로 없는데. (웃음)

현장에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는데, 특별히 김여진씨를 천사로 꼽은 이유는 무엇인가.
다른 분들은 대부분 동지적인 입장이고, 노동자들에게 연대란 일상적 실천이다. 그런데 김여진씨 같은 경우는 아주 많은 걸 감수해야 하는 처지라고 생각했다. 우리 사회에서 연기자가 농성 중인 노동자를 찾는다는 자체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드문 경우다. 어찌 보면 트위터에서 만난 사람일 뿐인데, 감동이었다.

크레인에 오른 지 오늘로 며칠째인가.
(6월1일 현재) 147일째다. 1월6일에 올라왔으니, 올해 내내 크레인 위에서 보내고 있는 셈이다.

이제 더위가 찾아온다. 견딜 만한가.
처음에는 바람, 추위… 이런 게 힘들었다. 바람 불면 크레인이 흔들리는데, 멀미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다 적응했다. 더 견디기 힘든 건 심적인 부분이다. 고립감이 크다. 세상과 단절된 느낌…. 그리고 일상적인 욕망들… 내려가서 무얼 하고 싶다, 누굴 만나고 싶다, 신문에서 여행지를 보면 그곳에 가보고 싶다, 이런 생각들이 심할 때는 하루 종일 찾아와 마음을 흔든다.

‘천사’들에게서 어떤 힘을 얻었나.
정리해고 발표 다음날 174억원의 주식배당금을 챙겨간 경영진이 있었다. ‘경영상의 이유’로 170명이 해고 당하는 현실을 보고도 왜 사회적 분노가 없는지 모르겠다. 화날 일이 많아 분노가 일상화돼서 그런 걸까. 사람들이 많이 무감해진 것 같다. 무심한 사람들에 대한 절망이 더 크다. 그러던 중에 우리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지 않던 이들이 찾아와 기뻤고, 위로가 됐다. 방문한 날, 현장이 힘든 상황이었는데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 세력들이 다녀간 뒤로 많이 안정됐다.

요즘 분위기는 어떤가.
지난 주말 공권력 투입 얘기가 있었다. 부산시경찰청 간부들이 50명 정도 와서 지형지물을 다 파악해 가고, ‘몇 개 중대를 투입한다’는 말이 돌았다. 김여진씨가 부산시경 홈페이지에 공권력 투입에 반대하는 글을 올리고 트위터리언들의 엄청난 호응이 있었다. 회사 쪽에서는 조합원 하나하나에 대해 출입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다. 통과되면 조합원이 하루에 100만원씩 벌금을 물게 된다. 월급을 7개월째 못 받는 사람들인데….

오랜만의 기쁜 소식인데, 어울려 축하하지 못해 아쉽다.
어쩌겠나. 그래도 멀리서 응원해주는 사람들에게 트위터로 소식을 전하고, 아래에 있는 동료들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눠야지.

 

<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

<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