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노조의 끝장파업, '부끄러움'과의 끝장투쟁이다
[창비주간논평] 시민들도 외면할 수 없는 이유
"MBC는 맨날 파업만 하느냐는 핀잔을 수없이 들어야 했던 지난 5년은 참으로 부끄러운 시간이었습니다. 'MBC가 변했다, MB의 방송이 돼버렸다'며 욕하는 시민들 앞에서 부끄러웠고 '현장에서 투쟁하자'며 힘겹게 파업을 접고 복귀한 뒤 정작 그러지 못했던 스스로와 동료, 선후배들 앞에서 또 부끄러웠습니다. 지금 우리의 싸움은 그 오랜 시간 억지로 외면하고 억눌러왔던 부끄러움과의 싸움입니다. 망가져가는 뉴스와 조직을 붙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우리도 괴롭다고 애써 변명해왔던 시간에 대한 반성입니다."
MBC 5년차 여기자의 말이다. '부끄러움과의 싸움', 아마 이 말처럼 MBC 파업의 성격을 잘 드러내주는 말도 없을 것 같다. 벌써 4주째로 접어든 MBC노조의 파업은 바로 이 부끄러움에서부터 시작됐다. 기자로서, PD로서, 또 공영방송의 종사자로서 최소한의 기본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 정권이 교체되고 언론환경이 바뀌어 설령 본래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온다고 하더라도 이대로는 공영방송 종사자로서 일말의 도덕적 자긍심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절박함이 MBC노조가 '끝장투쟁'이라는 물러설 수 없는 배수진을 치고 나선 배경일 것이다.
▲총파업에 돌입한 MBC 노조가 30일 오전 10시 30분 출범식을 갖고 있다. ⓒ뉴시스 |
이것은 부끄러움과의 '끝장투쟁'이다
'권력의 힘이 빠지는 임기말이 돼서야 나서느냐'는 냉소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MBC 파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예전만 못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동안 MBC 사람들이 시류에 순응했던 것만은 아니다. 이 정권 들어와서 MBC노조가 파업을 한 것만도 이번까지 다섯차례다. 기자들이 제작거부에 나선 것도 두번째다. 나름 치열하게 저항하고 싸워온 셈이다.
그러나 MBC가 'MB씨 방송'으로 망가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그 속도를 줄이지도 못했다. 87년 민주화 이후 어렵사리 쌓아왔다고 믿었던 내부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치명적인 허약성이 드러난 것이다. 정권 초기 정연주 전 사장의 축출과 함께 권력에 넘어간 KBS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KBS나 MBC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이명박정권 4년 동안의 역주행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고스란히 드러내주었다. 인권위원회나 방송통신위원회 등 거의 모든 공적 기구는 말 그대로 삽시간에 권력의 도구로 재편됐다. 정치는 실종됐고 야당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권력의 독주와 남용을 제어하기 위한 한국사회의 공적 제도와 시스템은 무기력했다.
제도와 시스템만으로는 최소한의 형식적 민주주의조차 담보할 수 없다는 뼈아픈 교훈과 각성을 얻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 온 데에는 '영혼 없는' 혹은 '영혼을 판' 공직자, 지식인, 언론인의 책임이 무엇보다 크다. MBC 기자들의 제작거부와 노조 파업 역시 그런 각성과 자성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MBC노조는 '큰집에서 조인트' 까이고 권력의 '청소부 역할'을 맡은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한마디로 '전부' 아니면 '전무'의 요구다. 접점을 찾을 수 없는 싸움이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김재철 사장이 순순히 물러날 리 없다. 계약 기자와 PD, 작가들로 구멍난 뉴스를 메우고, 명예훼손으로 노조위원장을 고소하는 등 강공을 펴고 있다.
