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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라면 서민의 애환을 반영하고, 세태를 꼬집고 권력 등 가진 자를 풍자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김인규 사장의 한국방송에는 용납되지 않는다.
다른 방송은 모두 허용했는데 한국방송만 방송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편파 방송, 친일독재세력 찬양, 자사 이익을 위한 도청 의혹 등에 이은 파행이다. 한국방송의 퇴행에 브레이크는 없다.
방송 불가 판정을 받은 곡들은 4대강 정책을 비판하고(‘흐르는 강물처럼’), 용산참사의 잔혹성을 고발하며(‘가혹하고 이기적인’), 족벌 언론의 폐해를 비판한(‘뮤트’) 노래 등이다. 모두 장삼이사가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들이다. 그럼에도 사회갈등을 조장한다느니, 부정적 가치관을 조성한다느니 따위의 터무니없는 이유로 금지 딱지를 붙였다. ‘쥐-20 그림’ 처벌의 대중가요 판이다.
방송 금지의 효력은 다행히 한국방송 전파에 국한된다. 하지만 지난달 여성가족부의 청소년유해매체 판정 결과와 나란히 놓고 생각하면 심란하다. 여성부는 가사 중에 ‘술’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여자와 남자가 이별한 뒤에’에 유해 판정을 내렸다. 문제가 된 것은 고작 “가끔 술 한 잔에 그대 모습 비춰볼게요”였다.
유해 판정을 받으면 19살 이하에겐 판매도 방송도 힘들다. 사실상 퇴출이다. 유신과 5공이 노래에 가한 억압이 떠오르는 까닭이다. 당시 공연윤리위원회는 창작물에 대한 저승사자 구실을 했다. 공륜이 붙인 딱지는 대개 가사 내용이 허무하고 염세적이라느니, 저속하고 퇴폐적이라느니, 사회 통합을 해친다느니 따위였다. ‘동백아가씨’나 ‘독도는 우리 땅’도 그런 이유로 금지 처분을 받았다.
방송사 심의는 표현의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정부 비판 혹은 세태 풍자를 문제 삼는다면 그건 심의가 아니라 검열이다. 검열이 철폐된 이상 음악의 사회 비판을 금지해선 안 된다. 방송의 공적 기능을 고려해 욕설, 선정성 등 표현을 따져야 할 뿐이다. 한국방송이 2007년 공륜 시절 금지 처분이 내려졌던 노래 가운데 표절곡을 제외하고 대부분 금지 목록에서 제외한 것은 그런 정신에 따른 것이다.
유신과 5공 시절 방송인으로서 잔뼈가 굵었다고 해서 김인규 사장이 공륜 시절로 퇴행하려 해선 안 된다. 그런다고 대중의 비판, 분노, 애환이 줄어들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커지고 깊어질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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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갈등·불안조장 이유
- SBS “부적합한 표현 없어”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노래한 대중가수들의 음반 수록곡이 유독 <한국방송> 심의에서만 무더기로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인터넷 다음 카페 ‘문화예술로 알리는 시민의 소리’(http://cafe.daum.net/culture.people)는 지난달 21일 옴니버스 앨범 <대한민국을 노래한다>를 발매했다. 이 앨범은 음반 프로듀서 겸 제작자 엄현우씨를 비롯해 여러 대중가수들과 시민 회원들이 힘을 모아 만든 것이다.
4대강·반값등록금·비정규직·부동산·언론·교육 등 다양한 사회적 현안을 이정열, 한동준, 블랙신드롬 등 대중가수들이 노래했다. 엄씨는 “밥 딜런, 브루스 스프링스틴, 유투 등 서구의 많은 음악인들이 부조리한 현실을 풍자·비판하는 노래를 불러온 것처럼 우리도 음악으로 사회참여를 해보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엄씨는 지난 7일 음반에 실은 10곡 중 4곡에 대해 한국방송 심의에서 방송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는 통보를 받았다. 용산참사를 노래한 ‘가혹하고 이기적인’(이정열), 4대강 사업을 비판한 ‘흐르는 강물처럼’(오소리/시민가객), 사회 전반을 풍자한 ‘이상한 나라’(더 버드 앤드 앨리스), 보수신문의 왜곡보도 행태를 꼬집은 ‘뮤트’(진안) 등이 한국방송 텔레비전·라디오 전파를 탈 수 없게 됐다.
한국방송 심의실 쪽은 “‘가혹하고 이기적인’은 전반적 분위기가 지나치게 염세적이고 어두운 노랫말로 사회 갈등 및 불안을 조장할 우려가 있고, ‘흐르는 강물처럼’은 현실 부정적인 노랫말 때문에 방송 부적격으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또 “사회 현상을 풍자하고 있으나 부정적 사회 가치관을 조장한다”(‘이상한 나라’), “현실에 대한 냉소가 지나치고 사회갈등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뮤트’)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수록곡들은 <문화방송> <에스비에스> <기독교방송> <불교방송> <평화방송> 등 다른 방송사에서는 모두 방송 적격 판정을 받았다. 실제로 가사 내용(표)도, 요즘의 사회적 현실을 은유적이거나 서정적인 표현으로 빗대어 쓴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평이다. <에스비에스> 심의팀 관계자는 “음악을 통한 사회 비판은 얼마든지 가능한 것 아닌가. 관건은 표현 자체인데, 방송에 부적합한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보통 방송 부적격 판정은 욕설, 선정적 표현, 특정 집단 비하 등에 주로 내려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창남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방송 부적격 사유로 든 것들은 1970년대 유신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시대착오적 표현들이다. 공영방송이라는 한국방송이 요즘 얼마나 퇴행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심의 결과”라고 꼬집었다.
<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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