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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에 대한 폭력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흥분한 시위대 몇몇의 과격한 행동은 행위당사자뿐 아니라 집회 참가자 전체를 욕되게 한다. 때로는 집회 자체의 정당성마저 훼손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한-미 자유 무역협정(FTA) 저지 촛불집회 도중 일어난 박건찬 서울 종로경찰서장에 대한 시위대의 폭행 사건도 이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공권력의 완전붕괴’ ‘무법천지가 된 나라’를 의미할 만큼 심각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누가 뭐래도 아직까지 시위현장에서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보이는 것은 힘없는 시민들이 아니라 경찰이다. 평화적인 집회를 강경진압해 시위대를 자극하는 것은 오히려 경찰이다. 국회의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안 날치기 통과 이후 열린 집회에서도 경찰은 엄동설한에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물대포를 쏘았다. 경찰서장에 대한 폭력에 앞서 ‘공권력을 동원한 경찰의 폭력행위’가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박 서장이 보인 ‘무모한 용기’다. 경찰의 물대포 발사 등으로 시위대가 매우 격앙된 상태임을 모를 리 없는데도 시위대 한가운데를 정면으로 뚫고 지나가려 했다. 집회·시위 현장에 나온 경찰서장이라면 시위대의 정서와 분위기를 면밀히 파악해 이에 상응하게 행동하는 것이 기본상식인데도 이를 무시했다. ‘시위대를 일부러 자극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고의적인 폭력 유발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박 서장의 지각없는 돌출행동이 이번 사태를 자초한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경찰과 시위대의 폭력은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경찰의 강경진압은 시위대의 폭력을 부추기고 이는 또다시 경찰의 강경진압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폭력시위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공권력을 앞세운 경찰의 폭력행위 또한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경찰이 물대포 발사로 국민에게 위해를 가한 행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으면서 경찰서장에 대한 폭력 문제만 침소봉대하는 것은 건전한 시위문화 정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여당과 보수언론들이 이번 사건을 ‘호재’ 삼아 자유무역협정 비준안 날치기 처리의 본질을 희석하려 하는 태도 역시 전형적인 ‘꼬리로 몸통 흔들기’다. 그런다고 날치기 처리의 문제점이 덮어질 것도 아니다. [한겨레 2011. 11. 29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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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6월 3일.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국무총리 서리로 임명된 정원식(鄭元植) 전 문교부 장관은 이날 문교부 장관을 퇴임한 뒤, 임용되었던 외대 교육대학원 교수직을 사퇴하며 마지막 강의를 했다. 하지만 이 강의가 끝난 뒤 그는 학생들로부터 계란, 밀가루, 페인트 등을 얻어맞아 뒤집어쓴다. 그리고 한동안 모든 TV 화면과 신문의 1면에 그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중계되면서 화제의 인물이 된다. 당시 노태우 정권은 1년 전 1990년 2월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 전두환 군부세력 주축의 민정당까지 포함된 3당 합당으로 원내 2/3의 의석이 뒷받침을 하고 있는 거대여당 민자당을 가진 정권으로서 마음껏 국정을 주무르던 시기였다. 이에 대항하는 유일 야당 평민당은 재야세력을 계속 수혈하면서 야권세력의 구심점으로 활동했으나 수의 열세를 어찌할 수 없는 상태였다. 따라서 겉으로 보기에 세상은 노태우와 김영삼이 이끄는 정부와 여당이 하고 싶은 짓을 마음대로 하는 국정 안정기(?)로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정원식이 총리서리로 지명되기 두 달 전, 명지대 1학년 강경대 군이 시위 도중 전경에 맞아 숨졌으며, 그 뒤 1주일에 한 명꼴로 각 대학 학생들이 분신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특히 매주 토요일 정권 타도를 위한 시위가 열렸었고 급기야 이 시위도중 또 성균관대 4학년인 김귀정 양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 학생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던 시점이었다. 정원식은 이런 시국을 안정시킬 책임자로 지목되어 총리서리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정원식은 이런 시국을 안정시킬 적임자가 아니었다. 그는 문교부 장관에 재직하면서 전교조의 강압적 탄압으로 1500여 명의 전교조 교사들을 파면하거나 해직하는 등 무더기 징계사태를 유발시켜 교직사회의 공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재야 민주인사들에게도 찍힌(?) 사람이었다. 하여 아주 당연하게 그의 총리 임명 소식은 전교조를 비롯한 학생 운동권의 극렬한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다. 때문에 그의 총리임명을 반대하는 전교조를 비롯한 운동권 학생들의 반 정원식 시위가 봇물처럼 일어났으며 이들은 시위도중 심지어 정원식 허수아비와 마네킹을 놓고 화형식 등을 거행하기도 할 정도로 강경한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정원식 계란투척 사태는 이때 일어났다. 당시 정권과 정원식 본인은 총리서리로 임명된 뒤 이 인사에 반대하는 강경한 시위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정 총리 서리 임명자에겐 당연히 총리 경호실의 경호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총리서리 임명자가 경호원도 수행원도 없이 혼자서 외대를 방문했다. 그리고 그는 아주 당연하게(?) 시위대로부터 밀가루와 계란 범벅 세례를 받는 변을 당했다.
