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상처를 직시하는 일

道雨 2012. 1. 16. 17:31

 

 

 

                 상처를 직시하는 일 
         
» 일러스트 이강훈

 

지난달 초 독일 베를린에서는 반나치 시위가 대대적으로 열렸다.

 

최근, 수년 전의 외국인에 대한 의문의 방화·살인 사건이 실은 신나치주의자들의 소행임이 밝혀진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나치즘을 반대하고 있다. 특히 베를린에서는 나치당이 발을 붙이지 못한다.

베를린 시내 곳곳에는 나치 시대의 참혹함과 상처를 기억하려는 기념물과 기념관이 있고, 텔레비전에서는 거의 날마다이다시피 역사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다. 그 대부분은 독일의 상처의 역사에 관한 것이다. 독일이 다른 나라 혹은 독일인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입힌 상처들.

 

베를린 시내를 걷다 보면 보도블록 위에 글자가 새겨진 노란 동판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나치 시절에 그 거리에 살던 사람들의 이름과 생년월일과 어디서 어떻게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가에 관한 것이다. 대부분이 작센하우젠 혹은 아우슈비츠에서 숨을 거둔 이들이다.

그러니까 그 거리, 그 집에서 살다 나치의 광기에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이들을 기억하는 동판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오늘도 그렇게 숨진 사람들을 독일인들은 찾아나선다. 며칠 전에도 텔레비전에서 바로 이 집에서 살던 사람이 그때 그렇게 숨을 거두었노라고, 그래서 우리는 그를 기억해야만 한다고 동판을 ‘심는’ 작업을 하며 눈물 흘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춰주고 있었다.

 

 

‘우리’라는 말이 불편한 사람들

나치 시절의 상처가 너무나 깊었던 탓일까. 이곳 사람들은 ‘우리나라’ ‘우리 민족’이란 말을 쓰기를 꺼리고 불편해하는 것 같았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한 아이가 무심코 나치 문장 비슷한 것을 책에 그렸다고 교사가 그 책을 다른 책으로 바꿔주는 일도 있었다.

 

어쨌든 독일인들이 자신의 역사(그것이 영광의 역사가 아닌데도)를 기억하고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일견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우리나라, 우리 민족을 전혀 들먹이지 않으면서도, 말하자면 굳이 ‘국격’을 입에 올리지 않으면서도 독일이라는 나라와 그 사람들이 참으로 격조 있고 품위 있다는 느낌을 절로 갖게 한다.

 

우리는 어떤가.

정부가 나서서 4·19와 5·18을 역사 교과서에 싣지 않으려는 시도를 했다가 반발이 일자 슬며시 싣기로 했다고 한다.

역사란 것이 기록하지 않는다고 지워지겠는가. 그것이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 아닌가.

학자들이 이 정부를 규정한 말 그대로 엄이도종(掩耳盜鐘),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고 종소리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놓고 대통령을 비롯한(그러고 보니 이명박 대통령은 5·18 기념식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 정부 관리들은 별스럽게 ‘국격’을 입에 올리기 좋아한다.

무엇보다 이 정부 들어 텔레비전에서는 별스럽게 ‘우리나라, 대한민국’ 식의 이른바 ‘공익광고협의회’라는 곳에서 만든 광고가 시도 때도 없이 방송된다. 심지어 기업체 광고에서도 애국심을 건드리는 언설이 넘쳐난다.

 

자신들의 역사를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려 드는 지극히 유아적인 태도를 지니고서 백날 우리나라 좋은 나라를 외쳐본들 실로 우스울 뿐인 것을.

자신에게는 자신이 좋아하는 모습도 있고 싫어하는 모습도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모습만 자기라고 우기고 싶은들, 싫어하는 모습이 없어질 리 없다.

없어지기를 원한다면 자신이 싫어하는 모습을 철저히 들여다보고 기억해야만 그 모습을 개선시킬 수 있다.

 

 

역사의식 있는 후보가 선출되길

 

독일의 텔레비전에서 날이면 날마다 방영되는 역사 다큐멘터리들은 너무나 진지하다. 나치 시절과 분단 시절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독일의 역사를 다룬 예술물들은 정말 세련되었다.

한국인들도 많이 본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2차 대전 때 폭격으로 부서진 카이저빌헬름 교회를 부서진 그대로 보존하는 모습에서 독일인들이 얼마나 자신의 역사를 정직하게 바라보고 기억하려고 하는지가 엿보인다.

 

새해에는 선거가 두 번 있다.

나는 돈 많이 벌게 해주겠다는 후보보다 역사의식을 가진 정말로 품격 있는 사람이 입후보하고 그런 사람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신의 지도자로 뽑기를 간절히 바란다.

 

 

[ 공선옥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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