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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문제는 남북관계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한반도의 시계가 다시 흐릿해졌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대북정책이 중요한 이슈라는 데 정치인과 학자들의 이견이 없다. 다만 2010년 6·2 지방선거 이후 ‘안보 변수=여당에 유리’ 공식이 깨졌다. 보수도 변했다. 이명박 행정부는 격론 끝에 제한적 조문을 허용했다. 그러나 변화는 흐릿하다. 국무회의에서 조문은 절대 안 된다는 반론이 격렬하게 나왔다. 한나라당 안팎에서 ‘안보전위대’는 굳건하다. <한겨레21>이 ‘국가보훈처-행정안전부-국방부-극우단체’로 돈과 사람이 오고 가며 안보전위대가 형성되는 과정을 살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좌파 정권’이라고 비판해온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자신이 만든 사조직에 특혜를 준 사실도 드러났다. 안보전위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_편집자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지지도, 않는다. 맥아더 장군과 그 한국의 노병은 달랐다. 특히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밑에서 조용히 사라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2004년 7월14일 북한 경비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왔다. 남한 해군이 그 경비정을 쐈다. 군은 청와대에 “북 경비정이 우리 해군의 교신에 응답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사실이 달랐다. 북쪽이 해군의 경고에 응답한 사실이 드러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철저히 조사하라고 국방장관에게 지시했다. 정보병과에 책임론이 제기됐다. 당시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이던 노병은 마음이 불편했다. 교신 기록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기자에게 건넸다. 국방부가 다시 발칵 뒤집혔다. 노병은 “허위 보고에 대한 책임이 정보병과에 있는 것이 아닌데도 정보병과 잘못으로 흘러가고 있었다”며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 언론을 만났다”고 조사를 맡은 국군기무사령부에 말했다. 노병은, 할 말이 많았다. 군기 문란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1971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며 시작한 박승춘의 군인의 삶은 일단 그렇게 끝났다. 군인은 사라졌다. 박승춘 전 본부장은 강한 의지를 가진 인물로 보인다. 동영상 속의 박 전 본부장은 ‘아’ ‘뭐’ ‘음’ 같은 간투사를 쓰지 않는다. 올해 64살인 박 전 본부장의 문장은 단호하다. 눈, 코, 입은 선이 굵다. 보훈처 홈페이지에서 박 전 본부장은 “시골에서 어려운 형편에서 자라다 보니 ‘무언가 되어야겠다’라는 생각을 갖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육사에 지원한 것도 가난하다 보니 경제적으로라도 어머니의 부담을 좀 덜어드리고자 선택했던 것이고요. …특별히 무언가 되기 위해 꿈꾸는 대신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에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왔다는 박 전 본부장이 택한 것은 정치의 길이었다. 2008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비례대표 공천 신청을 했다. 당시 대중연설을 보면, 그는 자신을 참여정부의 희생양으로 여긴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인 2009년 6월25일 국제외교안보포럼 초청 강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민정당 출신 정치인 김현욱 전 의원이 회장을 맡은 단체였다. “지금 노무현 자살 사건으로 일부 국민이 애도하고 추모하는데,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640만달러 먹은 게 문제가 아닙니다. 한미연합사를 해체하고 우리 안보를 무너뜨린 그 죄는 반드시 밝혀져야 합니다.” 우리 헌법은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5조)며 군부의 중립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확신에 찬 노병에게 중립의 경계는 자주 흐릿했다. 군인의 안보는 휴전선에서 전투를 벌인다. 정치군인 혹은 군인의 정치를 택한 박 전 본부장의 안보 전선은 국회로 옮아갔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쟁점 법안(미디어법, 복면을 금지한 집시법)을 통과시키고 방송을 정상화해서 우리 정책이 국민에게 제대로 전파되도록 만들어야 이명박 정부가 성공할 수 있고, 이명박 정부가 성공해야지만 대한민국이 지켜질 수 있습니다. 2012년 대선에서 잘못되면 여러분 어찌되겠습니까?”(같은 국제외교안보포럼 초청 강연)