지난 토요일인 2011년 11월 26일.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한복판인 종로구의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종로경찰서장은 한미 FTA 비준동의안 날치기 처리에 반발하는 야당의 정당 연설회에 참석한 1만여 명의 시위대가 모인 광화문 행사장의 경비책임자로 현장에 있었다. 그런데 이 경비 책임자가 지금 시위대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갔다가 시위대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뉴스가 전 언론에 도배되고 있다. 이 사태가 촉발된 근원도 앞서 거론한 정원식 총리서리 테러(?)와 유사하다. 한미 FTA 협정안이 미국의 요구대로 재협상이 완료되어 미국 의회의 비준을 받은 뒤부터 우리 사회는 우리 국회의 비준동의안 처리절차가 어떻게 끝날 것인지 초미의 관심을 두고 지켜보고 있었다. 특히 불평등 조약으로 인정하는 한미 FTA 반대세력들은 협상시작 이후 줄곤 반대시위를 했고, 더구나 이명박 정부에서 행한 재협상안은 더욱 극렬한 반대를 하고 있었다. 당연히 야당은 이런 시민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강력반대를 당론으로 했다. 그러므로 이 비준안이 정상적으로 국회를 통과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 정권과 한나라당은 조약을 날치기하는 헌정사에서 보지 못한 기상천외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이 여당과 정권에 시민들과 야당이 반발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또 그 반발 강도가 극렬할 것도 자명하다. 헌데 정권은 이처럼 반발하는 시위 군중에게 엄동설한에 물대포라는 악행까지 서슴지 않았다. 군부 강경정권 말고는 없었던 민중제압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경찰을 대하는 시위군중의 반응은 어떨까? 당연한 강경이다. 그럼에도 경찰서장이 이런 시위군중 한복판으로 경찰 정복을 입고 경호도 없이 들어왔다가 시위군중에게 폭행(?)을 당했단다. 그리고 그가 폭행(?)을 당한 사진과 동영상은 지금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언론에 도배되면서 반FTA 시위대를 폭력단으로 몰아가고 있다. 데자뷰 1991년 6월이다.
1991년 6월 4~5일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1면에 계란과 페인트, 밀가루 뒤범벅이 된 정원식의 사진을 대문짝만 하게 내보냈다. 그리고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행동은 물론 과거 시위 등에 대한 모든 일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마녀사냥이 대대적으로 진행되었다. 결국 외대 총학생회장을 비롯한 당사자들이 구속되고 외대생 수십 명이 연행되었다. 또 유림과 언론, 심지어 교수들에게까지 이들은 스승도 모르는 패륜아로 몰렸다. 계란 투척을 주도한 학생들은 학교 당국으로부터 제적 등의 징계를, 공안당국으로부터는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쫓기는 신세로 전락했다. 언론에서는 학생들을 ‘반인륜적 패륜아’로 연일 규탄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운동권들의 도덕성은 중대한 타격을 입었다. 반면 대역죄인이 돼버린 학생들에게는 어떠한 반론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로써 정국 상황은 급반전되었다. 공안정국이 조성되어 강력한 공권력의 진압에 거의 매주 토요일 열리던 시위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직후 열린 지방선거에서 민자당은 호남권을 제외한 전국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난국을 탈출했다. 노태우 정권과 민자당, 그리고 보수세력에겐 가히 정원식 열사였던 셈이다.
종로경찰서장도 열사가 될 뻔했다. 2011년 11월 27일의 방송매체들과 28일의 조중동문의 기사들만 보면 그렇다. 그를 폭행(?)했다는 50대는 체포되었고. 경찰은 시위 강경 진압을 천명하고 있다. 당연하게 조중동이 깃발을 들고 모든 보수언론들과 방송매체까지 거들며 반FTA 시위대를 폭력단으로 몰아가고 있음이다. 정권과 보수진영은 이 사건을 빌미로 시위를 잠재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이 작전이 성공한다면 종로경찰서장은 정원식 버금가는 공을 세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열사(?) 되기는 틀린 것 같다. 정원식 당시는 스마트폰도 SNS도 없었다. 그래서 조중동의 선동이 먹혔고 방송화면의 파괴력도 엄청났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조중동보다 SNS가, 지상파방송보다 ‘아프리카 TV’나 ‘나는 꼼수다’ 같은 매체의 파괴력이 더 높다. 그 점이 다르다. 네티즌들은 조중동이나 방송매체의 선동을 즉석에서 촬영된 스마트폰 화면의 반격과 자세한 그림을 가진 아프리카 TV의 현장 화면으로 반격, 그 선동을 무력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포털은 이 사건의 진실공방에 초점을 맞춘 언론들의 보도로 넘쳐나고 있다. 그래서다. 만약 이 사건이 경찰서장의 자작극이거나 폭행유발 작전으로 판명된다면 열사가 되고 싶었던 한 경찰서장의 꿈은 물거품이 될 것 같다. 안타깝다. 그의 충성심이…. 지금 경찰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할 중요한 현안이 있다. 수사권 독립이 그것이다. 형사소송법 시행령 개정을 앞두고 총리실이 발표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일선 수사경찰들은 수갑을 반납하면서 반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수사경찰들의 반발은 어느 정도 국민들의 호응을 받고 있는 중이다. 이는 검찰의 정치적 편중에 학을 뗀 국민들의 검찰견제 심리에 기인한 바 크다. 더구나 그랜저검사니, 벤츠검사니 하는 검사들의 비리까지 속속 드러나고 있는 즈음이므로 경찰이 국민들 눈 밖에 나지 않는다면 수사경찰들의 반발은 상당한 지지를 받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터진 종로경찰서장의 열사(?)행세는 그나마 경찰에 가졌던 국민들의 호감을 날려버릴 것이므로 그가 정권에 충성하다가 경찰조직에 해를 끼친 사람이 되지 않을까 궁금한 하루다.
