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나랏돈으로 개인 정치 하지 말라

道雨 2011. 8. 4. 12:23

 

 

 

           나랏돈으로 개인 정치 하지 말라
 

 

» 곽병찬 논설위원
일본 자민당 의원 3명이 김포공항에 도착해 농성하던 시간, 서울시는 무상급식 주민투표 발의를 공표했다. 신도 요시타카 외 2명(이하 신도 외 2인)이 울릉도를 방문하겠다며 소란을 떨 때부터 겹쳤던 게 이들과 오세훈 서울시장이었지만, 우연치고는 너무 공교로웠다.

 

겹쳐 보인 이유는 하는 짓이 정치적 쇼라는 점 말고도, 두 나라의 외눈박이 우익들이 열렬히 환영하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양쪽 모두 흑안(혹은 철면피)이었다.

신도 외 2인은 서울이 100년 빈도의 폭우로 재난을 당한 상황에서, 9시간이나 농성하며, 우리 국민을 농락했다. 적어도 후쿠오카 사태 때 한국민이 보낸 우정을 생각했다면, 자제할 일이었다. 오 시장 역시 재난으로 난리 북새통인데도 오로지 대권을 향한 제 정치일정 관리에 전념했다.

 

사실 울릉도 방문 쇼는 얼치기였다. 관객도 별로 없었다. 문제는 한국 정부였다. 신도 외 2인의 서투른 혹은 일과성의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는 것을 이명박 대통령과 이재오 특임장관이 나서서 초강경 발언을 쏟아내는 바람에 판이 국제적으로 커졌다. 얼치기 쇼는 흥행 대박의 쇼가 되어버렸다.

 

이들이 애국심에 불타 그런 실수를 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나치게 촌스럽고 돌출적이어서 그 배경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재오 장관의 경우 의혹은 금방 해소됐다. 그가 독도에서 초병 복장을 한 채 찍은 사진을 전국으로 날리면서 ‘나 꼼수!’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의 경우는 아리송하긴 하다. 다만 일본과의 독도 문제에 대해 그렇게 유화적이었던 그가 그렇게 완강한 태도로 돌변한 것 자체가 미심쩍었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2008년 후쿠다 총리와의 한-일 정상회담에서 사실상 일본의 영유권을 인정했다는 일본 <요미우리신문> 보도를 기억한다. 그래서 이런 인식을 불식하려던 터에 이번에 한 방 날렸다고 보는 이도 있다. 그게 맞다면 꼼수 쓰려다 호구에 머리를 디민 결과가 되었다.

 

그러나 독도 꼼수는 주민투표 꼼수에 비하면 약과다. 오 시장은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밥 한 끼의 문제가 아니라 복지 포퓰리즘과의 전쟁이라고 호언한다.

그러면 정부 여당이 추진해온 무상보육은 무엇인가. 거기에 대해선 왜 침묵하는 걸까.

재벌·족벌언론의 찬사 속에 기고만장하는 모습도 가관이다.

한나라당이 거듭 말렸지만 그의 돌진을 막지 못했다. 홍준표 대표가 중앙당 차원의 공식 지원 결의를 이끌어내긴 했지만, 그 역시 뒤로는 야당과 타협을 거듭 재촉했다.

 

밑져봐야 본전이란 계산이 작용했을 것이다. 신도 외 2인이 판을 벌이는 데는 비행기 삯이라도 들었다. 그러나 오 시장은 나랏돈 182억원으로 독상을 차렸다. 그는 이미 박근혜 독점 무대인 보수세력 안에서 대항마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니 신도 외 2인이 공짜 비빔밥 먹고, 김까지 사들고 거들먹거리며 귀국한 것처럼, 그 역시 ‘포퓰리즘이 나라 망친다’고 옹알이하듯이 떠벌리기만 하면 된다. 땅 짚고 헤엄치기다.

 

지난 2007년, 예산 20조원인 서울시가 애들 급식 지원비가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호언했다는 오 시장이다.

그도 잘 알겠지만, 무상복지의 테이프를 끊은 건 바로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이다. 2007년 대선 때 이 후보는 무상보육 공약을 제시했고, 한나라당은 반값 등록금 공약을 내세웠다. 지난 1월14일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 보육은 이미 무상보육에 가까이 왔다’고 선언했다.

 

사실 무상급식 재원은 무상보육의 절반도 안 된다. 0~5살 소득 하위 70%에게만 한다 해도 최소 4조원이 필요한 데 반해, 무상급식은 고교생까지 확대해도 2조원을 밑돈다. 그걸 두고 그 주변에선 무상급식에 수십조원이 든다느니 나라 망친다느니 떠든다.

풍차는 공동체를 위협하는 거인이고, 양떼는 교전중인 적들이라며 좌충우돌하고, 포도주 통과 격투를 벌이는 돈키호테가 떠오르는 건 이 때문이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자신의 꿈과 이상을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겼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꿈도 이상도 뭉개버리는 그런 인간과는 다르다.

그의 묘비명은 꼼수 신동 오 시장에게 좋은 약이 될 것 같다.

 

“여기 광인으로 살다가 제정신으로 죽은 이여.”

 

오 시장에겐 아직 살아갈 날이 많다.

 

<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