2억4927만원 세금, 안보교육에 지출 노병의 안보 전선은 선거 투표소로도 확대됐다. 2010년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사건이 계기였다. 노병의 머릿속에서 과제가 점점 뚜렷해졌다. 박 전 본부장은 2010년 5월 전쟁기념관 안보 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천안함 사건 뒤) 야당과 일부 친북 세력은 북한을 비호하고 이명박 정부의 대북강경 정책이 우리 장병의 희생을 불러온 것처럼 국민을 오도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천안함 사건 이후 이명박 정부와 국민을 이간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입니다. 이런 북의 전략이 6월 지방선거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는지 두고 봐야 합니다.” 두 연설에서 박 전 본부장의 문제의식이 드러난다. ‘전파’라는 단어는 군에서 널리 사용된다. 국민의 의식을 고취할 ‘안보전위대’가 진실을 알리면 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그는 생각한 듯하다. 이후 박 전 본부장의 행보에 ‘안보전위대의 재구성’ 과정이 숨어 있다. 국방부가 안규백 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그는 2010년 8월 국방부에 재단법인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국발협)를 등록시켰다. 국발협은 홈페이지에서 “선진 시민의식과 안보관의 연구·교육·홍보를 통하여 국민들의 국가관과 안보관을 정립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며 국가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밝혔다. ‘안보교육서비스’업 명목으로 사업자등록도 했다. 어떤 조직도 돈과 사람 없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국발협은 재단법인이다. 누군가 재산을 희생해 출연해야 한다. 안규백 의원실 자료를 보면, 박승춘 전 본부장 등 5명이 예금 7500만원을 출연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2월 말 노병을 국가보훈처장에 임명했다. 대신 육사 27기 동기 이상태 전 국방대총장이 국발협 회장직을 물려받았다. 대통령령은 보훈처의 직무로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에 대한 보훈, 참전유공자, 5·18 민주유공자에 대한 예우, 제대군인·고엽제후유의증환자·특수임무수행자의 지원 및 보훈 선양, 그 밖에 법령으로 정하는 보훈에 관한 사무”를 든다. 박승춘 처장은 ‘보훈 선양’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안보산업이 부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12월 국무회의에서 ‘전 국민 안보의식 강화’를 지시했다. 행안부의 지시에 따라 전국의 기초·광역 지자체에서 민방위 안보교육이 일제히 부활했다. 참여정부 때부터 2010년까지 거의 모든 지자체에서 민방위 안보교육을 동영상 상영으로 진행해왔다. <한겨레21>이 전국 기초·광역 자치단체에 정보공개를 청구한 결과, 2011년에만 전국 지자체에서 2억4927만원의 세금이 안보교육에 지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도는 2011년 안보교육 강사비만으로 1억3072만원을 지출했다. 광주서구청의 안보교육 지출은 2010년 230만원에서 2011년 1890만원으로 뛰었다.
자기가 만든 단체에 특혜를 주고 보훈처와 행안부가 이 과정에서 지자체에 안보교육 강사로 국발협 강사를 추천하는 등 특혜를 준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북부보훈지청은 지난해 7월 관할 지자체에 ‘민방위대원 대상 나라사랑 정신함양 교육특강 협조요청’ 공문을 보내 안보강연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동시에 북부보훈지청은 국발협과 한국자유총연맹 소속 강사를 우수 강사로 추천해줬다. 전국적으로 다른 보훈처 지청에서도 관할 지자체에 같은 요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승춘 보훈처장이 자기가 만든 단체에 특혜를 준 셈이다. 행안부와 국방부도 특혜를 줬다. 행안부는 지난해 2월27일 전국 지자체에 ‘전 공직자 및 국민 안보교육용 표준 안보영상물 및 우수 안보강사 풀 통보’ 공문을 보냈다. 생긴 지 6개월밖에 안 된 국발협 강사가 우수 안보강사에 포함됐다. 강사 명단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행안부는 거부했다. 지난해 2월25일 국방부는 국발협에 예비군 안보교육을 맡긴다는 ‘예비군 안보교육 강사 운영 협약서’를 체결했다. 안규백 의원실 자료를 보면, 국발협 강사 73명이 지난해 3~11월 군부대에서 모두 1323회의 안보강연을 했다. 강원도의 한 기초자치단체 민방위교육 담당자는 “군청에 출입하는 국정원 직원이 (국발협을) 소개해줬다”고 말했다. 강사 이름을 밝힌 일부 지자체 자료를 종합하면, 국발협은 퇴역 군인, 퇴직 관료, 탈북자 등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인다.