화씨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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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경찰서장 폭행자 지목된 사람은 종로서 강력팀 형사였다
종로서 신원 확인, 경찰관이 폭행자로 돌변… “왜 폭행사진 됐는지 의문”
(민중의소리 / 조한일 / 2011-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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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경찰청이 배포한 종로서장 ‘폭행사진’ ⓒ제공=서울시 경찰청 |
박건찬 종로경찰서장이 한미 FTA 폐기 집회 현장에서 폭행당했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 서울경찰청이 사실 확인 과정도 거치지 않은 사진을 폭행에 대한 증거자료로 언론사에 배포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경찰청이 배포한 사진에서 ‘폭행자’로 지목된 인물은 종로서 형사로 밝혀졌다.
서울경찰청은 ‘종로서장 폭행 논란’이 발생한 다음 날인 27일 오전 ‘서울 종로서장 폭행 장면 사진 및 동영상’이라는 제목으로 몇 장의 사진과 동영상을 언론사들에 배포했다. 해당 사진에는 박건찬 종로경찰서장의 머리를 짓누르려는 듯한 한 남성의 손이 포착돼 있다. 서울경찰청은 이 부분을 빨간색 동그라미를 쳐 부각시켰다.
이에 대해 보수 일간지 등은 28일자 조간에서 일제히 해당 사진을 폭행의 증거로 제시하며 사설까지 동원해 시위대의 폭력성을 부각시켰다. 또한 이번 사건을 무기력한 대한민국 공권력의 현주소와 법을 우습게 아는 ‘시위꾼’들의 폭력성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라며 한미 FTA 반대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을 맹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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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경찰청이 배포한 종로서장 ‘폭행사진’ ⓒ제공=서울시 경찰청 |
경찰청도 보도자료를 통해 “종로경찰서장이 야 5당 대표를 만나러 가던 중 폭행사건이 발생했다”며 “채증자료를 바탕으로 폭력가담자를 밝혀내 구속수사하고 집회 주최자에 대해서도 사법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경기도 화성시에 거주하는 김모(54)씨를 박 서장을 폭행한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하지만 <민중의소리>가 확인한 결과 서울경찰청이 배포한 사진에서 지목된 시민은 종로경찰서 강력팀 소속 경찰관인 것으로 나타났다.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사진 속의 인물은 종로서 강력팀 소속 직원”이라며 “해당 사진이 왜 폭행사진으로 설명이 됐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민중의소리>에 포착된 연속촬영사진에서 해당 경찰관은 지속적으로 종로경찰서장의 얼굴을 가리고 보호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박 서장의 얼굴을 감싸는 장면도 등장한다. 해당 경찰관은 자신의 직무를 수행한 것뿐이었다.
이 장면이 서울경찰청이 사진을 배포하고 보수언론이 보도하는 과정에서 '폭행'으로 돌변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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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건찬 종로경찰서장이 26일 한미 FTA 폐기 집회 대열 중간으로 들어가 물의를 일으킨 상황. 조선일보는 28일자 1면에 박 서장의 얼굴을 갈색 점퍼를 입은 남성의 손이 감싸쥐는 장면의 사진을 게재하며 ‘머리를 때렸다’고 보도했으나, 해당 남성은 종로서 형사로 밝혀졌다. 민중의소리가 연속촬영한 당시 장면을 보면, 해당 남성의 손은 지속적으로 박 서장의 얼굴을 감싸며 박 서장을 보호하고 있었다. 경찰관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했을 뿐인데, 보수언론의 보도로 일순간 서장을 폭행한 것으로 둔갑했다. ⓒ조선일보 1면 촬영,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
이와 관련 서울시 경찰청 관계자는 “언론에 배포한 사진 속 동그라미 표시는 폭행 장면을 표시한 것이 아니었다”며 “박 서장이 여기 있다는 것을 표시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출처 : http://www.vop.co.kr/A000004527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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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경찰서장 때린 사람은 경찰?
서장 군중 속 진입 이유 "의원들이 오라고 해서"
의원 쪽은 요청한 적 없어…'음모론'도 모락모락
28일 종로경찰서장 폭행의혹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언론에 증거 사진으로 배포한 사진 속 폭행 시민이 실제로는 경찰관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경찰이 공개한 사진에는 박건찬 종로경찰서장의 머리를 짓누르는 한 남성(갈색점퍼 착용)의 손이 나오는데 이는 박 서장의 머리를 보호하려는 경찰의 손이라는 것이다.
