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볼륨을 높여라

道雨 2012. 1. 16. 16:17

 

 

 

                                   볼륨을 높여라 
         

 

2011년 마지막 날, 대전 처가에 갔다. 뇌졸중을 앓는 장인과 병수발을 드느라 고생인 장모를 뵈러. 자정 무렵 3대가 모여 작은 케이크를 가운데 두고, 덕담을 나눴다.

‘제야의 종’ 타종 시각이다.

 

어~, 이상하다.

서울 종로 보신각 타종식 중계 채널을 찾기가 어렵다. SBS는 중계를 하지 않았다.

문화방송은 보신각이 아닌 임진각을 연결했다. 타종 순간 “나 도지사 김문순데”의 그 김문수 경기지사 인터뷰가 나왔다.

한국방송만 보신각을 연결했다. 그런데 아나운서 멘트만 나올 뿐 현장음이 들리지 않았다. 10만 명 남짓한 시민이 종로 거리를 메웠다는데, 카메라는 멀리서 부감으로 잠시 비출 뿐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인터뷰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와 ‘희망과 기적의 아이콘’ 프로축구 선수 신영록 등이 타종 인사로 참여했다는 안내도 없다.

 

벙어리 방송이다.

지상파 방송 3사는 그렇게 보신각 타종식을 외면했다.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반MB 시민시장’ 박원순을 부각하고 싶지 않았겠지.

거리를 메운 시민들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날치기 무효’ 등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지 않았겠지.

 

한국방송은 2008년 ‘제야의 종’ 타종식 생방송 때 촛불집회 현장음을 지우고 내보낸 노하우를 이번에도 적극 활용했다.

 

한국방송의 한 간부는 “FTA 시위를 중계하는 건 사회불안 노출”이란다.

‘사회불안’을 감추는 게 방송의 임무인가.

하여튼, ‘MB 시대’ 지상파 방송 3사는 시청자인 시민들을 두려워하는 게 확실하다. ‘시민울렁증’이라고 할 만하다.

공공성을 생명으로 하는 지상파 방송의 미래에 불길한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참여하는 시민’을 두려워하는 지상파 3사가 제 밥그릇 챙기기에는 아귀와 다를 게 없다. 염치나 체면 따위는 안중에 없다.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사) 법안 관련 행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방송 3사 보도본부장이 지난해 12월27일 여야 원내대표실을 방문해, 한국방송 방송 수신료 인상 등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방송사 쪽은 단순 의견 개진이라는데, 한나라당 고위 관계자의 고백이 압권이다.

 

“KBS와 MBC가 치는(비판하는) 것은 (여타 언론의 비판과) 다르다. 함포사격이다. 우리는 견딜 수가 없다.”

 

그 때문인지 한나라당은 1월5일 밤 국회 문방위를 열어 미디어렙법과 한국방송 시청료 1천원 인상 문제를 다룰 소위원회 구성안을 기습적으로 단독 처리했다. ‘조·중·동 종편’이 만세를 부를 일이다.

 

방송사들의 행태는 ‘금도’를 넘어섰다.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은 민주통합당 대표 경선 토론회 중계를 ‘거부’했다.

 

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는 “고대영 보도본부장이 ‘민주당이 KBS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폭로했다.

 

‘국민의 방송’을 자임하는 한국방송의 한 간부는 “중계방송 안 봐도 인터넷 보고 다 안다”고도 했다.

포복절도할 존재 부정이다.

‘국민의 알 권리’는 실종됐다.

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가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고 부끄러워하게도 생겼다.

 

 

중국 인민을 각성시켜 일제에 맞서려고 평생 고투한 루쉰이 이런 말을 했다.

“목피도인이 ‘몇 년 동안 집안의 부드러운 칼로 목을 베니 죽음을 느끼지 못했다’라고 잘 말했듯이, 나는 오로지, 자칭 ‘총이 없는 계급’이라고 하지만 실은 부드러운 칼을 들고 있는 요괴들을 질책하려 한다.”

 

지금 이 땅에서 ‘부드러운 칼을 들고 있는 요괴들’은 누구인가?

방송사 구성원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이제훈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