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관련

인양된 것은 의혹 뿐

道雨 2015. 4. 24. 15:24

 

 

 

 

인양된 것은 의혹 뿐

침몰 원인, 구조 지원 거부 및 실패, 증거 은폐 등 ‘그날’을 둘러싼 진실은 드러난 것이 없고, 정부 발표는 오히려 의심을 부추겨

 

 

 

1년 전 4월16일 전남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세월호는 여전히 많은 비밀을 품고 있다. 잔잔한 바다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침몰 사고는 그 원인에서부터 다양한 의혹이 불거졌다.

 

휘발성 높은 ‘루머’를 대표하는 것으로 ‘잠수함 충돌설’이 있다. 뒤집힌 세월호의 밑바닥을 촬영한 사진 또는 영상을 토대로 ‘잠수함과 충돌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인터넷 등에 나돌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사고 해역의 수심으로 보아 잠수함이 지나다닐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국정원 실소유설’도 제법 많이 유포된 의혹이다. 세월호에서 건져낸 노트북에서 ‘국정원 지시사항’ 파일이 발견됐는데, 이것으로 보아 세월호의 실소유주가 국가정보원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세월호 외에도 다른 대형 여객선을 국가보호장비로 지정하여 국정원이 보안측정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관련 법령에 따라 국가보호장비로 지정된 세월호의 보안 사항을 통상적으로 점검했고, ‘국정원 지적사항 파일’도 이에 따른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일부 누리꾼들을 중심으로 근거가 분명치 않은 의혹이 여전히 번져가고 있다. 이를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실을 명쾌하게 규명하는 것이지만, 정부의 우왕좌왕식 대처, 누락되거나 폐기된 자료 등은 오히려 더 큰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명쾌하게 납득되지 않는 의문점은 너무나 많다.

*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10분께 둘라에이스호에서 촬영해 이 보도한 세월호의 모습. 정부는 세월호가 표류하는 동안 병풍도(작은 사진 왼쪽에 보이는 섬)를 바라보고 있었다고 발표했지만, 이 영상 속에서 세월호는 병풍도를 등지고 있다. 김지영 제공

 

 

① 도대체 왜 침몰했나

 

지난해 10월6일 검찰이 발표한 수사 결과를 보면, 4월16일 아침 8시48분께 전남 진도군 병풍도 부근에서 배가 급변침한 것이 세월호 침몰의 직접적 원인으로 나온다. 조타수가 ‘실수로’ 배를 과도하게 틀었고, 이로 인해 배가 기울면서 제대로 묶여 있지 않았던 화물들이 한쪽으로 쏠려 배가 뒤집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8시48분’이라는 사고 발생 시각부터, ‘단순 실수’라는 급변침의 이유에 이르기까지, 침몰 원인에 대한 정부 발표를 그대로 믿기에는 이상한 점이 적지 않다.


정확한 사고 시각에 대한 의문은 생존자들의 증언에서부터 시작한다.

조타수가 급변침을 한 8시48분 이전부터 배가 기우는 것을 느꼈다는 세월호 생존자들의 증언이 많다.

생존자 이종섭(50)씨는 당시 언론 인터뷰를 통해 “8시 조금 넘어 배가 갑자기 기울었다”고 했다. 당황한 이씨가 밖으로 나와 친구에게 전화를 한 시간은 8시43분이었다.

기관실 승무원 전아무개(61)씨도 “사고 당일 오전 7시40분쯤 일지를 쓰는데,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갑자기 배가 기울었다. 창문이 박살나고 사람들이 한쪽으로 쏠릴 정도였다”고 증언한 바 있다.

 

사고 당시 정부 및 관련 기관의 공문에도 사고 발생 시각은 제각각으로 적혔다.

해양수산부 산하 국립해양조사원은 사고 발생 시각을 8시30분으로 적었고, 진도군청 상황실은 8시25분으로 기록했다. 단원고 상황판에는 사고 시각이 8시10분, 해운조합 해양사고보고서의 시각은 8시 정각이었다.

 

이러한 기록들은 8시48분보다 이른 시각에 세월호의 침몰이 시작됐거나, 적어도 그 이전부터 사고 징후가 나타났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기에 충분한 근거가 된다. 정확한 사고 발생 시각을 알아내는 일은 직접적인 침몰의 원인, 즉 급변침의 이유를 찾아내는 것과도 연결돼 있다.

 

검찰은 급변침의 원인을 ‘조타수의 조타 미숙’으로 결론지었다. 그런데 조타수 조아무개(56)씨는 ‘조타 미숙’을 부정하고 있다.