누리꾼 'eig***'가 경찰이 배포한 사진과 <칼라 TV>가 공개한 영상을 검토해 27일 올린 블로그 글(http://www.todaysppc.com/mbzine/bbs/view.php?id=free&no=141482)을 보면, 경찰이 박 서장을 때린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이 남성은 시종일관 박 서장을 보호하는 듯한 행동을 취했다.
이 남성은 박 서장이 시위대에 들어갈 때부터 박 서장 바로 옆에 붙어 있는데 시종일관 한쪽 손을 든 상태에서 박 서장의 머리가 가격당하지 않도록 보호했다. 만약 이 남성이 박 서장을 공격하려는 시민이라면 주변에 있던 경찰들이 이 남성을 제지해야 하는데 주변 경찰들은 이 남성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러다 결정적 순간에 이 남성은 왼쪽 손으로 박 서장의 머리를 짓누르는 듯한 행동을 하는데 이 장면을 두고 누리꾼 'eig***'는 박 서장을 때리려던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박 서장의 머리를 때리지 못하게 일부러 머리를 숙이도록 보호하는 장면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부분 언론은 이 사진을 근거로 시민의 경찰 폭행을 속보로 전했다. 이 누리꾼은 "찌라시(언론) 말대로 이 사진이 경찰 서장 폭행하는 것이라면 경찰서장이 경찰에게 쳐맞았음. 뭐 이럼? 당나라임? 찌라시들(은) 알면서 의도적으로 편집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이례적으로 신속한 수사를 벌여 27일 박 서장을 때린 혐의를 받고 있는 50대 남성을 긴급 체포했다. 그러나 누리꾼들은 박 서장이 무리하게 시위대 안으로 돌진한 이유를 놓고 계속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야당 의원들을 만나려 했다는 박 서장의 말을 받아들이더라도, 정당연설회를 하고 있는 의원들의 차량 쪽으로 가려면, 시위대 안으로 들어갈 게 아니라 시위대 바깥으로 에둘러 돌아갔으면 되는데 박 서장은 굳이 정면돌파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누리꾼들은 "조현오 기획, 박건찬 주연, 헐리우드 액션막장 드라마", "종로경찰 서장 셀프 폭행" 이라는 글을 올리고 있다.
또 의원들이 이날 박 서장에게 시위대 안으로 들어오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는 것도 의혹을 키운다. 이날 현장에 있었던 정동영 의원의 말을 종합하면, "의원들을 만나고 싶다"고 먼저 요청한 쪽은 박 서장이다. 밤 9시30분께 사복경찰 한 사람이 의원들을 찾아와 "종로경찰서장이 뵙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의원들은 "우리가 지금 시위대 바깥으로 나갈 수 없으니 곧 대화상대를 지정해 알려주겠다"고 통보했다.
이후 박 서장은 누군가와 통화를 한 뒤 곧바로 시위대 안으로 들어오고 문제의 봉변을 당했다. 박 서장을 보호하던 한 경찰은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의원들이 오라고 해서 들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의원은 2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우리는 박 서장더러 시위대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 적 없다. 경찰이 시민들의 폭력성을 부각시키려고 공작을 기도한 것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며 "이번 일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박 서장의 이날 행동의 배후가 누군지 국회 청문회를 통해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강덕 서울경찰청장은 28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시위대의 인권을 고려해 최근 물대포 사용을 자제했는데, 26일 물대포를 쓰지 않아 이같은 일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며 이번 사건을 물대포 재사용 근거로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허재현 기자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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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찬 종로경찰서장 폭행?… 폭행은 없었다
(서프라이즈 / tulipmania / 2011-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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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박건찬 종로경찰서장 자작극이란 겁니다. 폭력은 없었습니다. 박건찬 서장뿐만 아니라 이 일에 가담한 경찰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상황은 이런데 조중동 및 언론매체들은 마치 폭행 사건이 일어난 것처럼 물증도 없이 여론을 조작하고 호도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선동수준입니다.
도대체 누가 누굴 폭행했다는 겁니까. 폭행이 없었는데 폭행했다는 50대 남성은 뭐하시는 분입니까? 경찰청과 언론의 해명을 듣고 싶습니다.
박건찬 종로경찰서장 사퇴와 이 일에 관계된 경찰들의 엄중문책을 바랍니다. 또한 집회 들어가기 전 통화내역 공개하십시오. 이렇게 긴박한 상황에 누구랑 통화했습니까?
tulip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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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해프닝, 먼저 법정신 위반한 건 종로서장
(블로그 ‘사람과 세상 사이’ / 오주르디 / 2011-11-28)
한미 FTA 날치기에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26일 저녁 한미 FTA 비준 무효를 주장하는 대규모 집회가 광화문 일대에서 열렸다. 경찰은 이날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차벽을 쳐 광장 진입을 원천 봉쇄하려고 했다. 광화문 지하철역도 2시간 동안 경찰에 의해 봉쇄당했다.