곳곳에서 잡음이 들렸다. 지난해 6월 충남 천안시의 시민은 민방위 안보교육에 관해 <한겨레>에 제보했다. “국발협이라는 단체 소속의 강사가 나와서 정신교육을 시키는 것이 이번 소집교육의 핵심이었다. …강사는 현 정부에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극우의 논지와 천안함 사태 때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 효순·미선양 죽음을 계기로 국민문화로 자리잡고 광우병 소 파문으로 틀을 잡아간 촛불문화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종북세력으로 재단하는 오만함을 보여줬다. 급기야 배우 문성근씨가 주도하고 있는 ‘국민의 명령 100만 민란운동’이 실제로 민란을 일으키려는 세력이며 우리 사회를 불안에 빠뜨리려는 간첩세력이라고 주장했다.”(<한겨레> 2011년 6월30일치)
‘자율정예민방위대’는 여권 선거조직 전환? 안보전위대를 구성하는 돈과 사람은 자꾸 꼬리를 문다. 맹형규 행안부 장관은 2010년 12월 ‘자율정예민방위대’ 창설을 지시했다. 소방방재청은 “관 주도의 수습·복구 시스템으로 피해 최소화가 한계에 봉착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민방위 사태시 사태 수습을 위한 구조·복구”가 이들의 임무다. 봉사정신이 투철하고 정당활동을 하지않는 지역 명망가로부터 자발적 지원을 받아 구성하겠다고 당시 소방방재청은 설명했다. 2012년 3240명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소방방재청은 2011년 교육예산 6억4944만원도 책정했다. 그러나 2012년 선거를 위한 여권의 선거조직으로 활용되리라는 우려가 나온다. 취지와 달리 안보교육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2박3일에 걸쳐 18시간 동안 교육이 진행된다. 이 중 안보강연(3시간), 천안함 등 안보 현장 견학(8시간) 등이 11시간이다. 국발협 소속의 강사 2명이 안보강연을 맡는다. 소방방재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10∼12월 모두 860명이 자율정예민방위대 교육을 받았다. 소방방재청의 기대와 달리, 지역과 나이가 편중됐다. 경기도(138명), 경북(108명), 경남(79), 부산(73명) 출신 교육생이 많았다. 절반을 넘는 472명이 60대 이상이었다. 남성이 절반을 넘었다. 박승춘 처장은 국제외교안보포럼에서 자주 연설했다. 이 단체는 행안부의 2011년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사업 대상에 선정돼 돈을 받았다. 이처럼 군 출신이 대표자이거나 국방부에 등록된 안보단체 여러곳이 행안부 지원금을 타갔다. ‘보훈처-국발협-행안부-국방부 등록 극우단체-국방부’로 구성된 안보전위대에 세금이 흘러갔다. 노병의 오랜 꿈은 이뤄진걸까? 박승춘 처장은 지난 1월4일 새해 업무보고 관련 보도자료를 통해 “2040 세대를 중심으로 햇볕정책과 남북화해가 현 정부의 원칙 있는 대북정책 및 한-미 동맹 강화보다 안보에 유리하다고 잘못 인식”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박주선 민주통합당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어 박 처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오늘도 쉬지 않는 안보전위대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이후 대북관계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유연하게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신종대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여당은 관습대로 천안함 위기 때 안보 변수를 부각시켰는데 (6·2 지방선거에서) 역풍을 맞았다”며 “그걸 분명히 새기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2012년 총·대선에서) 그와 같은 동원은 안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보수의 진짜 변화는 아직 흐릿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민간 조문단을 규제했다. 