조씨의 변호인은 지난해 7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3등 항해사가 ‘140도로 우현 변침’을 지시해 이를 따랐다. 그러나 배가 143도까지 오른쪽으로 가 왼쪽으로 3도가량 타를 돌렸으나 오른쪽으로 진행이 계속됐다. 이를 막고자 왼쪽으로 5도가량 타를 돌렸으나 소용이 없었다. 타를 잘못 돌린 사실이 없다”고 했다. 급변침의 원인으로 ‘조타 미숙’이 아닌 ‘조타기 결함’을 지목한 것이다.

 

그런데 조타기 결함 가능성과 관련해, 해양안전심판원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특별조사 보고서’에서 “관련 선원들의 진술이나 설비업체의 자문 등을 종합하면, 사고 발생 당시 세월호의 조타 설비에는 문제점이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만든 김지영 감독은 지난해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해 “(세월호의 항적을 분석한 결과) 세월호가 급변침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좌우로 방향을 바꿨고, 급변침 직전에는 배를 왼쪽으로 크게 틀었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급변침했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방송에서, 조류가 거세지도 않은 상황에서 세월호가 지그재그로 운행하다가 급변침한 것은 의도성이 짙다고 설명했다.

이런 주장은 이후 ‘고의 침몰설’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그 ‘고의’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여러 추측까지 나돌고 있다.

 

사고의 가장 중요한 원인인 ‘급변침 이유’는 아직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조타수의 실수, 조타기의 고장, 고의 급변침 등 여러 가지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무엇이 진실인가.

② 침몰 원인 자료를 왜 누락·은폐했나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유가족들이 여전히 ‘진실 규명’을 외치는 것은, 사고 이후 정부가 보여준 이해할 수 없는 대처 방식에 그 원인이 있다.

정부가 발표한 자료는 서로 어긋나거나 주요 부분이 삭제되거나 누락된 것투성이다.

 

세월호의 침몰 원인을 규명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자료인 항적도만 해도, 정부는 자료 공개 과정에서 혼란을 가중시켰다.

해양수산부는 참사 당일인 4월16일부터 총 4번에 걸쳐 선박자동식별장치(AIS)의 위성항법장치(GPS) 기록으로 항적을 복원해 공개했다. 그러나 정부가 발표한 세월호 항적도는 앞뒤가 맞지 않았다. 각각의 자료에는 세월호의 항적 구간이 서로 다르게 표시돼 있다.

 

여기에 더해 해수부는 참사 직전 AIS의 데이터가 일부 없어졌다고 밝혔다.

사라진 이유가 석연치 않은데다, 사라졌다는 데이터의 시간에 대한 설명도 계속 바뀌었다. 처음에는 3분36초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36초, 다시 29초, 마지막으로 35초라고 바꿔 설명했다.

데이터가 없어진 구간도 하필이면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데 결정적인 ‘급변침 직전의 구간’이다. 정부가 사고 원인을 은폐하려는 게 아닌지 의심하기에 충분한 정황이다.

 

정부가 발표한 항적도 자체가 틀렸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가 발표한 세월호의 항적도에 의하면, 세월호는 침몰하기 직전 인근 섬인 병풍도를 바라보며 표류한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사고 당일 세월호 인근에 있던 배인 둘라에이스호에서 촬영해 미국 방송 이 보도한 영상을 보면, 세월호는 병풍도를 등지고 있다. 정부 발표와 배치되는 영상 기록이다.

김지영 감독은 이러한 근거들을 모아, 정부의 항적 자료가 거짓이라는 내용이 담긴 다큐멘터리 <인텐션>을 제작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직후 구조대가 촬영한 현장 동영상 가운데 일부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삭제된 일도 있었다.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대책위)는 지난해 6월 법원에 증거보전을 신청해 세월호 침몰 당시 촬영된 영상자료를 복사·열람했다.

이 과정에서 대책위는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고 당시 현장 구조 활동을 벌인 제주항공단 소속 513호 헬기에서 캠코더로 녹화된 동영상이 있었는데, 이에 대한 열람을 요청하자, ‘용량이 너무 커서 원본을 삭제했다’고 해경이 설명한 것이다. 그 영상은 세월호 침몰 과정과 해경의 구조 활동 상황을 알 수 있는 원본이었다.

 

그 밖에도 정부는 세월호 침몰 직후 투입된 잠수사 수와 지원 설비 규모를 과장하고, 우왕좌왕했던 사고 수습 과정을 은폐하는 등 잘못 감추기에만 급급해왔다.

