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만 문화부장 |
회삿돈 유용이란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사장이 피디·기자들 앞에서 언론윤리를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최근 <문화방송>(MBC) 사정은 현 정권의 방송장악 후유증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준다.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의 법인카드 문제를 보자. 여러 의혹이 말끔히 해소되지 못한 채 궁금증만 더하고 있다. 김 사장이 회삿돈으로 고급호텔 중국식당에서 부인과 함께 자주 식사를 했고, 법인카드로 온라인 구매한 300만원어치 공연티켓이 고향 친구에게 배달됐다는 노조 주장에 딱 떨어지는 해명은 없다. 일본 출장 때 엠비시 돈이 쓰인 다채로운 쇼핑 목록이나, 귀금속과 명품가방 구매에도 ‘업무용’이라는 두루뭉술한 답변만 있다.이런 의혹이 사실이라면 회삿돈을 빼돌린 범죄행위다. 신뢰가 생명줄인 언론사엔 회복이 쉽지 않은 오점이다. 의혹이 더 커지기 전에 조기진화하는 게 상식이다. 소상한 사용 명세를 문화방송 대주주이자 관리·감독 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 제출하면 된다. 소명만 된다면 죄 없는 사장을 무고한 노조는 궁지에 몰리고 파업 동력도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김 사장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내부 감사 중이라며 상세한 카드 용처 자료를 내놓지 않고 있다. 이 자료가 회사 문서철에 보관되어 있는지도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대신 의혹을 제기한 이용마 홍보국장 등 노조 간부 4명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했고, 이 국장은 해고를 확정지었다. 이번 파업으로 해고가 확정된 이는 이 국장이 유일하다.
방문진 여당 이사들은 어떤가. 자신들이 감독권을 행사하는 기관의 신뢰가 땅에 떨어질 위기임에도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파업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소집한 두 차례 이사회에 김 사장이 나오지 않았으나 그러려니 할 뿐이다. 김우룡 전 이사장 표현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 대선 캠프 출신보다 더 캠프적인 인사’를 청와대 뜻이라며 덥석 사장에 앉힌 이들에게 김 사장 검증을 기대하는 게 애초 무리일지 모른다.
진실 추구가 소명인 언론인에게는 그 직분에 걸맞은 도덕성이 요구된다. 부도덕과 진실은 짝이 되기 힘들다. 회삿돈 유용이라는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사장이 휘하의 피디·기자들 앞에서 언론윤리를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김재우 방문진 이사장은 지난 22일 노조원들에게 김 사장 이전의 문화방송 보도가 더 편파적이었다고 말했다 한다. 김 이사장의 개인 의견이니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김 사장의 회삿돈 집행을 두고 제기된 의혹은 의견 차로 넘길 일은 아니다. 내부에서 해법을 찾지 못한다면 수사기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
낙하산 사장의 부작용이 보도통제 논란을 넘어 언론윤리의 타락으로까지 번진 사례를 우리는 지난해 <한국방송>(KBS)의 민주당 도청 의혹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대통령 대선 참모를 지낸 김인규 사장이 이끄는 한국방송은 수신료 인상 로비에 보도국 간부를 동원했고, 정치부 일부 기자는 자신들의 취재 대상이기도 한 정치권을 직접 압박했다. 언론인의 직업윤리 같은 공공적 가치보다는 사익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한-미 에프티에이 취재를 위해 회삿돈으로 해외출장을 갔다가 갑자기 제작 중단 지시를 접했던 김영호 <피디수첩> 피디는 노조 인터뷰에서 지금의 문화방송 상황을 ‘원천봉쇄’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원천봉쇄의 희생물은 물론 ‘공정보도’이다.
김 사장은 지난해 자사의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보도가 불공정했음을 인정한 바 있다. 재임중 공정보도에 흠집이 난 것으로도 노조의 퇴진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그가 카드 의혹을 신속하게 잠재워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강성만 문화부장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