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2014년 ‘제야의 밤’은 정말 저주의 밤이었나

道雨 2015. 1. 5. 11:07

 

 

 

  2014년 ‘제야의 밤’은 정말 저주의 밤이었나

[비평] 세월호 문화제와 진보단체 광화문 시위를 겨냥한 조선‧동아의 ‘저주 프레임’

 

 

 

12월 31일이면 사람들은 서울 광화문과 종로 일대로 모인다. ‘제야의 종’ 행사를 찾는 사람들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틀 전 제야의 종 행사에는 10만여 명이 모였다.

MBC <뉴스데스크>는 2014년 12월 31일자 보도에서 현장을 생중계하며 “웅장한 종소리와 함께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힘차게 맞이하려는 시민들로 보신각 주변은 점점 붐비고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보편적인 보도태도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바라본 제야의 밤은 사뭇 달랐다. 이 신문은 2일자 기사에서 제야의 밤을 “저주의 밤”으로 묘사했다.

조선일보는 “감사와 소망을 말하던 송구영신의 밤이 저주와 막말, 욕설과 행패로 얼룩진 살풍경한 밤으로 변했다”며 “좌파단체들의 집회‧시위로 제야의 종 행사를 찾은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 또한 같은 날 “진보단체의 반정부 집회는 질서 정연했던 타종행사와 달리 막말이 쏟아지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고 보도했다.

 

정말 막말이 쏟아졌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기사를 따라가 봤다.

2014년 12월 31일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 세월호국민대책위의 ‘아듀 2014, 잊지 않을게’ 문화제에 500여명, 서울진보연대 집회에 70여명, 횃불시민연대 집회에 50여명이 참석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약 620여명이다.

이날 제야의 종 행사를 보러온 인파는 10만 명으로 추산됐다. 10만 명 중 0.62%가 집회‧시위에 참석한 셈이다. 인파의 1%도 안 되는 소수가 송구영신의 밤을 저주로 얼룩지게 할 수 있을까.

 

 

▲ 조선일보 2일자 12면.

백번 양보해 저주로 얼룩졌다고 치자. 참가자의 발언을 ‘저주’로 해석한 주체가 청와대나 여당이 아닌 신문사라는 점이 흥미롭다.

조선일보는 이날 집회를 두고 “간판은 송구영신 추모 문화제였지만, 실상은 반정부, 정권 퇴진 시위였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세월호 문화제를 두고서도 “30개가 넘는 무대 공연 중 절반이 넘는 가수와 밴드들이 반정부 발언을 쏟아냈다”고 보도했다.

 

반정부 발언은 무엇일까. 조선일보에 등장한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의 발언을 보자.

“대통령은 매일 다른 옷을 맞춰 입는다. 패션왕이냐.”

31일, 같은 장소에서 미디어오늘 기자가 듣고 인용한 오창익 사무국장의 말은 이렇다.

“지난 참사 때 우리들은 국가가 아이들을 구조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국민들은 참사 이후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나라가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참사 8개월 째 접어든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그 어떤 것도 변하지 않았다.”

 

 

▲ 서울 광화문에 전시중인 세월호 희생자 추모 판화. ⓒ금준경 기자

조선일보가 ‘반정부 발언’이라며 내세운 근거들은 몇몇 욕설이거나 “통진당이 아닌 국정원을 해산하라”, “친일파의 딸이 권력을 잡고 독재하는 나라 부끄럽지도 않느냐” 등의 발언이었다.

보수언론이 정치적 주장을 반정부 발언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국가원수를 비난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해선 안 된다는 북한의 발상과 유사하다.

 

일부 참가자들의 감정적인 욕설마저 반정부로 치환하는 프레임은 1970년대 유신독재 시절의 ‘막걸리 보안법’과 맞닿아있다.

무엇보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시절,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던 조선‧동아일보의 각종 칼럼 및 사설을 정당화할 수 있었던 민주주의의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꼴이다.

 

동아일보는 2일자에서 “최재봉 서울진보연대 공동대표는 ‘2015년 박근혜 저X 밑에서 더 죽어갈 수 없다’며 원색적 비난을 쏟아냈다”고 보도했다.

집회‧시위 현장에서 정제되지 않은 원색적 비난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하지만 이런 원색적 표현이 집회‧시위의 전부는 아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집회의 취지와 배경은 전혀 보도하지 않고, 원색적 비난만 확대보도하며, 정부비판세력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팩트의 문제라기보다 ‘기본’의 문제다.

 

 

▲ 한국일보 1일자 21면.

조선일보처럼 세월호 문화제를 보도한 한국일보 1일자 기사를 보자.

“지난 한 해 국민들에게 가장 큰 아픔으로 남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잊지 않겠다는 각오를 되새기는 송년문화제가 열렸다. … 3호선버터플라이 등 록밴드 20여 개 팀이 10시간 넘게 릴레이공연을 펼쳤다. … 이순신 장군 앞에 마련된 기억의 광장은 희생자들의 빈 자리를 의미하는 304개의 책상을 탑처럼 쌓아올린 ‘세월호 연장전’을 비롯해 단원고 학생들의 얼굴을 새긴 판화 등 예술가의 추모작품이 전시됐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기사의 요건을 갖추고자 했다면, 아무리 기사의 목적이 시위대 비판이라 해도 집회의 의미는 알려줬어야 했다. 저주만 가득한 기사는 또 다시 저주를 나을 뿐이다.

 

2일자 경향신문은 조선‧동아의 ‘저주’와 상반된 기사를 냈다.

이 신문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모욕하는 댓글을 달아 고소된 10대 고교 중퇴생이 경기 안산 정부합동분향소를 방문한 뒤,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해 유족의 용서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분향소로 간 ㄱ군은 눈물을 쏟아내며 “앞으로는 매체 글을 믿지 않겠다. 나도 세월호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겠다”고 사과했다.

이 소년이 믿지 않겠다고 다짐한 매체는 어디일까.

 

언론이 먼저 비판‧감시해야 할 ‘저주’는 권력자에 대한 비판보다 사회적 약자를 두 번 죽이는 폭력이다.

 

[ 정철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