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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인터넷 감청 통제할 법조항, 2020년 3월까지 만들라”

道雨 2018. 8. 31. 09:43




헌재 “인터넷 감청 통제할 법조항, 2020년 3월까지 만들라”




‘패킷 감청’ 헌법불합치 의미

인터넷 회선의 불특정 다수 정보
접속·검색기록까지 통째로 수집
2000년대부터 보안법 수사 악용

헌재, 7년여 판단 미루다 결정
국회에 감청 감독할 개선안 주문

시민사회 “무분별한 정보수집 제동
사생활 보호할 통비법 개정 과제 남아”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등 헌법재판관들이 30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들어서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등 헌법재판관들이 30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들어서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헌법재판소가 30일 ‘패킷 감청’을 헌법불합치로 결정한 핵심적인 이유는 ‘너무나 광범위한 감청이 가능해’ 기본권 침해 우려가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정인의 전화 통화 등을 엿듣는 감청과 달리, 패킷 감청은 해당 인터넷 회선을 오가는 불특정 다수인의 모든 정보가 패킷 형태로 수집돼 그대로 수사기관에 전송된다. 한 명에 대한 통신제한조치 허가로 같은 회선을 사용하는 불특정 다수인의 로그 기록, 인터넷 검색어 따위까지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이날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온 패킷 감청 헌법소원 사건의 청구인도 애초 패킷 감청 대상이었던 전직 교사 김아무개씨와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던 문아무개 목사였다.

인터넷 활동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패킷 감청을 둘러싼 우려가 커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국가정보원은 2000년대 초반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패킷 감청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2004년부터 무려 28개월 동안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의 케이티(KT) 인터넷 전용 회선의 통신 내용을 감청해온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해당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사용한 모든 사람에 대한 실시간 감청이 2년 넘게 이뤄진 셈이다.
장기간 내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 국가보안법 사건의 특성이 패킷 감청의 위험성을 증폭한 것이다.





이날 불합치 결정을 끌어낸 헌법소원 역시 국가보안법 위반 수사에서 비롯됐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인 김아무개 전 교사는 국정원으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내사를 받던 중, 패킷 감청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인 2011년 헌법소원을 냈다. 사생활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헌재가 5년이나 결정을 미루는 동안 김씨는 간암으로 사망했다.
이후 김 교사와 한 사무실을 쓰면서 같은 회선을 이용한 문아무개 목사가 2016년 3월 다시 헌법소원을 내면서 이번 결정이 나오게 됐다.

헌재가 7년여 동안 판단을 미루고 있던 사이, 패킷 감청의 정보 수집 범위 등을 둘러싼 논쟁은 치열하게 진행돼왔다.
이는 지난해 12월 열린 공개변론에서도 되풀이됐다. 청구인 쪽은 패킷 감청이 범죄 혐의와 무관한 통신 사실까지 무분별하게 수집돼 개인정보 침해가 심각하게 이뤄진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정원 쪽은 범죄 혐의와 무관한 부분은 수집하지 않으며, 적절한 법적 절차를 통해 통제를 받고 있다고 맞섰다.
하지만 패킷 감청이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어떤 정보를 어떻게 수집하는지 등은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다.

헌재는 이번 결정에서 “불법적인 자료 수집은 없다”는 국정원 주장을 믿는 대신, 국정원과 수사기관의 감청을 통제할 법적 장치를 마련하라는 결정을 내놨다. 막대한 양의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이상, 이를 어떻게 처리하고 감독할지에 관해 세부 절차까지 세세하게 마련하라는 것이다.

다만 헌재는 이런 제도를 결정하는 것은 입법자인 국회의 몫이라고 밝혔다. 헌재는 “인터넷 회선의 감청을 통한 수사를 사후적으로 감독 또는 통제할 구체적인 개선안을 마련하는 것은 입법자의 재량에 속한다”면서 2020년 3월31일까지 패킷 감청의 근거 법률인 통신비밀보호법 제5조 2항의 잠정 적용을 결정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중대 범죄 수사에 공백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그때까지 국회가 개선안을 마련하라는 주문이다.

그간 패킷 감청의 위험성을 경고했던 시민단체들은 이날 헌재의 결정을 환영했다. 청구인 쪽 대리인을 맡았던 양홍석 변호사는 “그동안 법률상 보호가 미비했던 국민의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해 헌재가 의미 있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을 통한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정보 수집에 제동을 걸었다”고 평가했다.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상임이사는 “헌재 결정은 환영하지만, 실질적으로 통비법이 어떻게 개정될 것이냐가 중요하다”며 “프라이버시 보호가 가능한 방식으로 법 개정을 이끄는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60003.html?_fr=mt2#csidx5aa0ab41be9dd8ba6091b786fa15aa8