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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조원 규모의 미국 무기를 사려면 우리는 중형차 64만5000대 또는 휴대전화 1억1180만대를 팔아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빈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하기 직전에, 14조원 규모의 군사장비를 해외로부터 도입하는 내년도 국방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정상회담 사전협의차, 8월부터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임관빈 국방부 정책실장이 미국에 갈 때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주요 무기를 늦어도 내년까지 계약하기 위해 국방정책을 조정한 이는 청와대의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으로 알려졌다.
14조원 규모의 전투기, 헬기, 무인정찰기, 전투기 레이더 등을 사려면 우리는 중형차 64만5000대를 수출하거나, 휴대전화기 1억1180만대, 또는 초코파이 550억4000만개를 팔아야 한다.
게다가 이들 무기는 도입하더라도 30년간 운영에 도입비용의 최소 3배에 달하는 막대한 비용이 추가로 들어간다. 14조원이라는 예상 도입비용도 정작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20조원에 육박할지 모른다는 분석도 나온다. 솔직히 필자가 청와대에 근무한다면 심장이 떨려서 이런 계약을 추진할 자신이 없다. 그런데 이 정부는 문제점을 꼼꼼히 따져보지 않은 채 강행하려 한다.
무기 도입 결정이 한-미 정상회담의 화려한 이미지 창출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작용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김관진 국방장관이 포함된 방미단 일행이 출발하기 전에, 청와대가 직접 국방예산에 개입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음을 볼 때, 그 연관관계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미국의 국방예산 감축으로 방위산업체의 줄어드는 일자리를 한국의 국방예산이 보완해준다면 오바마 대통령이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 최대 방산업체인 록히드마틴은 올해 말까지 1500명을 감원하기로 한 애초 계획에 이어, 9월에는 540명을 더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그러니 한국이 무기만 사준다면 오바마 대통령의 짐이 한결 줄어드는 것은 명확하지 않은가?
마침 14일에 디트로이트 지엠(GM) 공장을 방문한 이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여러분의 일자리를 지키고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낼 것이라는 약속을 이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이치로 본다면 “한국의 국방예산이 미 방위산업체의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낼 것”이라는 말도 이 대통령이 하고 왔어야 하지 않겠는가?
한편 국내에 돌아온 이 대통령은 18일에 서울공항에서 열린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에 가기로 해놓고 행사 직전에 갑자기 이를 번복했다. 오기로 한 대통령이 오지 않은 것만이 우리 방위산업체 관계자들을 허탈하게 만든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다. 외국의 무기를 도입하기 위해 무기 국산화 정책을 포기하거나 왜곡하는 현상을 이미 겪고 있던 터에 대통령이 오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지레짐작하는 분위기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 추진하기로 했던 한국형 전투기, 한국형 중형공격헬기 사업들은 현 정부 말기에 줄줄이 연기·축소·변형되고 있다. 미국에서 일자리를 창출해주는 정확히 그만큼 한국에서는 일자리가 줄어드는 동안 이 전시회도 국내 업체가 아닌 외국 업체의 잔치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 허탈감의 이유다.
이런 상실감을 뒤로하고 미국의 유력 인사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 조종사들이 세계에서 가장 낙후된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달콤한 말로 미국 무기에 중독되도록 유도한다.
군대도 안 갔다 온 청와대 한 실세 비서관은 “스텔스 전투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북한에 공포를 심어줄 수 있다”며 자신의 부족한 군사지식을 그럴싸하게 포장한다.
그렇게 대충대충 넘어가는 한-미 관계가 미래세대를 위한 큰 비전과 메시지인 양 느껴지는 것은 착시현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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