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인육캡슐’?

道雨 2012. 1. 6. 18:16

 

 

 

           ‘인육캡슐’을 드시겠어요?

                                                                                        (서프라이즈 / 내과의사 / 2012-01-04)


태아 사체를 건조시켜 분말로 만든 후 캡슐에 넣어 약을 만든다. 산삼, 녹용보다 자양강장 효과가 좋다고 선전되는 중국산 “인육캡슐”에 대한 보도가 수개월 전 TV 시사고발 다큐프로그램에서 방영되었다. 이미 국내에도 반입되어 암암리에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며, 시가는 100 캡슐에 80만 원 정도 라고 한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충격과 혐오 그 자체였다.

그러나 특정 질환에 인간의 특정 장기가, 그중에서도 어린이들의 장기가 특효라는 미신은 상당히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1920-30년대 서울지역에서 발생했던 엽기적인 사건들을 소개한 ‘경성기담(京城奇談)’이라는 책에도 신병치료를 위해 영아의 장기를 적출하는 범죄가 등장한다.

결국, 인육캡슐은 만병통치약에 대한 인간의 끝없이 허황된 망상이 21세기에 기이한 형태로 돌출된 사례에 불과하다는 거다.

 

나는 의사가 떼돈을 버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알고 있다. 찾아온 환자들에게 당신은 여러 가지 질병이 있거나, 질병의 위험에 노출되었다고 믿게 한다. (물론 사실 여부와 상관없다.)

그리고 환자가 불안과 두려움에 전전긍긍하며 ‘그럼 어떡하지?’라고 고민할 때, 극적인 타이밍을 잡아 한마디만 던져주면 된다.

“환자분, 전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확실한 약을 처방해 드릴 테니까요!”

 

인육캡슐이 암암리에 거래되는 것도 이와 같은 작동원리이다. 다만, 인육캡슐은 다른 약과 달리 의사의 처방도 필요 없고, 무슨 병이든 상관없이 일단 먹기만 하면 몸에 ‘더할 나위 없이 좋기’ 때문에 과정이 아주 심플하다는 매력이 강점이다. 인육캡슐 마케팅 업자들은 적어도 환자 설득과 소통에 있어 의사인 나보다 한 수 위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에게 있어 인육캡슐의 마케팅 프로세스는 익숙한 과정이다.

나는 인육캡슐을 주저 없이 사서 처먹는 인간들의 심리가 2007년 이명박을 청와대로 보내준 가장 강력한 동력과 일맥상통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거두절미하고 자신을 찍어주면 국민 모두가 부의 탑을 쌓게 해주겠다는 ‘개구라’를 쳤다.

설치류의 대가리와 몸통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전혀 상관하지 않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탐욕 하나로 ‘이명박’을 집어삼켰다. 몸에 좋다면 인육도 서슴없이 처먹는 인간심리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요즘 들어서야 사람들은 설치류 복용에 따른 부작용을 걱정하며 구역질을 하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길은 이미 더 좋은 약을 찾아 벌겋게 달아올라 가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이제 이명박이 불량약제라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좋은 약을 찾아서 먹기만 하면 모든 병이 단번에 해결된다는 믿음이 설치류의 지능지수 수준보다 어리석은 망상에 불과하다는 진실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명박 자리에 좀 쌈빡한 인간을 대신 꽂아 넣으면 나의 탐욕이 채워지리라는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박정희는 인육캡슐보다 백 배, 천 배 뛰어난 ‘전설의 명약’, ‘환상의 묘약’이다.

핏줄이 같으니 명약과 묘약의 국물이라도 좀 남아있을까 해서 ‘박정희 관장사 종결자’인 박근혜는 또다시 한나라당의 슈퍼스타가 되었다.

그러나 바보가 아니라면 안다. 그녀 역시 다른 하나의 인육캡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까칠한 이야기지만, 나는 반한나라당 진영 구원의 메시지일 수도 있을 ‘안철수 현상’ 역시 인육캡슐 마케팅 프로세스의 속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치평론가들은 “기존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과 그 불신을 대체할 대안”이 안철수 현상의 이유라고 설명한다.

내가 먹고사는 의료업계식으로 표현하자면 시중에 쓸 만한 약이 없는 가운데 혜성처럼 나타난 명약이 안철수라는 말이다.

