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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기소한 공권력은 습관처럼 희망버스 운동의 ‘배후’를 캐고, ‘조직’을 밝히려고 들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헛된 노고에 불과할 것이다
대기업의 부당한 정리해고 방침에 온몸으로 항의하는 한 여성노동자에 연대한 시민들의 희망버스 운동을 기획했다는 혐의로 송경동 시인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현재 그는 목발을 짚은 채 차디찬 감방에서 구속적부심을 기다리고 있다.
세계적인 지성 노엄 촘스키도 “자유와 평화를 위한 한국 시민들의 명예로운 용기”에 지지를 표한 이 사회운동이 시인의 상상력의 소산이라는 즐거운 충격의 이면에, “도주 우려와 증거 인멸”을 이유로 그 시인을 속박하려는 법의 후안무치한 얼굴은 당혹스럽다. 시인에게 적용된 혐의는 특수공무집행방해와 집시법 위반 등 5가지에 달한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P. B. 셸리는 일찍이 시인을 “이 세계의 공인되지 않은 입법자”라고 했지만, 이제 이 땅에서 그 입법자는 실정법을 앞세운 국가권력의 횡포에 직면해 있다.
구속영장은 희망버스를 불법적인 제3자 개입이자 폭력이라고 강변하지만, 이 운동에는 시적이라고 해도 좋을 사랑의 정서가 배어 있다. 불의에 항의하고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을 바꾸고자 홀로 타워크레인에 오른 김진숙씨의 고투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 희망버스 탑승자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주었다.
시의 사명이 사람들의 선한 본성과 진실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고, 훼손된 인간성을 복원하는 것이라는 셸리의 말대로라면, 희망버스라는 사건은 이 본질에 충실한 셈이다. 시인의 순정한 마음과 자유로운 정신이 엄혹한 사회현실과 강자독식의 쇠사슬을 끊어내는 희망으로 퍼져나간 것, 이것이야말로 시적 상상력이 역사의 진실로 실현된 한 사례가 아닐까?
셸리의 경우에도 희망은 암울한 시대를 밝히는 등불이었다. 1819년 9월 어느날 영국 맨체스터 시내에는 열악한 노동조건과 양극화에 항의하는 수만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그러나 평화로운 집회에 주동자를 검거하겠다고 난입한 경찰로 수많은 사상자가 났고, 이 ‘피털루 학살’에 분노한 셸리는 사회의 모순과 폭력을 비난하는 시를 써서, 한 열혈여성의 모습을 한 ‘희망’의 목소리로 시민들이 단결하여 현실을 바꾸어나갈 것을 호소한다. 송 시인이 발의한 희망의 전언은 이처럼 역사 속에 면면히 흐르는 인간애와 연대라는 시의 원천에서 솟아난 것이다.
법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법이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말도 있다시피, 그것은 인간의 도리라는 더 큰 목적에 종속되어 있다. 실정법과 대비되고 그것을 보완하는 자연법이 있듯이, 법의 진정한 의미는 인권의 보호와 인간들의 공존 및 평등과 약자 보호라는 원래의 정신을 살리려는 끊임없는 추구를 통해 확보된다. 어떤 인간적인 고려나 법정신의 존중도 없이 실정법만을 앞세워 시인의 인신을 구속하려 든다면 이는 법의 존재 이유를 해치는 자해행위와 다를 것이 없다. 법원은 구속적부심 신청을 받아들이고 시인을 즉시 석방하여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시인을 기소한 공권력은 습관처럼 희망버스 운동의 ‘배후’를 캐고 ‘조직’을 밝히려고 들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헛된 노고에 불과할 것이다. 시인 스스로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자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에 대한 이 맑은 사랑이 고통받는 이웃을 향한 애정과 결합된 이 조직 아닌 조직 앞에서, 시인의 인신을 구속한다고 거기에서 발원하는 희망의 바람이 잦아들 리 없다. 오히려 그 배후의 힘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셸리가 ‘서풍에 부치는 송가’에서 노래한 것처럼, 그 바람은 살랑대는 미풍의 달콤함과 낙엽을 흩는 삭풍의 스산함을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우렁찬 ‘예언의 나팔’처럼 새로운 질서의 탄생을 부르는 폭풍이 된다. 그렇다.
“겨울이 오면 봄이 어찌 멀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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