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국정화

국정교과서도 재벌에 준 선물이었나

道雨 2016. 12. 2. 10:23




국정교과서도 재벌에 준 선물이었나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011년 정부에 건의문을 보낸다.

“현행 교과서는 모두 전태일 분신사건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지만,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과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소개한 교과서는 단 한 권, 그것도 사진 설명에 불과하다. 대기업의 공과에 대해 공정하게 써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28일 공개된 국정 역사교과서(<고교 한국사> 267쪽)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인’이라는 제목으로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자, 이병철, 정주영 등 3명이 소개돼 있다. 재벌 총수가 교과서에 실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병철 소개는 이렇다. “이병철은 삼성물산, 제일모직 등의 기업을 세우고…1980년대에는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여 한국이 정보산업기술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기여하였다.”

제일제당이 정부의 미국 원조자금 특혜로 세워졌다는 사실, 삼성이 ‘삼분폭리 사건’(제일제당 등이 밀가루, 설탕, 시멘트 가격을 급등시켜 폭리를 취한 사건)과 ‘사카린 밀수 사건’(삼성계열사인 한국비료가 사카린 등을 밀수하다 적발된 사건)으로 번 돈을 박정희 정권에 줬다는 의혹 등은 아마 자리 부족으로 적지 않았을 것이다.


정주영에 대해서는 “현대자동차 등 한국의 수출산업을 이끈 기업들을 창업하였다. 대규모 조선소 건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당시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영국 투자은행에 보여주며 ‘우리는 이미 1500년대에 철갑선을 만들었다’고 설득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고 소개한다.

이런 ‘일화’도 있다. 현대조선(현재 현대중공업)은 1972년 3월부터 1974년 6월까지 불과 27개월 만에 26만톤급의 대형 유조선을 국내 최초로 완성했다. 이 ‘대업’을 이루기 위해 노동자들을 몰아붙인 결과 59명의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숨졌다.


국정교과서는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계획,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 등을 자세히 설명하고, 그 결과 “수출이 매년 40%씩 증가”하고 “한국 대기업은 세계적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했다”고 쓴다.

재벌체제의 부작용은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었고, 정경유착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고 마지못해 한줄 걸친다.

“우리나라 고도성장은…정부·기업·근로자가 노력을 기울인 결과”라는 문장이 있긴 하지만, 어째 전체 책을 보면 이 모든 발전은 “박정희와 재벌들 덕택”이라고 말하는 듯한 (박근혜 대통령 표현을 빌리자면) ‘기운이 온다’.

대기업들이 대주주인 경제신문조차 “친기업적인 서술이 기존 교과서와 차별점”이라며 흡족해했다.


재벌들은 박근혜 정권에 800억원을 ‘뜯겼다’고 하지만, 얻어낸 것도 만만치 않다. 규제완화, ‘노동개혁’, 총수 사면, 면세점 허가 같은 장단기 이익이 있었다. 여기에 국정교과서에 당당하게 총수 이름을 올렸고, 경제성장의 주역으로 자리매김됐다. 이 교과서로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재벌이 잘돼야 나라가 잘된다”는 논리가 자연스럽게 주입될 것이다.


국정교과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에게 바치는 사부곡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나라 기득권층이 ‘박정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행진가다. 그 체제는 국가와 재벌이 강력한 동맹관계를 형성해 서로 이권을 주고받으며, 전체 사회가 노력해 만든 결과물을 가로채는 체제, 관료·법조인·교수 등이 그 쌍두마차에 봉사하며 약간의 떡고물을 얻어먹는 체제, 대다수 국민들은 노력한 만큼 보상받지 못하고 삶의 불안에 시달려야 하는 체제다.

박근혜 정권이 뇌사 상태에 빠지면서 다행히 국정교과서는 폐기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커졌다.

이 시대착오적이고 소모적인 국정화 소동에서 그나마 얻은 것은, 박정희 체제 기득권 동맹의 끈질김과 치밀함에 대한 새삼스런 깨달음이다.



사회정책팀장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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