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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등록금 문제 해법을 서두르지 말라고 여당에 황당한 지침을 내리시더니, 이제는 아예 ‘반값 등록금이 불가능하다’는 식으로까지 말씀하셨습니다.
대학에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와 자신의 책임은 전혀 없다고 발뺌하면서, 반값 등록금을 불가능한 정책으로 치부해버린 것입니다.
참으로 비겁하고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자신의 선거운동본부에 ‘등록금 절반위원회’까지 설치·운영했었고, 한나라당이 수십 차례 공개적으로 발표한 중대한 공약이었으며, 그리고 현재 대다수 국민들이 폭발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반값 등록금 정책이 ‘안 되는 것’이라니,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등록금 문제는 한국 사회의 살인적인 교육비 부담 문제와 깊숙이 얽혀 있습니다. 즉, 출생에서 대학 졸업 때까지 무려 3억원 안팎의 엄청난 양육·교육비용이 드는 ‘살인적인 교육비 고통’이라는 맥락에서 등록금 문제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 살인적인 교육비 고통 중에서도 대학 등록금 및 고등교육 비용이 가장 과중하기 때문에 최근에 반값 등록금 운동이 국민적 의제로 떠오르게 된 것입니다. 1년 등록금만 1000만원 안팎의 ‘미친 등록금’의 나라에서, 여타 교육·생활비용까지 하면 대학생 1인당 1년에 3000만원 안팎의 비용이 소요되는 과중한 교육비 부담의 나라에서 어느 국민이 평안하게 생활할 수 있겠습니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고등교육비 지출 중 공적 부담과 사적 부담의 비율은 69.1% 대 30.9%입니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정반대로 사적 부담 비중이 79.3%(2007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나라 미친 등록금 문제의 원인과 해법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고등교육과 관련된 비용을 철저히 개인에게 부담시켜 왔다는 것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자면 다른 나라들처럼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1년 예산만 310조원이나 되는 대한민국에서 ‘대학 무상교육’도 아니고 ‘반값 등록금’도 못한다는 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라 할 것입니다.
이명박 정권은 정작 국민들이 그렇게도 하지 말라고, 백번을 양보해서 서두르지 말라고 호소했던 ‘부자감세’나 ‘4대강 사업’은 수십조원을 들여서 사람이 죽어나가도록 서두르더니, 정말 시급한 민생 문제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학의 자구노력도 중요하지만, 정부의 재정 지원을 확대함으로써 반값 등록금이, 또는 그에 근접한 정책이 충분히 가능함에도 막연한 이유로 반대하고 나서는 것은 국정 최고책임자로서의 온당한 태도가 아닙니다. 반면 한나라당 당대표 경선에 나선 남경필 의원은 내년부터 반값에 가까운 등록금의 45%를 인하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대학생들이 절절하게 주창하고 있는 ‘조건 없는 반값 등록금’에 꼭 부합하는 안은 아니지만,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라 할 것입니다.
지금의 대한민국보다 훨씬 못살던 20세기 초·중반에 유럽은 대학까지 무상교육, 무상의료 시스템을 도입하였고, 그 골격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최근 독일의 몇몇 주에서는 한 학기당 80만원밖에 안 하는 등록금을 폐지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정말 소액에 불과한 그 등록금마저도 국민들에게 부담을 주지 말고 교육은 국가와 사회가 공적으로 책임지자며 폐지한 것입니다.
이제 고등교육을 철저히 학생·학부모의 책임과 부담에만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고등교육 정책은 즉시 폐기되어야 합니다.
교육정책에 대한 논쟁은 뒤로하고, 최소한 교육비만큼은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는 사회, 출생에서의 불평등은 어찌할 수 없다 해도 사회로 나아가는 출발선만큼은 최대한 공정하게 보장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국가의 참된 도리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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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반값 등록금’ 때문에 세상이 온통 시끄럽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대학 등록금 부담에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드디어 들고일어났고, 보수집단의 반론 또한 만만치 않다. 대학에 너무 많이 진학한다는 둥, 부실대학·부실대학생에게도 국민세금으로 지원해줘야 하냐는 둥, 연구 안 하는 교수들 월급이 너무 많다는 둥, 안식년 가서 골프만 친다는 둥(그런 교수가 몇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국가재정이 파탄난다는 둥, 표 있는 대학생만 보고 표 없는 빈곤아동은 안 본다는 둥(보수언론이 언제 빈곤아동 걱정했는지 필자는 별로 기억이 나지 않지만) 보수집단들의 물타기 노력이 보기에 너무 애처롭다.
연구 안 하고 월급 많이 받는 교수들 있다. 안식년 가서 골프만 치다 온 교수도 있다. 부실대학, 부실대학생도 있다. 필자도 안다. 다 정리 대상이다. 반값 등록금이 아니라도 반드시 고쳐야 한다. 보수집단이 잘못된 건, 반값 등록금이 아니라면 그건 마치 정리 안 해도 되는 것이었던 것처럼 일언반구도 언급이 없다가 왜 갑자기 그게 최대 이슈인 양 떠들어대냐는 거다.
