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흰나비.
물바람숲
겨자와 고추냉이의 톡 쏘는 맛을 좋아하는 이라면 그 내력도 알아둘 만하다. 이 자극적인 맛을 내는 물질은 글루코시놀레이트(겨자기름 성분)로 십자화목 식물이 공통으로 함유한다.
애초 십자화 식물이 이 화학물질을 고안한 까닭은 벌레를 물리치기 위해서다. 애벌레가 무, 배추, 냉이, 겨자, 파파야 등 십자화 식물을 깨물면 이 물질은 치명적인 독성물질로 바뀐다.
십자화 식물이 이 방어물질을 개발한 것은 9000만년 전이었다. 그러나 1000만년도 안 돼 흰나비과 곤충은 이 방어벽을 뚫었다. 흰나비 애벌레는 특수한 단백질을 합성해 이 독성물질을 무력화시켰던 것이다.
배추에 나풀나풀 날아드는 배추흰나비를 보면 서로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것은 겉모습일 뿐 이들은 공룡시대부터 조상 대대로 화학전쟁을 벌여온 셈이다.
저명한 생물학자인 피터 레이븐과 폴 얼리크는 1964년 나비와 식물을 예로 들어 ‘공진화’ 개념을 제안했다. 먹고 먹히는 두 종 사이의 경쟁이 진화를 가속시킨다는 것이다.
반세기 만에 이 가설을 증명하는 연구가 나왔다.
미국 미주리대와 스웨덴 스톡홀름대 연구자 등 국제 연구진은, 십자화과와 흰나비과의 유전체를 분석해, 새로운 독성물질과 이를 무력화시키는 방어물질을 번갈아 개발하는 과정에서 두 집단이 다양하게 진화했음을 밝혔다.
미 국립학술원회보(PNAS)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흰나비의 공격에 맞서 십자화목 식물은 120종 이상의 서로 다른 글루코시놀레이트 화합물을 합성했고, 이에 맞서 흰나비도 공격수단을 바꾸는 과정에서 다른 나비보다 다양한 종으로 진화했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또 두 생물 집단의 핵심적인 혁신은 점진적인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아니라, 유전자 또는 유전체의 중복을 통해 이뤄졌음을 알아냈다. 공진화의 메커니즘을 밝힌 이 연구는 앞으로 해충에 잘 견디는 작물을 개발하는 데 응용될 것으로 보인다.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