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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 "연산군보다 더 방탕한 게 요즘 사람들"

道雨 2015. 9. 18. 15:54

 

 

 

 

전우용 "연산군보다 더 방탕한 게 요즘 사람들"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273]

 

 

 

사회 현안에 대한 촌철살인이 담긴 글을 트위터에 올려, 보는 이들을 속 시원하게 만들어준 역사학자 전우용씨가, 그동안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을 정리해 <140자로 시대를 쓰다>란 책으로 묶었다.

지난달 24일 출간된 <140자로 시대를 쓰다>는, 2014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던 사안들을 과거 역사와 비교하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지난 14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광화문에서 전우용씨를 만났다.

다음은 전씨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지난달 24일 트윗을 책으로 묶어 <140자로 시대를 쓰다>를 출간하셨어요. 20일 정도 지났는데 책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요?
"인터넷상에서는 이야기가 많이 되고 있는 것 같은데, 많이 판매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잘 팔린단 얘기는 못 들었습니다."

- 책을 출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지난 연말 즈음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싶다는 연락이 왔어요. 그러나 전 2012년에도 그동안 써놓은 트윗 글 중 시민들이 알고 있었으면 하는 역사적 사실들만 따로 모아 살을 붙여서 책을 출간한 적이 있는데(<오늘 역사가 말하다>, 투비북스) 반응이 좋지 않았고, 책 작업을 할 시간도 없어서 처음엔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출판사 쪽에서는 굳이 글을 다듬지 말고 썼던 그대로 출판하는 게 더 울림이 있을 것 같다고 얘기하더라고요. 한동안 즉흥적으로 쓴 글을 손보지 않고 그대로 출판하는 게 옳은 일인지 망설이다 승낙했습니다.

책 서문에도 썼지만, 우리 사회가 함께 겪은 시대에 대해 평범한 한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한편으로는 저조차 다시 볼 일 없는 글을 출판해 주겠다고 하니, 저 자신에 대한 기록으로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었죠. 몇 년간 썼던 트윗 글을 그냥 모아서 주면 출판사에서 책임지고 편집하겠다고 했는데, 나중엔 2014년분만 추려서 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신변잡기에 관한 글은 빼고 사회와 공유할 수 있는 내용만 묶어 책으로 낸 거죠."

"정부 잘못 지적하면 국가 부정하는 것처럼 몰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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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자로 시대를 쓰다> 표지
ⓒ 휴먼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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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글이지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즉흥적으로 썼다는 느낌은 안 들었어요.
"SNS에 올리는 글을 연구해서 쓰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날 신문이나 타임라인에서 접한 소식에 댓글 달듯이 쓴 글들입니다. 다만 글을 140자 이내로 줄여야 하니까 그 과정에서 생각은 하지만 논문 쓰는 건 아니잖아요. 그동안 공부하며 머릿속에 넣어 놓은 것들을 꺼내는 것이지 트윗하겠다고 자료 뒤질 일은 없죠."

- 트윗을 올린 뒤엔 어떤 반응들이 오나요?
"처음엔 멘션을 받으면 답도 했지만, SNS 공간은 서로 양해를 구하면서 토론하는 게 불가능하더군요. 종종 제대로 말을 못 배운 사람이 멘션 주는 경우가 있어요. 자기 생각을 말로 표현하지 못해서 다짜고짜 욕을 퍼붓는 경우죠. 그런 게 짜증스러워 트윗을 그만둬야 하나란 생각도 여러 번 했죠."

- 책에 한 챕터로 구성했을 정도로 세월호에 대해 많이 언급했는데, 선생님께 세월호는 무엇인가요?
"충격과 억울함, 안타까움, 답답함, 그리고 슬픔과 분노였어요. 제가 세월호를 겪고 쓴 2개의 트윗이 기억나요. 하나는 러시아 시인 네크라소프의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다'라는 말을 옮긴 거였어요. 슬픔과 노여움은 서로 다른 감정 같지만, 세월호를 겪으며 그게 하나라는 걸 저는 뼈저리게 느꼈어요.

제 아이들이 세월호에서 희생된 아이들보다 불과 두어 살 많아요. 아이를 잃었다는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참담했을 텐데, 게다가 비행기 추락처럼 손 쓸 새도 없이 죽은 게 아니었잖아요. 배에서 선장이 탈출한 후에도 30분 넘게 아이들은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찍었어요. 선장이 탈출한 상태라 배를 통제할 책임은 국가에 이양된 셈인데, 그런데도 구조대는 최선을 다해 구조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어요. 그런 상황을 보면서 엄청난 슬픔과 분노를 같이 느꼈던 것이죠.

또 하나의 글이 뭐였냐면, 미국에서 9.11테러가 발생했을 때는 위험한 줄 알면서도 무너져 가는 빌딩에 뛰어들었다가 사망한 소방관만 340명이 넘었어요. 그러나 한국에선 구조대원 중 사람을 구하겠다고 배 안에 뛰어든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심지어 뻔히 보이는 유리창을 깨려고 시도한 사람도 없었죠. 이건 평소 훈련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심성이 달라서라고 봤어요. 그런 심성을 느끼면서 슬픔과 분노, 자책감을 함께 느껴야 했죠.

물론 이건 단지 구조대에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저 자신조차도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 것인가 자신할 수 없었거든요. '나만 아니면 돼'나 '나부터 살고 봐야지'라는 생각이 우리에게 얼마나 깊이 자리 잡았는지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했죠."

- 배 침몰 사고는 처음이 아니잖아요. 역사적으로 보면 어때요?
"1970년대 일어난 남영호부터 최근의 돌고래호까지 사건 패턴이 대개 똑같아요. 항상 사건이 터지고 나면 정부는 뭘 고치고 무슨 대책을 세워야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는다고 말은 하지만 언제나 제자리걸음이었고 결국 달라진 건 없었죠.