냉정을 되찾고 지금 이 시대의 대학생들, 이 나라의 젊은이들의 문제를 보자. 그들이 한평생 겪을 비애가 보이지 않는가. 어려서는 학원을 전전하며 협동보다는 경쟁만을 배운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등록금 빚이 쌓이고, 대학을 졸업해도 청년실업의 벽에 직면한다. 취직도 하기 전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열심히 스펙 쌓고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녀 어렵게 취직해도 비정규직이 반이고 운 좋게 정규직 일자리를 얻어도 선배들보다 낮은 임금에 만족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리고 한참 일하고 한참 벌 나이가 되면 노인 부양을 위한 사회 부담으로 저축 여력이 고갈되고(우리나라는 2036년 2명이 일해서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사회가 된다), 그다음 한평생 열심히 일하고 은퇴할 나이가 되면 자신들이 한평생 낸 국민연금 보험료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한푼도 되돌려받을 수 없는 참담한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2060년에는 국민연금이 고갈된다.)
지금 20대 젊은이들이 겪을 암울한 한평생이다. 지금의 40~50대 기성세대(물론 필자도 포함해서)가 20~30년 뒤 바로 이 젊은이들(필자도 20대의 두 아이가 있다) 에게 은퇴 후 삶을 의탁하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성세대가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반값 등록금 정도는 투자해야 하지 않겠는가.
반값 등록금으로 4조원이 드니 6조원이 드니, 그런 돈이 있네 없네 시끄럽다. 이명박 정부는 추가감세를 하느니 마느니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모두 잊고 있는 게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2008년 실시한 부자감세 조처로 이 대통령 재임 5년간 총 96조원, 그리고 그 뒤에도 매년 25조원(이상 2008년 불변가격)의 감세 혜택이 부유층에게는 계속되고 있다.
이 땅에서 상위 3%에 드는 부유한 가정이라면, 그리고 만약 그 가정에 대학 다니는 자녀가 있다면 이미 ‘등록금 반값’의 많게는 5~10배를 매년 되돌려받고 있는 셈이다. 필자도 종부세 감면 덕분에 실질적으로 ‘반값 등록금’ 혜택을 이미 받고 있으니 이명박 대통령‘님’께 감사드려야 하나? 이명박 정부가 부유층에게는 반값 등록금 공약을 실천한 게 틀림없다. 서민·중산층에게는 그런 공약을 한 적이 없다니 할 수 없지만.
대학 진학률이 너무 높다고 대학생들을 나무라지 말자. 고등학교 졸업장만 가지고는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할 수 없는 게 어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는 19살 아이들 탓인가. 대학 졸업생 10명 중 7~8명이 제대로 된 안정적 직장을 구할 수 없다면 대학 다니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학생들을 탓할 수 있겠는가. 모두 이 사회가 뒤틀려 있기 때문이다.
나만 우선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자. ‘내가 왜 너를 위해 세금을 더 내고 희생해야 하나’ 하다가 나중에 ‘너희들이 우리가 노인이 되면 부양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가.
젊은이들에게 투자를 하자.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자. 그것이 우리 기성세대들의 미래다.
<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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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투쟁, 구차함과의 싸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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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기보다 구차함에 속앓이 비명을 질러라, ‘이기는 싸움’ 위해
몇달 전 한 외식업체의 기자간담회가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있었다.웬 대학에서 외식업체 간담회를 하는가 싶었는데 도착해보니 역시나 업체에서 자랑하고 싶어할 만한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의 널찍한 카페형 매장이 대학 안에 입점해 있었다.
대형 외식업체들이 대학 캠퍼스 안으로 들어간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니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매장 안을 둘러보다 한 곳에 시선이 멈췄다. 전시형 냉장고 안에 일렬로 서 있는 흑맥주 ‘기네스’였다. 깜짝 놀랐다. 직장생활을 십년 넘게 한 지금도 맥줏집에 가면 메뉴판을 보며 고민하다가 대체로 “음… 나는… 기네, 아니 아니 그냥 카스!(또는 맥스)”라는 레퍼토리를 반복하게 만드는 바로 그 맥주가 아닌가. 고개를 들어 메뉴판을 보니 값도 여느 맥줏집 메뉴판에서 보는 가격과 비슷했다.
