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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국공립대를 집중 지원하고, 퇴출된 사립대를 정부가 인수하여
미국식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로 전환시킨 후 양자를 연계해야 한다
반값 등록금을 위한 촛불이 전국에서 타오르고 있다.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한국 사립대와 국립대 등록금 모두 미국에 이어 둘째로 높다. 대학생이 방학 때는 물론 학기 중에 몇 개씩 ‘알바’를 뛰어도 등록금을 버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미래를 담보로 잡아 학자금을 대출하고, 집안에 대학생 형제자매가 있으면 번갈아 휴학을 해야 한다. 낭만이라는 말이 대학가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부모인 40~50대는 자녀 학비 부담으로 노후대책을 저만치 밀어놓았다. 대학생 자녀 2명을 둔 평균소득 가정은 수입의 절반 이상을 등록금으로 지출해야 한다. 신고재산만 58억원에 달하는 오세훈 서울시장도 두 딸의 대학등록금 내느라 허리가 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소득 상위 0.1%인 그가 이렇다면, 서민과 중산층의 허리는 어떻게 되겠는가.
사실 대학 가지 않아도 무시당하지 않고 존중받는 사회가 대학 진학률이 80%인 한국보다 더 좋은 사회이다. 그러나 고졸 대통령을 폄훼하고 블루칼라 노동자를 무시하는 구조와 문화를 바꾸기 전까지 높은 대학 진학률은 유지될 것이다. 따라서 ‘미친 등록금’은 누구나 떠안게 될 민생의 시한폭탄이며, 이념과 정파를 떠나 시급히 해결해야 할 긴급과제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의 주류와 보수언론은 반값 등록금 요구를 ‘혹세무민의 포퓰리즘’이라 비난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2006년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반값 등록금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2007년 이명박 대통령 후보는 자신이 위원장직을 맡은 경제살리기특별위원회 산하에 등록금절반인하위원회를 설치했다. 이런 일이 표를 의식한 거짓말이었다면 백배 사과해야 하고, 진심이었다면 지금이라도 추진해야 한다.
돈이 없다고?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의원 시절인 2006년, 4조원만 확보되면 등록금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요지의 주제 발표를 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재정 우선순위의 조정과 실천 의지이다.
첫째, 철저한 감사와 법 집행으로 사립대 재단이 법정전입금을 반드시 납부하도록 해야 한다. 현재 사립대 재단은 법정전입금 비율을 전혀 지키지 않고 있지만, 아무 제재도 받지 않고 있다. 현재 2년제 이상 사립대 재단의 적립금은 10조원을 넘어섰다. 적립금은 산더미처럼 쌓아놓고서 전입금은 쥐꼬리만큼 내고 학교운영은 학부모와 학생의 지갑을 털어서 하는 현실은 기괴한 부조리극이다.
둘째, 과거 한나라당이 선거 승리를 위하여 ‘총대’를 메고 개악했던 사립학교법을 개선해야 한다. 현재의 사학 지배구조하에서는 교비가 설립자 또는 그 친인척의 쌈짓돈처럼 유용될 소지가 매우 크다. 이번 기회에 사학의 지배구조를 공공화·투명화해야 하고, 불법을 범한 재단과 부실화된 불량대학은 과감하게 퇴출시켜야 한다.
셋째, 5년 동안 90조원에 해당하는 부자감세 정책을 폐기하고, 30조원의 4대강 사업 같은 불요불급한 예산을 정리하여 고등교육 지원예산을 오이시디 평균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현재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고등교육 지원예산 비율은 0.6%로 오이시디 국가 중 최저인데, 이를 평균인 1%로 올려야 한다. 이 예산으로 지방 국공립대를 집중 지원함과 동시에 퇴출된 사립대를 인수하여 미국식 2년제 공립 ‘커뮤니티 칼리지’로 전환시킨 후 양자를 연계해야 한다.
반값 등록금 운동의 열기가 고조되자 집권세력은 딴청을 부리고 있다. 예컨대 ‘기여입학제’가 등록금 인하의 보완책인 것처럼 들고나와 부유층 자녀의 사립 명문대 입학을 ‘끼워팔기’로 도입하려 한다. 카이스트의 ‘징벌적 수업료’로 발생한 비극은 외면한 채, B학점 이상이라는 조건을 걸어 학생들을 경쟁시키고 분열시키려 한다. ‘미친 등록금’은 교수의 고액 연봉 때문이라고 호도하며 ‘물타기’를 하고 비난의 화살을 교수에게 돌리려 한다.
속지 말아야 한다. ‘미친 등록금’의 원인은 불법과 얌체 짓을 일삼는 사학재단과 이를 방조하는 정부에 있다.
제도를 바꿀 수 있는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시민의 직접행동과 정치권의 결단이 결합된다면 늦어도 내년부터 등록금은 반값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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