원천봉쇄 뚫리자 다급해진 관할 경찰
대규모의 경찰 병력에 가로막힌 시민대열은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집회를 시작했다. 경찰이 추산한 집회참가자 규모는 2천5백 명. 집회 주최 측은 2만 명, 현장 상황을 시시각각 알렸던 SNS에 의하면 2~3만 명 정도였다.
‘진압병력’은 언론 추산 8천 명, SNS 추산 1만여 명이었다. 광화문 광장 개장 이후 가장 많은 시위대와 ‘진압군’이 모인 셈이다. 시위대 선봉에는 야당 대표들이 자리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 이정희 민노당 대표 등이 전면에 나섰다. 엄청난 ‘진압군’을 몰고 온 경찰도 이들 야당대표 5명을 힘으로 끌어낼 수는 없었다. 결국, 경찰의 원천 차단은 불발로 끝났다.
관할 종로경찰서장이 다급해졌다. ‘원천봉쇄’ 명령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고 집회 규모는 예상보다 훨씬 컸다. 야당 대표 5명이 앞줄에 선 집회에 경찰이 밀렸다가는 다음 집회부터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집회가 ‘정권퇴진운동’으로 급격히 진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복에 모자를 쓰고 성난 시위대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종로경찰서장. 불상사를 유발하기 에 충분한 ‘돌출행동’이었다. 신변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져야 할 경찰책임자가 할 처신은 아니었다. |
이때 ‘돌발상황’이 벌어졌다. 종로경찰서장이 정복에 정모 차림으로 시위대에게 접근했고 3만 명 군중 사이를 가로지르려는 시도를 했다. 현장에서 촬영된 동영상을 보면 정복에 모자를 쓴 종로경찰서장이 ‘분노로 가득 찬 3만 군중’ 한복판을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시위대를 가로지르는 장면이 십여 분간 목격된다.
3만 성난 군중 헤집기? 죽지 않고 살아 나온 게 다행
박건찬 종로경찰서장의 돌출행동에 분노한 시위대의 고함소리가 커지며 소동이 벌어졌다. 3만의 시위군중 사이를 정복을 입은 경찰서장이 가로지르는 희귀한 장면이 연출됐다. 이 상황에서 몸싸움은 불가피해 보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몸싸움이었다.
하지만 박 서장이 시위대에 의해 계급장이 뜯어지고 모자와 안경이 벗겨졌다며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동영상을 보면 박 서장의 주장이 과장된 엄살이라는 게 쉽게 간파된다. 시위대가 ‘어서 오세요’ 하며 길을 터줄 리는 만무한 법, 성난 군중 속을 밀고 밀리며 헤쳐 나오는 과정에서 어찌 보면 약간의 몸싸움과 충돌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폭행’이 아니다. 약간의 몸싸움이 일어난 것뿐이다.
성난 시위대가 아니라도 수만 명의 대열을 헤집고 나오려면 단추 하나쯤 뜯길 각오를 해야 한다. 하물며 성난 시위대와 집회를 원천봉쇄하려고 나온 정복차림의 경찰서장 사이 아닌가. 계급장이 뜯겨지고 모자가 벗겨지는 정도의 충돌로 그쳤다면 오히려 그날 집회는 매우 침착하고 평화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경찰은 바보? 불가피한 몸싸움과 ‘폭력’조차 구분 못 해
박 서장의 엄살은 대단했다. 인근 파출소로 도망친 뒤 문을 걸어 잠그고 기자들을 불러 전치 3주의 폭행을 당했다며 가해자를 엄벌하겠다고 말했다. 예상하지 못한 봉변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황당한 일을 벌인 건 시위대가 아니라 박 서장이다. ‘내가 바로 진압군 대장이요’라며 정복을 입은 채 보란 듯이 3만 시위군중 속으로 진입한 행동은 성난 시위대를 자극해 불상사를 자초하도록 유도하기에 충분했다.
전치 3주 폭행을 당했다며 기자회견을 자청한 종로경찰서장. 기자회견은 병원 치료 이전에 열렸다. 어디를 봐도 전치 3주 같지는 않아 보인다. |
스스로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놓고는 시위대를 빠져나오자 황급하게 내빼는 박 서장의 모습이 폭소를 자아낸다. 일단 몸싸움 정도 일으켰으니 ‘임무 수행완료’라고 판단해 재빨리 몸을 숨겼다고밖에 달리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다.
박 서장의 행동을 ‘연출되고 의도된 것’으로 볼 수 있는 정황이 여럿이다. 상부의 구체적 지침에 의한 ‘쇼’라고 보기보다 관할 경찰서장으로서 대규모 집회를 막지 못했다는 질책을 우려한 나머지 스스로 감행한 ‘돌출행동’으로 보는 게 맞을 성싶다. 물론 상부와의 사전 교감 정도는 주고받았을 것이다.
‘의도적 연출’로 볼 수밖에 없는 15가지 정황들
‘의도적으로 연출된 행동’으로 볼 수밖에 없는 정황들이 많다.
