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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들은 쫓겨나고 공영방송은 조롱의 대상이 됐다
김재철이 지배하는 MBC는 땡전뉴스 시대를 뺨치고 있다
<문화방송>(MBC) 사원들은 지금 허탈하다.
김재철 전 사장이 다시 사장으로 선임됐다. 지난 금요일 갑자기 사표를 낸 지 3일 만이다. 김 사장은 그제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에 사표를 낸 동기를 설명하면서 ‘방송통신위원회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을 뿐 사퇴 의사는 없었다’고 말했다. 문화방송 사장직이 희화화된 그만큼 사원들도 조롱을 받은 느낌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말 놀란 것은 방문진의 반응이다. 김 사장의 사표 제출이 진심이었건 아니건 간에 효력이 발생됐고, 그에 따라 방문진은 재선임 절차를 밟았다. 김 사장은 단순히 재신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새로 사장에 선임된 것이다. 그렇다면 공모절차를 포함해 김 사장이 문화방송의 사장으로 적합한지 충분히 검증하는 절차가 있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방문진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여당 출신 이사들은 이런 절차 없이 압도적인 머릿수의 힘으로 그를 다시 사장에 앉혔다. 시청률과 광고수익이 좋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그러나 전두환 시대에야말로 문화방송의 시청률과 수익이 좋았지만 아무도 당시 사장들이 훌륭했다고 하지 않는다. 청와대의 하수인으로서 땡전뉴스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이 지배하는 문화방송에서는 땡전뉴스 시대 뺨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주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해 취재하겠다는 피디수첩 피디에게 담당 부장이 ‘불가’라고 답했다. 그는 ‘청문회 이후에나 해야지 전에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고 한다. 그는 내년 총선과 대선 때도 ‘후보 검증을 선거 이후로 미뤄야 한다’고 고집할지 모른다.
피디수첩은 이제 4대강 사업도 다룰 수 없다. ‘4대강 사업은 그동안 너무 많이 다뤘다. 사업이 완공될 때까지 다룰 수 없다’는 것이 간부들의 입장이다. 미군 고엽제 문제도 취재하지 말라고 했다. 꼭 하려면 시청률이 7% 이상 나와야 하고 그보다 낮으면 담당 피디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불이익이란 피디수첩 팀이 소속돼 있는 시사교양국을 떠나 비제작부서로 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쉽다. 올해 3월부터 지금까지 4명의 피디가 본인들의 의사와 달리 비제작부서 발령을 받았다. 게다가 피디들이 내는 기획을 사사건건 막는 과정에서 담당 부장이 피디들의 책상을 뒤지는 등 사찰 논란까지 일어난 상황이다.
과거에는 간부들이 이처럼 언론의 기본 정신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면 노사가 참석하는 공정방송협의회 등에서 논의되고, 심하면 문책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간부들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김재철 사장 체제에서 단체협약이 해지되었기 때문이다. 문화방송이 보유했던 단체협약의 공정방송 관련 조항들은 노태우 정부하에서 체결된 것들이었다. 87년 6월항쟁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전두환 독재 시절의 ‘땡전뉴스’를 극복하기 위해 마련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들인 것이다.
그런데 단체협약을 해지함으로써 김재철 사장은 문화방송을 사실상 전두환 시대로 되돌리고 있다. 게다가 그는 최근에는 한 번도 없던 새 규정을 만들어 소셜테이너들의 출연을 막는다는 비판까지 받았다. 문화방송을 향한 실망은 조롱으로 바뀌어 ‘3보 1퍽’이라는 민망한 대응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런 참담한 상황들은 김재철 사장의 재선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그처럼 재빨리 눌러앉힌 것이 아닐까?
문화방송의 사표 파동과 <한국방송>(KBS)의 도청 파문이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은 우리 공영방송 시스템이 완전히 망가졌다는 것이다. 공영방송은 이제 대통령 선거의 전리품이 되어버렸다. 권력을 견제하려는 저널리스트들은 쫓겨나고 ‘청문회 뒤에나 해보든가’라고 저널리즘을 우롱하는 자들이 방송을 장악했다. 아무리 도청 파문을 해명하라고 요구해도 안 하면 그뿐이다. 국민이 아니라 권력에만 책임지면 되는 것이 현재의 공영방송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보수건 진보건 누구를 위해서도 공영방송을 이렇게 놔둬서는 안 된다. 국민 여론의 공론장이 되어야 할 방송을 권력의 선전장으로 만들어버린 현재의 공영방송 시스템은 반드시 바꿔야 한다. 그것이 김재철 사장 사표 파동이 남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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