국무회의에서는 격론이 벌어졌다. 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조문에 반대했다. 대북관계를 유연하게 바꾸겠다는 이명박 대통령 아래서, 지금도 자율정예민방위대 교육생들이 입교하고 있다. 대상을 가리지 않는 안보교육은 여전히 이어진다. 노병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안보전위대는 오늘도 쉬지 않는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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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를 같이 힘차게 부르니까 배가 울렁거립니다. 우리들 마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노인은 잠시 숨을 골랐다. 크리스마스이브인 2011년 12월24일 오전 10시30분 한강의 바람이 뱃전을 때렸다. 뚝섬유원지 방생법당이 흔들거렸다. 수상 법당이다. 90여 명의 불교 신자들은 노인의 입을 바라봤다.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대불총)이 주최한 송년법회에 참석한 신자들 앞에서 노인은 말을 이었다. “지난 19일 점심때 김정일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나 기쁜지… 이북에서 300만 명을 굶어죽인 원흉이 죽은 건데 우리나라는 그놈의 조문 때문에… 이북에서 남남 갈등을 조장하는 이런 징후를 보면서 ‘죽고 난 다음에도 우리나라를 괴롭히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전두환의 오른팔, 박희도의 활약 한국 현대사에 눈 밝은 사람이 아니라면 노인의 얼굴이나 대구 말투에서 ‘박희도’라는 이름을 떠올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대불총 박희도 회장은 1979년 12·12 쿠데타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다. 당시 공수여단장으로 정승화 참모총장을 체포했다. 1987년에는 “(그해 12월 대선에서) 김대중이 대통령이 된다면 수류탄을 들고 뛰어들고 싶다”고 말했다. 노병은 잘 사라지지 않는다. 올해 77살의 박희도 회장도 그렇다. 대불총은 법률에 따라 등록된 비영리 민간단체다. 행정안전부는 2010년 대불총 사업에 3500만원을 지원했다. 대불총은 “친북세력으로부터 오염된 역사관을 치유”할 것을 사업목적으로 밝혔다. 행안부 지원금은 ‘화려한 사기극의 5·18’ 등 민주화운동을 비판하는 강연 등에 사용됐다.
안보전위대가 지원금을 줄 안보전위대를 선정한 사실도 눈에 띄었다. ‘안보전위대 매트릭스’로 부를 만하다. 국제외교안보포럼, 뉴라이트전국연합,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 한국자유총연맹의 간부가 2009년 4월~2011년 4월 비영리 민간단체 선정 작업에 참여했다. 민정당 출신 정치인 김현욱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국제외교안보포럼 대표다. 국제외교안보포럼은 2011년 지원금을 받았다. 뉴라이트전국연합 김진홍 상임의장은 2010년 민생경제정책연구소 대표 자격으로 사업지원금을 받았다. 박세환 재향군인회장이 대표인 ‘자유대한지키기국민운동본부’와 그가 최근까지 의장직을 맡았던 ‘국가정체성회복국민협의회’ 모두 2011년 세금을 지원금으로 타냈다.