 

최근에는 진실 규명을 위해 구성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마저 통제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최근 특위 활동을 무력화할 수 있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발표한 것과, 지난 3월23일 세월호 특위의 내부 자료가 청와대와 경찰, 여당 등에 부당하게 유출된 사실 등은 정부의 이런 태도를 뒷받침한다.

무엇인가를 감추려 한다는 의심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세월호 사건의 의혹들

침몰 원인

정부 발표

2014년 4월16일 8시48분, 조타수의 조타 실수로 인한 급변침

 

증언과 증거

세월호 생존자 이종섭, “8시 조금 넘어 배가 갑자기 기울었다.”

조타수 조아무개, “타를 잘못 돌린 사실이 없다.”

김지영 다큐멘터리 감독, “(세월호 항적 분석 결과) 세월호가 급변침 직전 지그재그로 운항했다.”

 

증거 은폐

 

정부 발표 항적도 의문점

급변침 직전 구간의 데이터 누락

총 4번에 걸쳐 항적도 공개하는 과정에서, 누락 구간을 3분36초, 36초, 29초, 35초로 발표하는 등 혼선

표류 당시 병풍도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정부의 항적 기록과 달리, 이를 보도한 영상에서는 세월호가 병풍도를 등지고 있음.

 

 

해경의 구조 실패

 

해경의 경찰청 지원 거부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51분

경찰청, “저희 육경에서 도와드릴 거 없습니까.”

해경, “우리가 다 했으니까….”

 

해경의 해군 잠수 통제

2014년 4월17일 오전 7시

해군 자료, “민간업체(언딘) 우선 잠수를 위해 해경이 현장 접근을 통제하여 잠수 미실시.”

검찰, “(해군은) 안전상 이유로 접근하지 않았던 것일 뿐, 언딘을 우선적으로 잠수시키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③ 왜 합동 구조와 수색을 거부했나

 

어떻게 침몰했건 구조만 제대로 이뤄졌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4월16일 세월호가 침몰하던 시각, 해경은 특별한 이유 없이 경찰청의 지원을 거절한다. 사고 당일 오전 9시51분께 경찰청과 해경의 통화 내용 녹취록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저희 육경에서 도와드릴 거 없습니까.”(경찰청) “우리가 다 했으니까….”(해경 본청 상황실)

 

세월호가 침몰한 직후 아직 배 안에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시각, 해경은 중앙119의 인력 투입 역시 거절한다. 사고 당일 오후 1시2분께 119와 해경의 통화 내용 녹취록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저희는 헬기에 수난 구조 전문요원들이 다 탑승을 하고 있거든요. 배 안에 요구조자가 있으면 저희들이 바로 그냥 투입을 해서 잠수를 해서 출동이 가능한 구조가 가능한 대원들인데요.”(중앙119) “그래서 일단 뭐 들어가봐야지 알겠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뭐 그렇게….”(해경 본청 상황실)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해경은 최정예 잠수요원인 해군의 해난구조대(SSU)와 특수전전단(UDT)의 지원을 거부했다. 지난해 4월30일 진성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공개한 국방부 자료를 보면, 해경이 해군 요원들의 잠수를 통제한 것으로 나온다.

진 의원이 공개한 해군 기록을 보면, 사고 당일 오후 6시부터 6시35분까지 해군의 SSU 대원들이 잠수해 하잠색(잠수부용 가이드라인) 1개를 최초로 설치했으나, 이 시간 이후 다시 잠수하지 못한 것으로 나온다.

잠수 미실시 사유로는 “탐색구조를 주도하고 있는 해경에서 잠수작업 통제로 해경 잠수팀 우선 입수”라고 돼 있다.

다음날 아침 7시에도 해군은 SSU 대원들과 UDT 요원들을 현장에 대기시켜놨지만 “민간업체(언딘) 우선 잠수를 위해 해경이 현장 접근을 통제하여 잠수 미실시, 군은 상호 간섭 배제를 위해 해경 통제 수용”의 이유로 잠수를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지난해 10월6일 검찰은 “안전상 이유로 접근하지 않았던 것일 뿐, 언딘을 우선적으로 잠수시키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냈다.

대책위는 다음날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의 수사 결과는) 언딘의 투입을 결정한 해경 수뇌부, 혹은 언딘을 봐주려고 하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검찰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해경이 합동 수색과 구조를 거절한 이유 가운데 많은 부분을 납득하기 힘들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