1. 시위진압 규칙을 완전히 무시했다. 성난 시위대 한복판으로 진압경찰 책임자가 정복을 입은 채 진입을 시도하는 건 유례가 없는 일이다. 2.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이다. 시위진압을 책임진 위치에서 되레 시위대를 자극하는 행동을 했다. 골목에서 전쟁놀이 하는 아이들도 이런 행동은 하지 않는다. 3. 경찰 고위간부라는 사람이 상황판단을 전혀 하지 못했다. 진압경찰과 시위대는 적대관계다. ‘적군’의 수장이 진영을 횡단하겠다는데 아무런 저항 없이 길을 열어 주겠는가. 4. ‘폭행 당했다’는 주장이 과장됐다. 수만 군중 사이를 씨름하듯 관통하다 보면 모자와 안경이 벗겨지고 경미한 몸싸움이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운동경기에서도 사소한 몸싸움은 반칙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5. 박 서장의 주장에 거짓이 있다. 야당 대표를 만나기 위해 시위대를 가로질렀다고 했다. 하지만 정동영, 이정희 의원 등은 박 서장의 면담 요청을 일찌감치 거절했다고 밝혔다. 6. 박 서장의 언행이 일치되지 않는다. 정복을 입고 시위대 복판으로 진입한 이유에 대해 “이 같은 폭력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거짓말이다. 폭력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1만 명의 ‘진압병력’은 왜 배치시켰나. 7. 박 서장의 행동이 매우 경솔했다. 박 서장은 “정복을 입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항변했다. 이 말이 진심이라면 지휘관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정복 입고 시위대 ‘영역’으로 밀고 들어오는 행동은 시위대를 자극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 중 하나다. 8. ‘전치 3주 폭행’ 주장은 거짓이다. 현장 카메라에 찍힌 박 서장의 얼굴과 기자회견 당시 모습(기지회견 후 병원을 찾았음)에서 ‘폭행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디를 어떻게 폭행당했는지 설명이 없다. 단지 ‘맞았다’는 주장뿐이다. 9. 극과 극의 행동을 보였다. 성난 군중을 가로지르겠다고 덤빈 ‘용기’와 대로를 가로질러 세종로파출소로 줄행랑치던 모습에서 일관성을 찾아볼 수 없다. 10. 현장에 있던 1만 명 경찰은 구경꾼이었나? 수장이 시위대에 폭행당하는 데 동원된 병력은 구경만 했다는 게 말이 되나? ‘구경만 하고 있으라’는 사전 지시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11. 너무 신속한 보도자료 배포. 줄행랑친 뒤 파출소 문을 걸어 잠그고 ‘폭행 사실’을 기자들에게 말한 그 시간 서울경찰청은 이미 ‘보도자료’를 만들어 언론에 ‘즉시 보도’를 종용했다. 12. 현장의 생생한 증언이 있다. 참가자들은 “야유와 욕설은 있었어도 폭행은 절대 없었다”며 “잘 가라고 길을 터줬다”고 주장한다. 13. 야당 대표에게 접근할 수 있는 다른 길도 있었는데 구태여 시위대를 가로지르는 방법을 택했다. 현장 목격자들은 “이순신 장군 동상을 등지고 경찰 바리케이드 뒤로 이동했다면 시위대를 통과하지 않고 빨리 야당의원들이 있는 무대차로 갈 수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일부러 시위대를 관통했다는 얘기다. 14. 경찰이 극도의 긴장상태였다. 야당 5명의 대표가 선두에 서는 최초의 집회였다. 15. 경찰이 심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정부·여당은 ‘한미 FTA 무효’ 집회가 장기화된다면 정권퇴진운동으로 확산될 수 있다며 강력 진압을 경찰에 주문해놓은 상태였다. |
대한민국의 ‘법’ 먼저 위반한 건 박 서장
대한민국의 법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해석할까? 사법부가 시위와 관련해 내놓은 판례에는 “전투경찰들은 시위진압을 함에 있어서 합리적이고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정도로 최대한 안전하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진압해야 하며 타인의 생명과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시위 중 사망한 성균관대 김귀정씨 사건 재판기록)”고 명시돼 있다.
박 서장이 먼저 법 정신과 사법부의 판단에 위반되는 행동을 했다.
▲ 위반 1 : “합리적이고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정도”로 행동했어야 맞는데도 정복을 입은 채 잔뜩 화가 나 있는 시위대 복판으로 진입했다. 비합리적이고 상당하지 못한 행동을 한 것이다.
▲ 위반 2 : “최대한 안전하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진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박 서장은 시위대와의 몸싸움을 유도했다. 현장 안전을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는 서장이 ‘가장 불안하고 평화롭지 못한 방법’을 택해 법정신을 위반했다.
▲ 위반 3 : “생명과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도 무시했다. 정복을 입고 시위대를 가로지르는 행동은 스스로 신체에 위해를 가해 달라고 유도한 것밖에 안된다. 생명과 신체적 안전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경찰 책임자가 시위대가 ‘폭도’로 돌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추겼다.