동일 인물, 중복 지원, 중립성 논란 한나라당, 신한국당, 자민련 등 보수 정당에서 활동했던 인물이 관여한 단체 11곳도 지원 대상에 선정됐다. 비영리 민간단체는 법률에 “영리가 아닌 공익활동을 수행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민간단체”(비영리 민간단체 지원법)로 정의된다. 사실상 특정정당 또는 선출직 후보를 지지·지원할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지 말 것, 최근 1년 이상 공익활동 실적이 있을 것 등 규제 조항이 따른다. 이들 단체 대표자들의 이력을 보면, 이들 단체가 실체가 있는 민간단체인지 의혹을 사게 한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의 아들 병역 의혹에 연루됐던 여춘욱 전 병무청장은 2011년 ‘환경문화연대’ 단체 대표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 ‘전국자전거길잇기국민연합’ 이상원 대표는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을 지냈다. 이 단체는 2010년 설립돼 실적도 없었다. 그는 최근 형사처벌을 받은 부산저축은행 불법 대출 과정에서 돈세탁 창구 구실을 한 ㅇ회사의 사외이사도 지냈다. 이 때문에 행안부의 지원단체 선정이 부실하게 이뤄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런 비판을 살 만한 정황이 더 눈에 띈다. 동일 인물이 단체 이름만 바꿔 지원금을 받기도 했다. 녹색미래실천연합(김대희), 녹색환경포럼(김시약), 전국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연합회(이재윤),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백낙환), 한국화장실협회(김종해) 등 10개 단체의 대표자들은 2010년과 2011년 각각 다른 단체 사업 명목으로 연이어 지원금을 받았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드러난 빙산의 일각 행안부의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사업은 김영삼 정부 때 시작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지원 대상과 금액이 조금씩 줄었으나, 이명박 정부는 2011년 220개 단체에 98억7천만원을 지원키로 결정하며 대상과 액수를 크게 늘렸다. 2010년엔 146개 단체가 지원금을 받았다. 이명박 행정부가 세금으로 ‘백색전위대’를 기른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겨레21> 분석 결과,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한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 임원 271명 중 37명이 행안부에서 돈을 받은 단체 대표나 간부였음이 드러났다. 최규식 민주당 의원은 2011년 국정감사 때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사업의) 공정성·투명성·적실성 제고를 위한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백색전위대를 세금으로 기르는 것은 옳지 않다는 취지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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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혜영 민주통합당 의원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2011년 9월20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실에 긴장감이 돌았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이상직 사무처장의 표정은 덤덤했다. 민주평통은 ‘통일에 관한 국내외 여론 수렴’과 ‘통일에 관한 국민적 합의 도출’을 목표로 한다. 헌법기관이다. 당시 국회 회의록을 보면 긴장감의 이유가 보인다.
원혜영 의원(이하 원) 민주평통 사무처장님께 좀 묻겠습니다. ‘자유주의진보연합’이라는 데서 발행한 <대한민국 이전 & 이후 대한민국>이라는 책을 민주평통의 지역별 협의회 출범회의에 대량 배포를 했지요? 이상직 처장(이하 이) 대량 배포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 500부는 대량이 아니다? 이 예. 원 알겠어요. 지난해 민주평통이 국감을 두 번 받은 것 알고 계시지요? 이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원 그것도 모르세요? 이 올해 3월에 제가 취임을 했기 때문에…. 원 그러니까 그 전의 것은 전혀 관심이 없어요? 국감을 준비하면서 작년 국감에서 민주평통에 어떤 일이 있었나 그것도 안 보고 왔어요? (중략) ‘중국은 국익을 위해서 한반도 갈등을 이용하는 비도덕 국가다’ 이런 걸 홈페이지에 턱 올려놔서 중국 공산당 기관지 <환구시보>가 비판하고 국제적인 문제가 됐습니다. 여기 이 책에는 ‘제주 4·3 폭동’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제주 4·3특별법이 규정한 바와 전혀 상관없이 쓰고 있고, 심지어 ‘좌우합작운동은 실은 친공 성향의 리버럴한 관료들이 장악하고 있던 미 국무부의 원격조종 아래 미군정이 기획, 연출한 것이다’, 미 국무부, 미군정 자체가 친공 성향이다, 메커니즘에 뺨치는 이런 주장이 공공연하게 여기 담겨 있어요. 이런 것을 민주평통이, 대통령 자문기관인 민주평통이 공식적으로 배포했어요. 홈페이지에 실었어요. 이 짓을 하고 있으니까 ‘권력의 사유화’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 아닙니까? (중략) 적어도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 자문기구의 책임자로서 맞춰 생각하고 행동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개인이 극우·보수 생각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적어도 민주평통의 사무처장으로 이런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이 왜곡성의 문제가 있으면 체크해보고 시정 조치하겠습니다.