방송장악의 총사령탑이었던 최시중씨가 방통위원장에서 물러났고 2월말 주총이 열린다지만, 방통위나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가 어떤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기약없는 싸움이다. 무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그 길밖에 없다. 온전히 MBC 사람들이 '끝'까지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MBC 5년차 여기자의 말처럼 "완전히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더이상 희망이 없"고 "이번 싸움이 그간의 부끄러운 세월을 끝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방송 바라는 시민의 열망에 부응하길
사실 어떻게든 질 수 없는 싸움이다. MBC 보도국 보직부장 3명이 파업대열에 합류한 것만 봐도 이미 승패는 갈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KBS 기자와 PD 들도 제작거부를 선언했다. KBS노조 파업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민심도 그것을 예고하고 있다. '나는 꼼수다'에 대한 젊은 세대의 열광적 환호, 해직언론인들이 대안뉴스로 만든 '뉴스타파'나 MBC 파업 기자들이 제작한 '제대로 뉴스데스크'에 대한 뜨거운 반응은 좌고우면하지 않는 권력 비판, 제대로 된 뉴스, 기본을 하는 방송에 대한 시민의 열망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반면 MBC나 KBS 뉴스에 대한 시청자들의 차가운 반응은 권력의 방송장악이 결국 빈껍데기만 남았음을 웅변해주고 있다.
MBC와 KBS 노조의 이번 싸움은 4년에 걸친 이 정권의 방송장악 기도에 대한 종결판이 될 것이다. 나아가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와 그 방식을 공영방송 종사자들이 스스로 개척해갈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엄중한 시험대이기도 하다. 조·중·동을 비롯한 다수의 '보도기관'이 시민의 대변자임을 포기하고 권력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괜찮은 공영방송의 존재는 한국사회의 생명수 같은 존재다. MBC와 KBS 사람들의 이번 '끝장투쟁'에 우리 시민들 또한 초연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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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노조 "정권 위해 부역질하지 않을 것"
"김재철 사장, 법인카드로 숙박비 1000만 원 결제"
이명박 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방송장악에 집중했다. 낙하산 사장을 임명하고, 정부 주도의 프로그램을 신설하는 등 방송사 고유 권한인 인사와 편성에 꾸준히 개입했다. 결국 정권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현재, 방송계의 반격이 시작됐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 취임 4주기 기자회견이 있던 22일은 방송계가 겨울 외투를 벗고 기지개를 켠 하루였다.
"정권 위해 부역질하지 않을 것"
▲ 22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 김재철 사장이 참석한다는 소식에 MBC 노조 100여 명이 모였다. ⓒ프레시안(이명선)
MBC 노조가 "MBC가 망가졌다"며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에 '김재철 사장 해임'과 '방문진 해체'를 요구했다.
22일 김재철 사장이 방문진 이사회에 참석한다는 소식에 MBC 노조 100여 명은 방문진 건물 밖에서 항의 집회를 갖고, "김재철을 가만두는 방문진은 해체하라"라고 외쳤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 정영하 본부장은 "김재철 체제가 바뀌지 않는다면,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며 "광장으로 나가겠다. 몸으로 보여주겠다. 정권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본부장은 이어 "지금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라며 "정권을 조금이라도 보호하고 싶다면 (방문진은) 김재철 사장을 해임시켜라"라고 주문했다.
그는 또 "(MBC 파업은) 있는 사실 그대로를 보도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며 공정방송의 의미를 강조했다. 특히 "반(反) MB 정서의 불쏘시개가 되진 않을 것"이라며 "특정 정권의 재집권을 위해 결코 부역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방문진 이사도 "김재철 자진 사퇴하라"
9명의 방문진 이사 중 고진, 정상모, 한상혁 3명은 이날 이사회에 '김재철 사장 자진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이들은 "지난 2년 MBC는 김재철 사장의 즉흥적이고 무원칙한 경영행태로 몸살을 앓았다"며 MBC 파업에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이사회에서 정상모 이사는 "이것은(김 사장의 일련의 행태는) 80년대식 공안 사장의 행위"라며 "김재철 사장이 공정방송을 위한 노력을 하기는커녕 처벌 위주의 방침만을 밝히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 편파방송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한상혁 이사도 "김재철 사장이 퇴진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조속한 시일 내에 정식으로 '사장 해임안'을 제출해 논의 후 처리할 예정"이라며 김재철 사장 자진 사퇴를 압박했다.
