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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를 보면 “분노하라”고 외친 프랑스의 원로 레지스탕스 활동가 스테판 에셀의 말이 혁명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사람들은 더는 불의의 권력을 방관만 하지 않는다. 분노하고 행동한다. 부도덕한 언론권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10일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이 168년의 역사를 지닌 런던의 일요신문 <뉴스 오브 더 월드>를 폐간하게 만든 것도,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언론윤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부도덕한 신문에 대한 영국 국민의 분노의 힘이었다.민주 시민의 분노가 부도덕한 언론재벌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머독 신문의 원죄는 선정적인 이야깃거리를 찾기 위해 민간 탐정까지 고용해서 연예인, 정치인 등 각계 명사들의 휴대전화 통화를 불법 도청(해킹)해온 데 있다.
이 신문은 2006년 왕자 윌리엄의 민감한 통화 내용을 해킹한 것이 드러나, 왕실 담당 기자와 탐정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신문은 그 후 도청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최근까지 4000건에서 7000건에 이르는 도청을 해왔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의회 차원에서 도청사건을 공식 조사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그 때문이다.
<뉴스 오브 더 월드>는 단순히 도청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신문은 2002년 납치됐다 살해된 13살 소녀 밀리 다울러의 음성우편함을 해킹하고, 음성함에 저장된 통화 내용을 일부 삭제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소녀의 부모는 딸이 이미 죽은 것을 모르고 아직 살아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래서 더 오랜 세월 정신적인 고문을 겪어야 했다. 수사에도 지장이 있었다. 이런 사실이 최근 <가디언>에 보도되자 신문의 통화 해킹을 비난하는 항의가 빗발쳤고, 하원은 도청 문제를 다룰 특별 회의를 열게 됐다.
이처럼 신문의 도청 스캔들이 확산되면서 시민사회가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를 이용해서 행동에 나섰다. <뉴스 오브 더 월드>에 광고를 내는 기업 간부들의 이메일 주소를 작성해서 구글 문서로 올렸다. 수백명이 트위터를 통해 이들 간부들에게 신문의 윤리 문제를 비난하고 광고 게재를 중단하거나 취소할 것을 설득했다. 이에 기업 간부 200여명이 광고를 중단하거나 재고하겠다고 응답했다. 머독이 <뉴스 오브 더 월드>의 폐간을 결정하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언론윤리를 무시하고 이익만을 앞세우며 이념적으로 보수 세력의 첨병 노릇을 하는 언론재벌을 응징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언론의 탈선을 억제하는 방법으로 이런 매체에 광고를 게재하지 못하도록 설득하는 운동의 효시는 한국의 언론소비자주권운동(언소주)이었다. 하지만 ‘언소주’ 운동은 조중동이 시장원리에 저촉된다며 집중 공격하는 바람에 좌절됐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이러한 운동이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실현하는 정당한 행동으로 인정되고 있다는 것이 <뉴스 오브 더 월드> 사건으로 입증됐다.
이 운동이 시장질서를 교란한다는 따위를 이야기하는 영국 언론은 없었다. 당사자인 머독도 이 운동의 정당성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그 결과를 받아들였다. 광고중단 캠페인을 이끈 멜리사 해리슨의 설명처럼, 이 운동의 “목적은 신문을 문 닫게 하는 데 있지 않다. … 그 목적은 우리의 분노를 표현하는 데 있다. 운동을 통해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목소리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리고 뉴스코퍼레이션(머독)도 사람들이 말하고자 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언론의 사명보다 이익을 우선하는 언론재벌에 대한 투쟁이 힘을 얻을 것 같다.
< 장행훈 언론인·언론광장 공동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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