기자간담회에서 돌아오며 지금 대학생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돈을 버는 지금도 선뜻 사먹기 망설여지는 고가의 음식을 학교 다니면서부터 보며 ‘먹고 싶다’는 욕망과 ‘먹을 수 없다’는 현실적 제약 사이에서 갈등했다면 얼마나 고달팠겠는가.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하고 진로가 다양하게 정해지면서 동창이나 친구들의 사는 모습도 천차만별로 바뀌었다. 일이 바빠서, 아이 키우느라 시간 내기 힘들어서 등의 이유로 연락이 뜸해진 친구들도 있지만, 때로는 사는 모습이 너무 달라져서 멀어진 친구도 있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궁색하다거나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물건을 딱히 가지고 싶어한 적도 없건만, 값비싼 명품에 골프여행 운운하는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위축이 됐다. 불편한데다 서로 관심사도 다르니 연락이 뜸해질밖에.
당당히 소신을 가지고 살면 되지 왜 위축되냐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그건 위로도 격려도 되지 않는 지루한 훈계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2000원짜리 밥 사먹으면서도 얼마든 대학생활 즐겁게 할 수 있다고 말해봤자 1만원짜리 맥주와 2만원짜리 음식 메뉴판을 애써 외면해야 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이것은 명품이나 골프도 아니고 먹고사는 문제다.
구차함은 사람을 위축시킨다. 대학 등록금이 과도하게 비싸진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나 역시 4년 전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 등록금 고지서를 보고 등록을 망설였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에야 학생들이 들불처럼 일어난 것은, 그동안 ‘구차함’으로 속만 끓이던 시간이었지 싶다. 대한민국에서 대학 등록금의 존재는 대학만큼이나 당연한 것인데, 그걸 감당 못하는 자신 또는 부모가 구차하고 무능하게 느껴지는 마음고생을 얼마나 했을 것인가.
어떻게 보면 80~90년대 대학생들의 민주화 투쟁처럼 ‘명분’을 위한 분노는 오히려 쉽다. 그러나 먹고사는 문제로 인한 좌절감과 그로 인한 모욕감은 명분싸움과는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개인적인 내상이 크다. 그 상처가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고통스러워진 이 시점에 와서야 아이들은 뛰쳐나와 꾹 참고 있었던 비명을 내지르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등록금 투쟁이 ‘이기는 싸움’이 되기를 바라는 이유는 단지 등록금 인상의 제동을 바라서만은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의 구차함과 모욕감으로 성인식을 치러야 했던 많은 대학생들의 내상이 치유되기를 바라서다.
< 김은형, 한겨레 경제부 기자 dmsgud@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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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학생·학부모 가슴에 못질한 이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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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이명박 대통령의 입을 주목한 건, 그와 한나라당이 했던 반값 등록금 약속 때문만은 아니었다. 노점상 앞에서 보인 그의 눈물, 그가 건넨 목도리가 생각나고, 공정한 사회를 언급할 때의 그 단호한 눈매를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침묵했던 그의 입에서 기껏 나온 말이란 ‘반값 등록금 불가’였다. 그것도 반성의 맥락이 아니라, 교육부 장관에게 책임을 떠밀고 질책하는 맥락에서 한 말이었다. 그렇게 당하고도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만 한심하게 됐다.
지난주말 국정토론회에서 그가 한 발언의 요지는 이랬다. “어떻게 반값이 되느냐, 안 된다고 알면 교육부 장관이 제대로 일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동안 대학들이 얼마나 안일했느냐.” 결국 등록금 문제의 책임은 대학에 있고, 이 문제는 대학이 해결하도록 교육부가 조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공약 이행은 사라지고, 대학 손목 비틀기가 이 정부의 등록금 문제의 지침이 됐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미 반값 등록금을 위한 재정지원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굳이 등록금 문제의 연원을 따진다면, 그 뿌리는 이 정권이 젖줄을 대고 있는 정권들에 닿아 있다. 5공은 대표적 선심정책인 졸업정원제로 정원을 팽창시켰고, 문민정부는 대학 설립 준칙주의로 대학을 팽창시켰다. 이런 교육시장주의를 결정적으로 강화시킨 것이 이 정권의 대학자율화 정책이다. 심지어 입학 장사나 교비 횡령 등으로 쫓겨난 비리 재단의 복귀도 그 맥락에서 이뤄졌다.
그런 정부가 손목 비틀기로 대학 등록금을 줄이겠다고 하니, 누가 그것을 곧이들을까. 우롱당하는 느낌뿐이다. 사실 손목 비틀기는 해법도 되지 않는다. 일부 유명 사립대를 제외하고 학교 운영의 등록금 의존도는 80~90%에 이른다. 감가상각비 적립 이외에는 모두 등록금으로 학교 살림을 꾸린다. 이들의 손목 비틀기는 마른행주 쥐어짜기나 다름없다. 학습의 질 저하로나 이어질 뿐이다.
유일한 대안은 교육시장주의를 포기하고, 국가의 책임성을 높이는 것뿐이다. 구조조정이나 통폐합을 위해서도 재정지원은 필수라는 것이 정설이 된 것은 이런 까닭이다.
더욱 안타까운 건 학생들과 학부모다. 얼마나 더 촛불을 들어야 저 위선자들이 반성할 것이며, 언제나 부모의 재력과 무관하게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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