 

병에 걸렸다. 약을 먹었는데 낫지 않는다.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상황에서 의사는 여러 가지 가정을 세우고 검토해야 한다. 환자에게 투여한 약에 문제가 있다는 가정은 그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치의 병리현상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접하는 분석은 오로지 ‘약타령’에 집중되어 있을 뿐이다.

 

안철수는 대단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었던 탁월한 능력과 사고방식과 도덕성이 그대로 훌륭한 정치지도자의 그것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우리는 경험해 보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김대중과 노무현급 정치지도자를 대한민국 정치를 치료하기 위해 처방해 보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왜? 약이 너무 약해서?

 

나는 박정희를 최고의 대통령으로 꼽는, 그리고 그의 혈육이라는 이유로 박근혜가 수구진영의 구세주로 여겨지는 한국 정치현실과 그를 잉태한 한국 유권자의 정치의식은 단세포 수준이라고 단언한다.

탐욕과 이기심이 가장 강력한 동력일 수밖에 없는 것도 그렇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이다.

 

삼성이 아이패드를 찜쪄먹을 수준의 초특급 테블릿 PC를 만든다고 해도 그것이 원숭이 손에 쥐어진다면 무용지물이다.

나는 그것이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꿀릴 것 없는 처방이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약효를 발휘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약타령만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박근혜에 환장하고, 누군가는 안철수에 환호한다.

 

질병치료에 있어 약제의 선택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환자의 상태 역시 약제의 선택만큼 중요한 요소이다. 아무리 좋은 약도 환자가 먹기를 거부한다면 밀가루만도 못한 존재가 된다.

노무현이 완벽히 구축했던 청와대 전산시스템이 로그인도 할 줄 모르는 설치류 손에 들어가면 게임기 구실도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김대중 대통령은 연설문의 서두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하곤 했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 김대중의 사랑을 받을 자격은 있을지 몰라도 존경받을 자격은 절대로 없다고 본다. 이게 냉정한 현실이다.

나는 지금 자학하고 있는 게 아니다. 야권 통합과 그를 통한 정권 탈환을 위해 우리가 직시하고 인정해야만 하는 현실을 말하려는 거다.

 

“개혁과 진보를 이루고자 한다면 유능하고 도덕적인 누군가가 우리를 이끌어야 하며, 개혁과 진보의 주체세력 또한 그 지도자에게 꿀리지 않을 만큼 완벽한 원칙과 상식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나는 이 명제가 언제부터, 누구에게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명제야말로 끊임없이 되풀이되며 우리에게 강요되어 우리를 필요 이상으로 구차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자학이었다. 그리고 이 명제야말로 안철수가 뜨고, 심심할 때마다 민주당이 개혁진영의 샌드백이 되는 논리의 유력한 근거이기도 하다.

 

나는 안철수 현상을 비판하고 민주당을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다. 선거라는 선택의 순간마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약타령’과 약에 대한 맹신으로 야기되는 엽기적인 인육캡슐 마케팅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할 당위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좋은 약이 완벽하게 효과를 발휘하려면 환자의 상태와 환자를 둘러싼 환경도 약에 어울려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우리네 공동체 한복판에 조중동과 한나라당이라는 썩어 문드러진 농양에서 나는 악취가 진동하는데 과연 ‘안철수 향수’로 그 모든 것을 지워버릴 수 있을까?

 

나는 국민이 깨어나야 하고 조직화 되어야 한다는 아름다운 이상론을 주장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개혁과 진보를 위해, 대한민국 정치를 치료하기 위해 출발의 중요한 전제조건으로 현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는 거다.

 

대한민국 국민 정서의 핵심 동력은 탐욕과 이기심이다. 아니, 이것은 세상 모든 공동체의 공통적인 현상일지도 모른다.

다만, 탐욕과 이기심을 견제하는 장치들, 이를테면 양심과 측은지심, 염치, 이념 등 무형의 제어요소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등 유형의 통제요소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작동하는지 여부가 공동체의 건강성을 담보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과연 이러한 견제장치들이 온전히, 아니 최소한의 수준으로라도 기능하고 있을까?

 

그러나 개혁과 진보를 이야기하는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하는 탐욕과 이기심이라는 핵심 동력을 모르쇠 한다.

