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엔 무능, 진압엔 잔인한 정권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시민들의 추모 행사가 잇따르는 가운데, 경찰이 작심이라도 한 듯 초강경 태도로 평화적인 집회·행진을 진압하고 있다.
참사 당시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데는 그토록 부실했던 정부가, 유가족을 비롯한 시민들의 슬픔을 짓밟고 진상규명을 위한 정당한 목소리를 탄압하는 데는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16일 1주기 추모행사 때, 경찰이 차벽을 쌓아 광화문광장을 원천봉쇄하고, 시민들에게 최루액을 쏘는 등, 과도하게 대응했고, 이 과정에서 유가족 한 명은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까지 당했다.
경찰은 18일 세월호 1주년 범국민대회 때도 차량 470여대와 경찰력 1만3700여명을 동원해 경복궁과 광화문광장, 세종로 네거리 등을 겹겹이 차단했다.
강경 대응에 항의하는 유가족 등 100여명을 연행하고 물대포와 최루액을 난사했다. 어느 대학생은 머리채를 잡힌 채 끌려갔다고 한다.
민주화 이전의 시절을 연상케 하는 암울한 풍경이다.
경찰은 도로 점거로 인한 교통 불편과 경찰관 폭행 등 폭력행위를 들어 강경진압의 불가피성을 강변한다. 하지만 지난 주말을 비롯해 마라톤대회 등 각종 행사로 서울시내 교통이 통제되는 것은 다반사다.
국가적 참사를 애도하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것은 민주국가에서 다른 어떤 행사보다 더 보호받아야 할 표현의 자유 영역에 속한다. 또 경찰이 애초 무리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면 대치·충돌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차벽을 쌓아 집회와 통행을 원천봉쇄하는 것은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명백한 위헌이다. 경찰의 구차한 설명은 변명을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적인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도 한국 경찰의 행태는 “유가족들에 대한 모욕적 처사이며, 표현의 자유 및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평화적인 집회 참가자들을 해산하기 위해 최루액을 살포한 것은 국제기준 위반”이라고 밝혔다.
세월호 1주기를 지켜보는 국제사회가 이런 상황을 어떻게 평가할지 생각하면 창피하기 그지없다. 대통령이 아무리 열심히 외국 순방을 다닌들 무엇하나. 국가적 참사를 애도하려 모인 시민들을 경찰이 폭력으로 진압하는 장면 하나로 우리나라의 국격은 단번에 추락하고 마는 것이다.
경찰의 이해할 수 없는 강경한 태도는 그동안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에 대처해온 태도와 연결지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진정성 있게 진상규명 노력을 해왔다면 이런 상황 자체가 벌어지지 않았다. 1주기가 되도록 특별조사위원회조차 출범하지 못하도록 훼방 놓고 선체 인양에도 손 놓고 있다가, 막상 거대한 비판과 저항에 직면하자 무리하게 시민들의 입을 틀어막게 된 셈이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경찰의 무리수는 정권 핵심부의 지침이나 암묵적 승인 속에 이뤄졌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강경진압 발상의 근원지를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 2015. 4. 20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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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폭력진압은 세월호 유족에 대한 모욕 | |
耽讀 | 등록:2015-04-20 08:23:14 | 최종:2015-04-20 08:24:3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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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세력’이 개입한 ‘폭력집회’. 조중동은 지난 주말 열린 세월호 참사 추모집회를 이렇게 표현했다. 지상파방송은 ‘충돌’ 등 중립적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경찰의 입장을 중심으로 보도했다.
한겨레와 경향, JTBC는 충돌이 발생한 ‘맥락’을 짚었다. 경찰의 유가족 연행, 선제적 차벽 설치, 최루액과 물대포를 무차별 난사한 ‘과잉진압’이 충돌이 발생한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19일 경찰은 광화문 앞에서 농성 중인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연행했다. 시청광장에서 범국민대회를 벌이던 집회 참가자들이 광화문으로 행진하게 된 배경이다.
20일자 한겨레는 “충돌이 시작된 것은 유가족들이 연행되면서부터”라고 보도했다.
경찰이 선제적으로 차벽을 설치했고, 대치 초반부터 물대포와 최루액, 소화기 등을 난사하며 집회 참가자들을 자극하기도 했다.