게다가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과거보다 훨씬 부정적이고 암울한 현상이 나타났어요. 서해 훼리호나 남영호 참사 때에는 정부에게 잘못이 있다는 점을 모두가 인정했어요. 그러나 이번엔 정부가 잘못한 게 뭐냐는 얘기들이 나오고, 희생자 유가족들을 공공연히 비난하는 현상이 벌어졌죠. 정부 잘못을 지적하면 마치 국가 전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가 있었고요. 자기 정치적 태도에 따라 사건 자체를 왜곡하는 게 보편화하면, 아무것도 개선될 수 없어서 더 암담합니다."


"민주국가라면 국론통일이란 말 자체 범죄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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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전우용씨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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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인문학은 확정된 상황이나 과학적 진리를 다루는 것이 아니에요. 있었던 사건이나 사물에 대해 다양한 해석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죠. 이런 훈련이 창조적이고 개방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만드는 거죠.

역사도 마찬가지예요. 하나의 사건에 대해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그걸 무시하고 하나의 사실에 하나의 해석만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식에 대한 폭력입니다. 독재국가나 신정국가에서만 국정교과서를 사용하는 게 다 그런 이유죠.

일본인들이 원폭 맞고 가장 많이 반성한 게 바로 이거예요. 하나의 사물에 하나의 해석만 존재한다고 믿었고, 천왕의 지시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고 믿어서, 어떤 일에도 무조건 '예'라고만 대답했을 뿐, '아니오'라고 못한 까닭에 원폭을 맞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한 거죠. 이런 문제와 현상은 어느 나라에서나 동일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어요. 국정교과서는 지식과 인간성에 대한 국가권력의 가장 무도한 폭력인 셈이죠."

- 정부는 시각이 각각 다른 역사교과서로 아이들을 가르치면, 다른 국가관이 정립되어 국론이 분열된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올바른 국가관이 무엇이고, 그걸 누가 정할 수 있나요? 또 국론통일을 말하는데 국론을 누가 정합니까? 군국주의 시대 일본이나 북한은 자기들 왕이나 수령이 정하면 인민은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권력자가 일방적으로 정한 국론에 무조건 따르는 건 주권자인 국민이 아니라 가축이나 노예일 뿐입니다. '국론통일'이라는 말 자체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쓰면 안 되는 말이고 금기시되어야 마땅합니다.

과거 파시스트나 공산 국가에서 국론통일을 얘기했고 사상통일을 말했죠. 그러나 그것이 인간을 기계의 부품으로 만들어버리거나, 국가를 거대한 폭력 기계로 변화시킨 결과를 가져왔잖아요. 일본의 남경대학살이나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이 모두 그런 생각에서 자행된 일이에요. 민주국가라면 국론통일이라는 말 자체를 범죄시하는 게 오히려 옳은 일이죠.

그런데 지금 한국사회는 국론통일이 돼야 역사가 제대로 발전하고 사람들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어요. 이게 큰 문제입니다. 이거 정말 위험해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은 누구도 독점할 수 없어요. 세상이 다 옳다고 해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던 갈릴레이 갈릴레오나 코페르니쿠스 같은 사람들이 역사의 진보를 가져온 것이지, 남이 다 예라고 할 때 무턱대고 따라간 사람들이 무슨 긍정적인 일을 했나요? 그 점을 직시하고 반성할 줄 알아야 합니다."

- 역사학자시잖아요? 역대 왕들과 비교했을 때, 박근혜 대통령은 누구와 가장 비슷한가요?
"역사학자라서 그런 질문 종종 받는데,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을 왕조국가의 왕과 비교하는 자체가 온당치 못해요. 형식적으로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는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죠. 주권자가 스스로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서 어떤 훈련을 받아야 하고, 어떤 마음가짐을 갖춰야 하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느냐를 생각해야죠.

옛날 왕들은 세자가 되기 전부터 남다른 교육을 받았고 왕이 된 후에도 경연 등을 통해 끊임없이 공부했어요. 훌륭한 임금으로 평가받는 세종이나 정조는 신하들보다 지적·도덕적 우위를 확보하려고 했고, 또 성공했죠. 그래서 신하들을 잘 발탁하고 통제해서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 연산군 같은 폭군은 공부하기 싫어서 경연 폐지하고, 방탕하게 놀고, 사냥하기 위해 남의 집 허물고, 자기 쾌락을 위해 남 희생시키는 걸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국민들은 누구에 가까운가요? 국민의 평균 수준이 연산군과 비슷하면 연산군 시절이고, 세종과 비슷하면 세종시대인 거예요. 국민 스스로 자기가 사는 시대를 결정하는 겁니다. 자기는 연산군처럼 살고 싶어 하면서, 세종 같은 성군이 나와 나라를 잘 다스려주길 바라는 것은, 민주국가의 주권자로서의 자격을 잃은 태도죠."

- 그럼 현재 대한민국 국민은 어느 수준이라고 보시나요?
"제 대답이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사람들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아시잖아요. 지금 대한민국 출판계는 곧 망한다고들 해요. 책 읽는 사람 없고, 노는 데만 열중하죠. 한국 중장년층의 실질 문맹률이 OECD 최고라고 하잖아요. 연산군보다 더 방탕한 게 요즘 사람들이에요. 돈 좀 있으면 마약을 하고 음란하게 놀거나 허구한 날 술만 마시는 사람들 많잖아요. 지금이 어떤 시대인지는 자기를 들여다보면 알아요."


○ 편집ㅣ최유진 기자


 

[ 이영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