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토신 코에 뿌리고 연애지수 높여볼까
정재승의 영혼공작소
(14) ‘신뢰의 묘약’ 옥시토신
아빠보다 엄마에게 훨씬 더 많은 것. 고양이보다 개에게 훨씬 더 많은 것. 연인과 헤어진 사람보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 훨씬 더 많은 것. 인색한 구두쇠보다 후한 기부자들에게 훨씬 더 많은 것.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정답은 옥시토신이다.
출산 후에는 유두가 자극을 받을 때 혹은 모유 수유를 할 때 분비되기도 한다.
남자에게도 많이 분비된다는 얘기는 자궁수축 외에도 다른 기능들이 있다는 의미일 게다. 그중 하나가 신뢰와 사회성을 조절하는 기능이라 여겨진다.
옥시토신 분비가 늘어나면 낯선 사람에게 말을 잘 걸기도 하고, 쉽게 신뢰하기도 하며,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고양이보다 개에 5배 더 많아
옥시토신 분비량 증가할수록 상대방 말을 더 잘 믿는 경향,
이성 만나기 전 코밑에 뿌리는 ‘쑥쓰럼 방지제’가 팔리기도
두 그룹 나눠 실험해보니, 옥시토신 투입 뒤 기부 늘어나
주인이 개와 고양이들과 각각 10분 동안 함께 놀아주고 그 전과 후에 타액을 채취했더니, 개의 경우 주인과 함께한 뒤 옥시토신 수치가 57.2% 급증한 반면, 고양이는 12% 늘어나는 데 그쳤다고 한다.
비교하자면 사람의 경우는 배우자 혹은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 옥시토신 수치가 40~60% 상승한다. 다시 말해 개들은 사람 못지않은 양의 옥시토신을 분비한다는 것이다.
개가 고양이보다 주인과 관계 형성에 좀 더 예민한 반면, 고양이는 상대적으로 독립적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 결과 주인과 애완견이 100초 이상 눈을 맞췄을 때 옥시토신이 사람 몸에선 평소보다 4배 증가했다. 물론 개 역시 40% 가까이 옥시토신 분비가 늘어났다.
개와 인간은 완전히 다른 종인데도 마치 부모와 자식이나 연인 사이처럼 마주 보면 관계형성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나와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더 오래 바라보게 되는 일종의 ‘선순환 현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지 않은 채 ‘컴퓨터상의 통신’을 통해 ‘신뢰 게임’(trust game)을 하는 실험을 실시했는데 결과가 매우 흥미롭다.
예컨대 전혀 모르는 사이인 두 사람 A와 B가 게임에 참여했다고 치자. A는 자신이 받은 참가비 중 일부 혹은 전부를 B에게 줄 수 있다. 자신의 돈을 상대방에게 주면(일종의 투자라고도 할 수 있다), 규칙에 따라 상대방 B는 그 금액의 3배를 지급받게 된다. 결국 A가 주는 정도가 늘어나면 B의 이득도 덩달아 커진다.
이 게임에서 A는 B가 자신에게 얼마라도 돌려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믿으면 큰돈을 투자하겠지만, 신뢰감이 없다면 B에게 돈을 주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신뢰 게임은 서로 모르는 두 사람 간의 ‘신뢰’를 측정할 수 있는 간단한 게임이다.
폴 잭 교수는 옥시토신이 안정감과 유대감, 상대방에 대한 신뢰 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서로 믿고 의지하고 안정감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 결과를 가만히 살펴보면 매우 무시무시한 함의까지도 내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내가 만약 책 전집이나 자동차를 팔아야 하는 외판원(혹은 영원사원)이라고 가정해 보자. 나는 아파트 단지가 즐비한 동네에 가서 어떻게 영업활동을 해야 할까?
아니면 백화점 매장에 ‘액체 옥시토신’을 화장실 방향제처럼 주기적으로 뿌려준다면, 소비자들은 점원의 말을 쉽게 믿고 물건을 구매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지금까지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사용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쇼핑을 촉진하기 위해 사용한다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아마도 아직은 이런 행동을 규제할 법률도 없을 것이다).
독일 본 대학병원 정신의학 클리닉 니나 마시 연구팀은, 옥시토신이 많을수록 생계가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172명의 피험자들에게 10유로를 주고, 전부를 그냥 가져도 되지만 일부를 기부할 수 있는데 기부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는 설문지를 돌렸다. 기부하고 싶은 경우 아프리카 우간다 원주민의 생계를 돕는 사업 또는 우간다 우림 재조성 사업 중 하나를 택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소변검사를 통해 이들의 옥시토신 수치를 측정한 것이다. 그 결과 옥시토신 수치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 비해 훨씬 기부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높은 옥시토신 수치는 오로지 생계지원 사업 기부와만 연관이 있었다는 것이다. 옥시토신 수치가 높든 낮든 환경보호 사업 기부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미래사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호르몬
진짜 옥시토신 그룹은 생계지원 사업에 기부하고 싶은 액수가 평균 4.50유로로 가짜 옥시토신 그룹에 비해 2배 많았다. 그러나 환경보호 지원 사업에 기부하고 싶은 마음은 옥시토신 투여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옥시토신이 사회성을 증가시키고 다른 사람을 돕는 마음을 증가시킨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이제 기부단체들이 옥시토신 스프레이를 들고 다니며 기부금 모금을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과 공감하려는 노력이 줄어들고,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보다 경쟁에서 누르거나 혐오하는 사회에서 옥시토신 분비는 현저히 낮아질 것이다.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어떻게 제도와 문화로 옥시토신 분비가 활성화된 사회를 만들 것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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