반면, 김광동 이사는 "방문진은 인사기관이기 때문에 '해임안'을 의결하면 했지 사퇴 촉구를 결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다음 이사회에서 '해임안'이 제출되면 제출 사유를 보고 (해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방문진 이사회는 애초 김 사장에게 지난달 30일부터 시작된 MBC 노조 파업 경과와 대체방안 등을 보고받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김 사장은 '노조와의 물리적 충돌 우려가 있다'며 불참했다. 이에 방문진은 조만간 임시 이사회를 다시 소집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언론계 파업,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MBC, KBS, SBS, YTN, CBS, 경향신문 지부 등 전국언론노동조합 지도부 20여 명도 방문진에 '김재철 사장 해임'을 촉구했다.
언론노조는 방문진 이사회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정권 출범 후 방문진은 '정권의 방문진'이 됐다"고 비난한 뒤, 김재철 사장에게 "언론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남아 있다면, 이제 깨끗이 물러나라"고 말했다.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은 "현재 공영방송의 면모를 찾아볼 수 없는 MBC에 대한 원죄는 이명박 대통령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있겠지만, (김재철 사장을) 승인한 방문진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몰락하는 이명박 정권과 운명을 같이할 것인지 방문진 스스로가 선택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대균 MBC 수석부위원장은 "방문진 이사회가 '김재철 해임안'을 처리하지 않으면, 19개 지역 MBC 지부도 파업에 들어갈 것"이라며 "지역의 힘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겠다. 방문진 이사, 이명박 정권, 새누리당은 똑똑히 보라"고 소리 높였다.
특히 언론노조는 현 정권의 언론장악에 따른 저항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며 "언론노조 총 조합원의 종결파업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언론노조 KBS 본부는 파업 찬반 투표를 마친 상태이고, YTN 지부는 현재 배석규 사장 연임에 반대하며 총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는 박정찬 사장 연임에 반대해 지난 15일부터 노조 집행부가 릴레이 단식 중이다. 부산일보는 9일부터 서울 중구 정수장학회 앞에서 '정수장학회 사회 환원과 부산일보 편집권 독립을 위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국민일보 역시 '편집권 독립'을 외치며 62일째 파업 중이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김재철 사장 해임' 촉구 기자회견. ⓒ프레시안(이명선)
한편, 영화감독 40명이 MBC 파업 지지 선언을 했다. 2006년 '스크린 쿼터 지키기'를 위한 집단 선언 이후, 충무로 대표 영화감독들이 MBC 파업에 대규모로 지지 선언을 한 것은 처음이다.
이들은 'MBC를 국민의 품으로'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이 싸움은 단순한 사장 퇴진이나 정권교체가 아니라 바른 언론환경 사수를 위한 항구적 투쟁과 영속적 승리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노조 관계자 "'집 나간' 사장님, 숙박비만 1000만 원"
MBC 경영진은 이날 오전 권재홍 <뉴스데스크> 앵커를 신임 보도본부장에 임명했다. 권 앵커는 보도본부장과 앵커를 겸직한다. 그리고 전영배 보도본부장은 특임이사에 내정됐다.
이는 MBC 파업 이후 두 번째 인사 조치로, MBC는 지난 16일 문철호 보도국장을 베이징지사로 전보 조치하고, 황헌 논설위원실장을 신임 보도국장으로 임명했다. 이 중 전영배 보도본부장과 문철호 보도국장은 MBC기자회가 불공정보도의 책임자로 지적했던 '문제적 인사'다.
MBC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사태 해결의 진정성은커녕 방문진 이사회를 앞두고 급히 만들어진 위기 모면용 가식 행위에 다름 아니"라고 비판했다. 특히 "전영배 본부장에게 이사 자리까지 만들어준 것은 방문진 이사회를 앞두고 급히 만들어진 위기 모면용 가식 행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또 "방문진 이사회에 출석조차 하지 않은 것은 김재철 사장이 자리에만 연연해 할 뿐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도, 대책도 전혀 없음을 스스로 입증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김재철 사장은 현재 서울 모처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언론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김 사장은 최근 법인카드로 숙박비 1000만 원을 결제했다. 그는 2010년 4월 MBC 파업 당시에도 회사에 출근하지 않은 채 외유성 행보만으로 일관해, 사장이 파업을 방치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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