지난 19일 JTBC ‘뉴스룸’은 “충돌 초기부터 물대포를 쏘고 최루액을 뿌리면서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 지난 19일 JTBC 뉴스룸 보도 갈무리. | ||
경찰이 지난 16일과 18일, 두 집회에서 선제적으로 차벽을 설치한 것이 위헌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19일 경찰은 차벽트럭 18대와 차량 470여대, 안전펜스를 경북궁, 광화문 등 집회 인근 도심에 촘촘히 설치했다.
헌법재판소는 이 같은 선제적 차벽설치를 위헌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불법·폭력 집회나 시위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명백하고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가능한 거의 마지막 수단”이기 때문이다. JTBC는 “경찰이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 행사는 국제 앰네스티가 개입할 정도였다. 지상파, 종편, 종합일간지를 통틀어 앰네스티의 우려는 한겨레, 경향, JTBC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다.
앰네스티는 지난 18일 설명을 내고 “불필요한 경찰력을 사용해 유가족을 해산하려 한 것은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아널드 팡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관은 “평화적인 집회와 행진을 진압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고 부적절하다”면서 “정부 당국은 표현의 자유와 평화적 집회·시위의 자유를 무시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20일 한겨레와 조선일보 1면. | ||
조중동 등 보수신문은 이 같은 공권력 남용은 외면한 채, 집회 참가자들의 ‘폭력성’을 강조하며 ‘불법시위’를 부각시켰다. 맥락을 상실한 단편적인 사실만을 보도해 ‘진실’과 거리가 멀어진 것이다.
조선은 <태극기 불태운 시위대>를 1면에 배치했다. 부제는 ‘세월호 집회가 폭력시위로’ ‘일부 참가자들 과격 행동’ ‘경찰버스 부수고 경찰 폭행’등 일방적 입장만이 담겼다.
중앙은 <태극기 태우고, 경찰 폭행... “폭력 시위에 외부세력 개입”>제하의 기사에서 “경찰버스, 트럭 등 차벽을 부수고 경찰관을 폭행해는 등 과격양상을 보여 올해 들어 처음으로 시위대에 물대포를 발사했다”면서 앞뒤관계를 뒤바꿨다.
이들 신문은 ‘집회 참가자’를 ‘외부세력’이라 칭하며 ‘유가족’과 분리하기도 했다. 집회 참가자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때 ‘진보단체’를 ‘전문 시위꾼’이라 칭하며 ‘일반시민’과 분리했던 보도양상 그대로다.
중앙은 “시위를 전문적으로 이끄는 외부세력이 개입해 폭력시위로 변질된 것”이라는 경찰의 입장을 전했다. 동아 역시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가 서울광장에서 오후 3시 50분부터 연 범국민대회는 1만 명이 모인 후 폭력시위로 번졌다”고 밝혔다.
▲ 지난 19일 KBS와 MBC 메인뉴스 보도 갈무리. | ||
지상파 공영방송은 경찰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쓰는 모양새였다.
지난 19일 KBS ‘뉴스9’와 MBC ‘뉴스데스크’의 리포트가 그랬다. 이들 방송은 리포트 말미에 4.16가족협의회 등의 반론을 담았으나 전반적으로 경찰의 입장을 중심으로 보도했다.
이 같은 사실은 리포트 제목에서도 나타난다. MBC는 <경찰 "세월호 시위 폭력행위자 엄단">을, KBS는 <"세월호 집회 불법, 폭력 사태 엄중 대응>이라고 보도했다. 하루 앞선 지난 18일 지상파 방송은 ‘충돌’을 언급하며 중립적으로 보도했다. 이러한 기계적 중립 보도 역시 ‘맥락’을 단절시켰다.
▲ 20일자 JTBC와 중앙일보 페이스북 페이지 캡쳐. | ||
흥미로운 사실은 중앙일보와 JTBC가 상반된 내용을 보도했다는 점이다. 중앙일보는 JTBC를 겸영하고 있다. 같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정략적 판단이 사실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중앙일보는 ‘맥락’을 단절시켰다.
무엇보다 공권력은 가볍게 사용돼서는 안 된다. 보수신문의 20일자 보도는 이 같은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그러나 중앙일보 내부에서도 공권력에 대한 비판이 나온 바 있다.
“공권력이란 것이 있다면, 아니 있어야 한다면 다른 노력을 다한 다음에, 신중하게 등장하길 바란다. 먼저 투입돼야 할 것은 소통의 정신이다. 정부의 소통은 듣고 또 듣는 것이다. 작고 잊혀진 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 존재를 증명해주는 것이다.”
지난해 1월 1일, 중앙일보 권석천 당시 논설위원이 썼던 칼럼 내용이다.
[ 금준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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