시위대만 탓할 게 아니다. 경찰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정부는 시위 진압규칙과 상식을 무시한 채 시위대를 자극하는 행동을 한 박 서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자해를 해서라도 집회를 막겠다고 나선 그릇된 ‘충성심’에 따끔한 매를 들어야 하고 이를 지시한 ‘상부’가 있다면 이 또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일부러 국민을 ‘폭도’로 만드는 정부라면, 이런 정권에게 남은 1년을 어떻게 맡길 수 있겠는가. 정권퇴진 운동에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오주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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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사건 가담자 및 주최자를 엄중 사법 조치하겠다."(경찰청) "종로경찰서장이 집회현장 빠져 나가는 것을 바로 앞에서 봤다. 야유와 욕은 있었어도 폭행은 절대 없었다." (11월 27일 <머니투데이> '종로서장폭행' 두고 네티즌 설전, 폭행 잘못 vs. 의도된 꼼수' 중 한미FTA 반대시위 참가자)
지난 26일 광화문에서 열린 '한미 FTA 반대 집회'에서 발생한 박건찬 종로경찰서장 폭행 사건을 두고 경찰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채증자료를 바탕으로 폭력 행위 가담자를 밝혀내 구속 수사하며, 집회 주최자에 대해 엄중 처벌할 것"이라며 "피해를 입은 경찰관은 민사상 손해배상도 청구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트위터 @poiup7652는 "굳이 흥분한 시민들을 뚫고 들어가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폴리스라인 옆으로 돌아 갈 수도 있었는데"라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경찰이 김아무개씨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긴급체포했으니 곧 진위가 가려질 것입니다.
그런데 박건찬 서장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1991년 6월 '정원식 국무총리서리 달걀 투척사건'입니다. 1991년, 개학하자 마자 정국은 소용돌이치고 있었습니다. 1991년 4월 26일 명지대학교 강경대씨가 백골단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두들겨 맞고 방치됐다가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겼지만 한 시간 만에 숨졌습니다.
이후 대학가에는 분신정국이 형성됐습니다. 1991년 4월 29일 전남대학교 박승희씨가 강경대 사건 규탄집회 중 분신, 5월 1일엔 안동대학교 김영균씨, 5월 3일엔 경원대학교 천세용씨가 분신했습니다. 그리고 5월 25일에는 성균관대 불어불문과 김귀정씨가 백골단의 강제진압에 의해 생명을 잃었습니다.
노태우 정권은 1990년 1월, 민정당·통일민주당·공화당의 '야당 3합'으로 국회를 완전 평정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이 정권은 타도 대상이었습니다. 이 와중에 노태우 정권은 강경대 타살과 잇다른 분신으로 집권 3년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정원식 달걀 투척사건'은 일거에 분위기를 반전시켰습니다.
강경대 타살과 분신정권 위기 몰린 노태우 정권
정원식은 1991년 5월 24일 국무총리에 내정됐지만 '서리' 딱지를 떼지 못했고, 당시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6월 3일 마지막 강의를 해야 한다며 한국외대로 갔습니다. 하지만 강경대 타살과 분신정국으로 학생들은 노태우 정권에 대해 극도의 분노로 예민해져 있었고 세종대·덕성여대·부산대 등을 방문했을 때부터 학생들에게 조롱과 야유를 들었습니다.
특히 '정 국무총리서리가 한국외대를 방문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면서 수행원과 가족이 동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는 정정당당하게 갔습니다. 가면 안 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갔고, 일은 벌어졌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 정 국무총리서리를 본 학생들은 "귀정이 살려내라", "전교조 선생님들을 살려내라"는 구호를 외치며 정원식에게 달걀, 페인트와 밀가루를 던졌습니다. 학생들이 그렇게 분노하고, 달걀을 던졌던 이유는 그가 국무총리 서리였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2년 전, 그러니까 1989년 그는 문교부 장관으로 있을 때 전국교직원노조(전교조)를 불법화하고, 구속과 불이익 조처를 한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전교조 탄압의 원조'라는 앙금이 함께 터진 것입니다.
정원식 달걀 맞자 노태우 정권 "반인륜범죄, 체제전복세력"
노태우 정권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당장 언론이 나섰습니다. <조선일보>는 6월 4일자 1면에 정 국무총리서리가 달걀 투척을 받은 사진을 대문짝 만하게 실었고 2면과 30면, 31면에도 실었습니다.
<조선일보>는 노태우 대통령이 윤형섭 교육부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교수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마지막 수업에 나간 정 국무총리서리에게 이같은 폭행을 저지른 일은 학생본분은 물론 인륜에 비추어서도 용서받을 수 없는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불과 한 달 사이에 학생 두 명이 경찰이 휘두른 파이프에 죽었고, 민주주의를 위해 분신한 학생들이 줄줄이 생겼는데, 사과 한마디 제대로 하지 않았던 노태우는 달걀 투척을 두고 "인륜에 비추어 용서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인륜은 누가 저버렸는지 제대로 따져봐야 합니다.
<조선일보>는 6월 5일 1면에 '학내외 폭력 단호 대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정부는 특히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는 물론 체제옹호세력인 지식인 사회지도층이 용기 있게 나서 국민적인 법질서수호에 동참토록 해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며 "정부는 또 그동안 수없이 파출소가 습격당하고 수많은 전경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해도 공권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아 이같은 사태발생이 예견됐다고 지적, 체제전복세력을 철저히 뿌리뽑기로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정 국무총리서리에게 달걀을 던졌을 뿐이지만 하루아침에 '체제전복세력'이 된 것입니다.
