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원전반대그룹’을 자처하는 트위터 사용자가 고리와 월성 원자력발전소의 운전용 도면과 안전성 분석 보고서 등을 공개해 원전 안전관리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이들은 25일까지 고리와 월성 원전 가동을 중단하라고 위협하면서 만약 중단하지 않으면 주변 주민들의 대피가 필요한 상황이 올 수 있다고도 협박했다. 물론 25일 이후 별 탈 없이 지나가 다행스러운 일이긴 하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이번 원전자료 유출 사건은 단지 원전 관리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국가안보에 심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하겠다.
원전 사고는 국민의 안전이나 생명과 직결될 수 있어 과거 금융회사나 언론사 등을 노린 ‘사이버 공격’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 최근 신월성 원전 3호기 건설 현장의 가스유출 사고로 노동자 3명이 숨지면서 국민적 불안감은 극에 달해 있다.
지난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의당 탈핵에너지전환위원회 주최로 열린 ‘한수원 해킹사고 진상 파악 및 재발 방지대책 모색’ 토론에서는 한수원의 해킹 대응태도에 대해 따가운 비판과 질책이 쏟아졌다. 참석자들은 한수원이 예방과 사후대응에 모두 실패했다고 입을 모았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한수원은 자체 능력으로 해킹 방어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며 “사실상 원전 보안을 방치하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원전 자료 해킹 사건이 터지자, 검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하면서 북한 소행 여부에 초점을 맞췄다. 물론 북한도 혐의를 살만한 대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수사는 첫 단추부터 잘못 뀄다는 비판을 받을만하다.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대표 김영희 변호사는 이를 두고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는 수사가 아니라 해킹과 원전 자체에 대한 불안감만 키우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한수원 측은 직원들에게 악성 메일을 보낸 범인과 원전도면 유출범은 동일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한수원은 특히 이들 이메일 계정이 중국 선양발이며, 앞서 한수원 문건 유출에 사용된 IP 역시 선양 지역과 연결돼 있다며 북한을 의심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확증을 잡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전에 북한이 사용했다는 악성코드도 뿌리를 캐보면 당시에도 추정이었을 뿐 명확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런 마당에 정부합동수사단이 이번 사건을 북한과 연관 짓는 것은 적절치 못해 보인다.
2011년 중앙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이나 농협 전산망 중단 사건 역시 모두 사건 발생 초기에 북한에 혐의를 뒀다. 그러나 이후 북한 소행임이 구체적으로 확인된 것은 없다.
그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일 발생한 중앙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은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 수행비서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이를 두고 당시 자유선진당 이회창 전 대표는 “북한 공산당이 하는 짓과 같은 짓을 했다”며 “만에 하나 한나라당이 관련됐다고 하면 이는 정당 해산감”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현대전은 정보전이자 사이버전이라고도 불린다. 최근 국군사이버사령부는 사이버작전을 통합 지휘할 수 있는 참모조직을 보강했으며 북한의 사이버 위협정보를 수집 분석하는 기능과 교육훈련, 연구개발 기능을 대폭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600여 명의 국군사이버사 인력도 1천여 명으로 늘릴 방침이다. 또 이와 별도로 합참 산하에 사이버작전과 신설 계획을 밝힌 것도 이같은 맥락이라고 생각된다.
이번 한수원 문건 유출 사건이 터지자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 이는 국가안보에 심각한 문제로 보고 철저한 대응을 촉구했다. 그러나 정작 감독기관인 한전이나 산업자원부의 그 누구도 책임지는 자가 없다. 그러면서도 무슨 큰 일만 터지면 ‘북한 소행’ 운운하며 책임을 비켜가려고만 한다. 만약 북한이 없었으면 어쩔 뻔 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북한이 한 짓이라고 하면 면책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북한 타령’이나 연발하는 수사당국과 한수원의 한심한 작태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