인정하지 않으니 대책이 있을 수 없다. 설치류 모리배의 무능함과 부패함을 끝없이 질타해도 정권이 무너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이다.

개혁과 진보의 종결자, 원칙과 상식 덩어리의 원조라고 주장하시는 정치세력의 지지율이 종편방송 시청률처럼 나오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명박이 국민 왕따가 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들이 부패하다는 진실의 힘 때문이 아니다. 더 이상 탐욕과 이기심의 충족을 그에게서 기대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영남패권주의와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잉태된 지역기반 정치세력의 공고함도 탐욕과 이기심에 버금가는 동력을 지닌 한국정치의 분명한 현실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민주당이 호남에서 압도적으로 지지받는 이유는 민주당이 ‘본좌’ 개혁과 진보이기 때문은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원칙과 상식으로 무장했다는’ 정치세력들은 끊임없이 썩은 민주당을 버리라며 호남에게 지지를 강요한다.

똑같은 원칙과 상식이 영남에서 왕따 당하는 현실은 모르쇠 한 채로. 역시 있는 현상을 인정하지 않으며, 모르쇠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아이러니한 블랙코미디이다.

 

탐욕과 이기심 그리고 영남패권주의와 반영남패권주의는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는 우리 정치현실의 병적 징후이다.

그리고 국민 대다수는 희대의 독재자 박정희를 최고의 대통령으로 추앙한다. 나는 그런 대한민국 국민들께옵서 왜 카다피나 후세인의 최후를 애도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들은 2012년 대한민국에서 반한나라당 진영 앞에 엄연히 존재하는 혹독한 현실이다.

 

한나라당은 소탕해야 하고 설치류는 박멸되어야 한다. 왜?

산악인이 산에 가는 이유, 학생이 학교에 가는 이유와 같다. 그 미션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개혁과 진보, 원칙과 상식의 당위성을 나는 부정하지 않는다. 아니, 그 당위성에 더 큰 추진력을 주기 위해서라도 탐욕과 이기심, 지역주의라는 치명적 현실을 대책 없이 때려 고치자고 어설프게 덤빌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이용해야 한다.

 

사람들이 한나라당을 혐오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나는 그 다양한 이유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다양한 이유를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맞춰 왜곡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단지 우리 동네 집값 떨어져 한나라당을 싫어하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그저 경상도 패거리가 다 해먹는 꼬라지 보기 싫은 사람들에게, 원칙과 상식을, 개혁과 진보를 이야기하며 오로지 자신의 정파만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당신이 지지하는 다른 모든 정치세력은 모두 한나라당과 똑같은 패거리라는 식의 논리는 결국 인육캡슐 마케팅 프로세스와 다를 바 없는 정치적 기만극이다.

 

반한나라당 정서를 공통분모로 하는 우리는 왜 분열했으며, 또 여전히 분열의 파열음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그것은 반한나라당 정서의 과실을 내가 독차지해야 한다는 정치세력들의 탐욕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단적인 예를 든다면 반한나라당 정서가 가장 강한 호남의 정치적 지지는 민주당으로 수렴된다.

문제는 이 현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여 이용하느냐를 고민할 때, 그것이 한나라당을 소탕하는데 도움이 되느냐 마느냐의 관점에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 정파의 이해득실의 척도로 판단한다.

그런 논리에서 본다면 영남의 한나라당 지지나 호남의 민주당 지지나 똑같이 원칙과 상식에 어긋나는 병리현상이 된다.

왜? 원칙과 상식 덩어리인 나를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한나라당은 반드시 소탕되어야 하고, 설치류는 기필코 박멸해야 한다. 나는 그 실현이야말로 세상에 양심이 살아있음을 간증하는 단초라고 믿는다. 나는 그 실현이야말로 내가 살아 숨 쉬며 머물다 갈 우리의 역사가 발전한다는 증명의 제1막 1장이라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위대한 영웅과 그에 어울리는 조력자가 전부는 아니다. 마치 인육캡슐이 불로장생을 가져다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우리는 우리가 얼마큼 아프고 병들었는가를 제대로 가늠해야 한다.

적들이 우왕좌왕하며 비틀거린다고 해서 우리가 슈퍼맨이 된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초등학생에게 대학원생이나 이해할 수 있는 작전 매뉴얼을 들이대며, 이대로 하지 않으면 깨진다고 겁박해왔던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내과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