<조선> "민중혁명세력이자, 주사파 집단"이라며 맹폭
이어 <조선일보>는 당시 정구영 검찰총장의 발언을 보도했습니다. 정구영 검찰총장은 "이 사건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바탕으로 한 헌법 질서를 뒤흔드는 행위"라며 "검찰은 법집행기관의 명예를 걸고 관련자들을 철저히 색출해 엄단하라"고 말했습니다. 정 총장은 또 "이번 사건은 국무총리 이전에 원로교수에 대한 반인륜적 범죄"라며 "정황으로 볼 때 계획적 조직적으로 저질러진 만큼 배후관계도 철저히 가려내 폭력이 정당화되는 풍조를 바로 잡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강경대씨를 쇠파이프로 죽인 정권이 달걀을 던진 세력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헌법질서를 뒤흔드는 세력'으로 규정해버렸습니다. '달걀·페인트·밀가루'를 정 국무총리서리에게 던진 학생들과 쇠파이프로 학생을 둘이나 죽인 노태우 정권 중 누가 반인륜이고, 헌법질서를 뒤흔든 행위를 저지른 지 당시 사람들은 따져 묻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조선일보>는 5일 2, 3, 4, 5, 9, 22, 23면에 정 총리 서리 달걀투척 사건을 다뤘습니다. 당시 <조선일보>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사설의 한 부분입니다.
"사람들은 정원식 총리서리의 집단폭행 사태를 접하고 먼저 갈데까지간 일부 대학생들의 패륜적 행동을 개탄한다. 이런 개탄은 곧 그들의 배후에 분명히 있을 조직세력에 대한 섬뜩함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보기에도 이번 사건은 결코 우발적이거나 순간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치밀하게 계산된 계획에 의한 것이며, 정총리에게 위해를 가한자들은 그저 하수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이들 조직은 이제 윤리적 투쟁이라는 가면을 벗어버리고 계급 투쟁을 전면에 내세운 민중혁명 세력이며 주사파 집단이라고 세간에선 보고 있다. 이들 세력은 그 동원과정에서 치밀하게 조직적이며 자금면에서도 수만개의 도시락을 동시에 조달할 만큼의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조직세력이 마침내 가투와 병행해서 테러를 자행하는 전법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우리는 이번 사태에서 감지해야 한다. 그들은 궁극적으로 폭력투쟁으로까지 발전할 잠재성을 갖고 있다는 것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조선일보> 1991년 6월 5일 자 사설 '운동권은 타락하고 있다' 중)
결국 <조선일보>의 주장은 통했습니다. 학생들은 연행됐고, 스승도 모르는 패륜아로 몰렸습니다. 들끓었던 시위는 사라졌고, 2주 뒤인 6월 20일 치러진 시·도의회의원선거에서 민자당은 호남(전남·전북·광주)을 뺀 전지역에서 승리했습니다. 국회와 지방의회까지 장악함으로써 정국주도권을 되찾았습니다.
그때도 정 국무총리서리가 스스로 몸을 던져 위기에 빠진 노태우 정권을 구하기 위한 것이라는 반박이 있었지만, 1990년 소련-동구권 몰락과 함께 '정원식 달걀 투척사건'으로 학생운동권은 점점 힘을 잃게됩니다.
20년 후 이명박 정권도 최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했고, '내곡동사저'논란, 한미FTA 비준동의안 강행처리로 여론은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박건찬 종로경찰서장 폭생사건이 터졌습니다.
청와대 "박건찬 폭행, 공권력 도전 용납할 수 없어"
이명박 정권은 이를 '폭력사건'으로 몰아가려고 합니다. <연합뉴스>는 청와대가 지난 27일 한미FTA 반대 집회 과정에서 박건찬 종로경찰서장이 한 시위자로부터 폭행당한 사건에 대해 "공권력 도전 차원에서 용납될 수 없는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했습니다.
한나라당 김기현 대변인도 지난 27일 서면 브리핑에서 "국가질서를 혼란케 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이며, 이번 공무집행방해 및 집단적 폭력행위는 법치국가의 기본을 부정하는 범죄행위로서 결코 묵인할 수 없는 문제"라며 "경찰은 불법시위대들의 공무집행방해 및 집단폭행사건을 철저히 밝혀 엄중히 처벌하고, 또한 불법 집회와 시위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로 법을 집행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박 종로경찰서장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또 그렇게 할 상황이 온다면 경찰서장으로서 언제든지 다시 (시위 현장으로) 들어갈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박 서장 폭행이 사실이라면 원인 제공을 떠나서 비판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이 이번 일을 '집단적 폭력행위'니, '공권력 도전 차원'이니 하면서 집회 참가자를 범법자로 매도해 정국을 반전시키려는 꼼수가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정원식 국무총리서리 사건 때처럼 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시 <조선일보> 등의 언론이 학생운동권을 '패륜'으로 모는 순간 모든 것이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이명박 정권과 <조·중·동> 같은 언론이 눈엣가시로 여기는 SNS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SNS의 여론이 폭행을 무조건 정당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실은 밝혀질 것입니다. 적어도 2011년 11월 26일의 사건은 1991년 6월 3일, 그때처럼 흘러가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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