학교, 관공서 등으로 퍼진 안보강연 대구 출신으로 영남대를 나온 이상직 처장의 말투는 담담했다. 이 처장의 무성의한 답변을 한나라당 의원도 비판했다. 이 처장은 ‘왕차관’으로 불리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선진국민연대에서 함께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이 이를 물었다. 이 처장은 박 전 차관과의 관계를 부정하다 뒤늦게 “친구로 대화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민주평통이 국회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회원 수를 늘린 것에도 의혹이 제기됐다. 홍정욱 한나라당 의원은 “(회원을 늘리는 게)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당 만드시는 거예요, 사조직 만드시는 거예요? (회원을) 줄이라고 국회에서 그러는데 2천 명씩 늘리십니까?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라고 이 처장을 추궁했다. 헌법기관인 민주평통이 백색전위대로 변질됐다는 게 원 의원의 취지다. 민주평통의 인적 구성을 보면 의혹에 근거가 있다. 김현욱 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신한국당과 자민련 국회의원을 지냈다. 1939년생인 김 전 의원은 1981년 민정당 국회의원으로 정치 생활을 시작했다. 김 부의장은 동시에 ‘국제외교안보포럼’ 대표다. 박승춘 보훈처장 같은 정치군인들도 자주 이 단체의 모임에서 발언한다. 행정안전부는 이 단체에 2011년 국민 세금에서 지원금을 줬다. 정치적 중립을 요구받는 조직인 민주평통과 극우단체가 보수 정치인을 교집합으로 갖고 있다. 백색전위대의 돈과 사람은 이런 방식으로 꼬리를 문다. 이런 현상을 원 의원은 ‘권력의 사유화’로 표현했다. 2011년 부활한 안보산업이 돈과 사람이 도는 핏줄 역할을 한다. 안보강연은 예비군과 민방위를 넘어 학교, 공공기관에서 일제히 실시됐다. 안동보훈지청에서 경일고등학교 3학년 학생을 상대로 2011년 11월22일 ‘나라사랑 정신 함양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안보강연을 했다고 이 학교는 홈페이지에서 밝혔다. 고3 수험생 174명 전원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국발협) 강사인 김태경씨가 ‘최근의 한반도 안보 현실’을 주제로 강의했다. 경일고 쪽은 “본교의 3학년 수험생들은 심도 있는 국가안보 관념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도움이 한층 되었다는 강연 후평을 남기기도 했다”고 밝혔다. <뉴시스>를 보면, 서울 성북소방서는 2011년 1월20일 주민으로 구성된 의용소방대원을 대상으로 안보강연을 했다.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와 우리의 안보 현실’이라는 주제로 국발협 강사가 안보교육을 했다. <경인일보>를 보면, 수원보훈지청은 장안고등학교 1·2학년 학생을 상대로 안보강연을 했다. ‘노박사 웃음치료 연구소’ 소장으로 알려진 노용균씨가 ‘영광의 대한민국과 국가안보의 중요성’에 대해 강연했다. 그 역시 국발협 소속 강사다.
모호한 재산 출연, 풍부한 자금? 국발협 설립 때 누가 재산을 출연했는지는 불분명하다. 국발협은 <한겨레21>에 “예비역 장성들이 주축이 돼 설립한 비영리 재단법인이며, 각계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고만 밝혔다. 어쨌든 자금은 풍부해 보인다. 국발협 강원지회는 자비를 들여 안보강연에 나섰다. 강원도 인제군은 강사비와 관련해 “지자체가 여력이 없어 (안보강연료) 13만원은 (국발협이) 부담하고, 나머지 7만원은 지자체가 줬다”고 밝혔다. 민방위 담당 공무원들조차 국발협의 실체에 의혹을 제기했다. 수도권의 한 기초지자체 공무원은 “(국발협을) 가만히 봤더니 장군으로 예편하신 분이 많은 것 같았다. 그런데 지자체 처지에서 안 할 수도 없었다. 이왕이면 탈북자 출신 강사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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