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박은정 검사 ‘양심선언’에 우물쭈물하는 이유 뭔가

道雨 2012. 3. 1. 11:04

 

 

박은정 검사 ‘양심선언’에 우물쭈물하는 이유 뭔가

 

 

 

나경원 전 새누리당 의원의 남편인 김재호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가 ‘기소청탁’을 했다는 주장이 점차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박은정 인천지검 부천지청 검사는 최근 검찰에 자신이 김 판사한테서 기소청탁을 받은 사실이 있음을 털어놓았다고 <나는 꼼수다>가 보도했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주진우 <시사인> 기자가 ‘나 후보를 친일파로 비방한 누리꾼을 기소해달라고 김 판사가 검찰에 청탁했다’고 보도한 데 대한 허위사실 유포 혐의 수사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박 검사가 양심선언을 하고 나선 것이다.

 

판사가 검사에게 기소를 청탁하는 행위는 사법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금기 중의 금기다. 그것도 공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아내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청탁을 한 게 사실이라면 더욱 문제다.

법조계 전체의 신뢰와 도덕성 회복을 위해서도 철저한 진상규명이 시급하다.

 

사안이 이처럼 중대한데도 검찰이나 법원은 파장 축소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심지어 검찰은 박 검사가 검찰 수사팀에 양심선언을 했는지조차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우물쭈물하고 있다.

박 검사가 검찰에 고백한 사실이 있는지 없는지 간단히 밝히면 될 일인데도 “경찰이 수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뭐라 말하기 어렵다”는 궁색한 이유를 대며 도망가기 바쁘다.

 

나경원 전 의원 쪽이 고발한 사건을 경찰이 수사하고 있다는 검찰의 설명부터 거짓말 냄새가 물씬 풍겨난다. 수사의 핵심은 기소청탁 여부인데 경찰이 검사들을 불러 조사한다는 것부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나꼼수> 쪽이 주장하는 대로 ‘검찰이 수사를 해오다 박 검사의 양심선언이 나오자 황급히 사건을 덮어버렸다’는 말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법원의 태도는 더욱 한심하다.

상황이 이쯤 됐으면 한시바삐 김재호 판사를 조사해야 마땅한데도 “나꼼수 주장만 있을 뿐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강 건너 불구경이다. 일부 판사들의 ‘튀는 발언’에는 눈에 쌍심지를 돋우며 달려들던 태도와는 딴판이다.

법원의 도덕성과 신뢰가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는 사안의 중대성에서 ‘가카 비방 발언’과는 차원이 다른데도 법원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검찰과 법원이 박은정 검사의 양심선언이라는 예상치 못한 사태에 당황하는 것은 충분히 짐작이 간다.

기소청탁 보도를 허위사실 유포로 몰아 눈엣가시 같던 나꼼수도 때려잡고, 검찰·사법부의 도덕성을 한껏 뽐내려던 기회가 물거품이 될 상황이 됐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자꾸 무리해서 되담으려 안간힘을 쓸수록 더욱 추해질 뿐이다.

 

[ 2012. 3. 1  한겨레 사설 ]

 

 

* <삼일절>에 걸맞는 내용과 관련된 사설이군요.

법조계의 이러한 추한 모습 때문에 <부러진 화살>이란 영화가 이슈화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